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유망한 직업의 유통기한

박지영 기자 2024. 2. 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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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집 근처 골목길을 걷다 전봇대에 붙은 종이 한장에 무심코 눈길이 갔다.

'개발자 일자리 구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는 "스타트업 개발자로 일하고 싶은 20대 대학생, 졸업생에게 원하는 스타트업을 연결해주겠다"며 일자리 중개를 광고하고 있었다.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는 ㄱ씨는 한때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던 개발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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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박지영 | 빅테크팀 기자

며칠 전 집 근처 골목길을 걷다 전봇대에 붙은 종이 한장에 무심코 눈길이 갔다. ‘개발자 일자리 구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는 “스타트업 개발자로 일하고 싶은 20대 대학생, 졸업생에게 원하는 스타트업을 연결해주겠다”며 일자리 중개를 광고하고 있었다. 최근 찬바람이 부는 빅테크나 스타트업 업계의 개발자 해고 소식은 많이 들어봤지만, 개발자들의 구인·구직 풍경을 길거리에서 직접 목격하니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전단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전단지를 만들어 돌렸다는 ㄱ씨는 한때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던 개발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현재 다른 일들을 병행하며 스타트업-개발자 일자리 중개업을 시작해보려 한다”며 “주변에 정리해고를 당한 스타트업 개발자들이 많지만 또 한쪽에선 개발자들을 뽑으려는 스타트업들도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스타트업 업계에 닥친 투자 한파로 인력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개발자 수요가 여전히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비전공자들의 경우엔 별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어렵사리 개발자가 된 건데, 전보다 개발자들 처우가 나빠진 상황에서 그나마 처우가 조금이라도 나은 곳으로 취업하려는 구직자들이 시장에 적체돼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처우가 나은 곳’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의 사정도 편치만은 않아 보인다. 4년차 핀테크 업계 개발자 ㄴ씨는 지난해 초부터 함께 일하던 동료 개발자들이 하나둘씩 해고당해 회사를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며 “언젠간 ‘나도 내쳐질 수 있다’는 불안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회사가 잘돼야 나도 잘되지’라는 생각에 야근이나 추가근무에도 적극적이었지만, 해고 칼바람이 회사를 휩쓴 뒤엔 일에 대한 열정이 전과 같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투자 유치가 안 돼 회사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가라앉는 배에 탄 기분”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코로나19 때 개발자 몸값이 높아지니까 정부가 이 분야 양성하겠다고 청년들 대상 교육 등을 엄청나게 지원했잖아요. 그때 ‘유망하다’는 말에 개발자가 된 젊은이들 지금 대부분 제대로 된 일자리 못 구하고 있어요. 그게 참 문제였던 것 같아요.”

ㄱ씨와 ㄴ씨 모두 개발자 고용시장의 심각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짚었다. 5~6년 전 개발자가 ‘유망 직업’이라며 정부가 코딩교육 등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 것도 불균형한 고용시장을 만든 데 한몫했다고도 입을 모았다.

한때의 상황이나 분위기에 따라 ‘유망하다’는 분야에 재정을 투입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던 정부의 근시안도 문제지만, ‘떠오르는’, ‘미래 먹거리’ 같은 화려한 수식어로 전망 보도를 내보내며 호들갑 떨던 언론의 책임은 없었을까. 당시 초등학교에 코딩 과외 열풍이 불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류 역사를 살피고 조망한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한 인터뷰에서 “미래에 대해 중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언론도 한때 유행이나 바람에 민감해하는 대신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올 위험과 부작용을 차분히 고민하고 그 대처에 무게를 두는 것은 어떨까.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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