[여적]전세사기 ‘법정 최고형’

이명희 기자 2024. 2. 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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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2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평생 모은 돈에 대출까지 받아 집을 구했다. 근저당권 설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중개업소에서는 ‘주인이 집을 여러 채 갖고 있어서 1억원도 안 되는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는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사기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경매 접수문이 우편함에 꽂힌 뒤였다. 사기 일당은 토지매입이나 건설 비용은 금융권에서 조달하고, 피해자들에겐 근저당권이 걸린 집을 싸게 임대하는 수법을 썼다. 그러곤 빚을 안 갚아 집을 경매에 넘겨버렸다. 알고보니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씨가 공인중개사 등과 짜고 벌인 조직적인 사기였다.

재판은 지난해 3월 시작됐다. 남씨와 함께 공범 9명이 피해자 191명을 속여 전세보증금 148억원가량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사이 피해자 4명이 잇따라 자살을 했다. 지난 7일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남씨에게 사기죄로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오 판사는 “먹는 것, 입는 것과 함께 생존 기본 요건인 주거환경을 침탈한 중대 범죄로, 청년 4명이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국가나 사회가 피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재범 우려가 크다”고 중형 이유를 설명했다. 오 판사는 ‘사기죄의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로 법률 제정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형사처벌만으로는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당장 경매가 낙찰되면 보증금 한 푼 못 받고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정부와 국회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등 대책을 쏟아냈지만, 피해자들에게 와닿은 건 없다. 최근 주소지별로 경매 물건이 빨갛게 표시된 ‘법원 경매정보’ 지도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그것도 피해자들에겐 상처일 뿐이다.

오늘도 피해자들의 한숨이 깊어간다. 정부도, 국회도 보증금 회수 방안을 담은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답해야 한다. 늘 한두 발 늦는 대책에 이들이 살아갈 힘을 잃는 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 피해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설 연휴가 시작된다. 전세사기 피해자를 만난 가족·친지·친구들도 질책보다는 따뜻이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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