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 칼럼] 그래도 희망은 있어야 살지
이경자 | 소설가
“나라 위해 뛰었고, 부족해서 졌다”
매번 자정 앞뒤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서 경기를 지켜보게 하던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7일 끝났다. 준결승에 오른 우리나라 대표팀이 요르단에 패해 더는 치를 경기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난 직후 언론 보도를 보면, 고개 숙인 주장 손흥민 선수는 ‘무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축구는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는 스포츠다. 분명히 우리가 부족해서 진 게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조별리그를 어렵게 끝내고 16강을 확정한 뒤였던가? 손흥민 선수는 ‘우리 선수들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비난과 열광의 분열적인 관심으로부터 선수 개개인의 자아를 단단하게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서 한 말이었을까?
기대했던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을지라도 나는 호주(오스트레일리아)와의 8강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에게 받았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미 16강전에서 연장, 승부차기까지 가며 승리를 일궈낸 선수들이 사흘인가 만에 또다시 8강전에서 극적인 연장전 승리를 얻어내지 않았던가.
손흥민 선수는 ‘나라를 위해 뛰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핑계’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축구의 규칙도 제대로 모르면서 축구를 마냥 좋아하는데, 승리와 패배의 경과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이지 싶다. 우리 편이 찬 공이 상대의 골문 안으로 들어가되 수문장이 막아내지 못하면 이기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번 호주와의 경기에서 나는 ‘축구의 아름다움은 연결’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공 하나를 가지고 승리를 얻어내려는 그 동작들에는 믿음, 양보, 격려, 사명감 등이 물처럼 흘렀다.
그들 승리의 바탕엔 주장 손흥민 선수가 말했듯, ‘나라를 위해 뛰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핑계’라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패해 머리를 숙인 손흥민 선수는 ‘저한테 질책하시고 저희 선수들은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사랑은 돈이 닿지 않는 실천
마음이 어지러울 때가 많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하고 불안하다. 이런 마음을 가라앉혀야 건강을 유지할 터. 아마 이럴 때 사람들은 여러가지로 견디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으면서 평상심을 찾는 방법.
나에게도 방법은 있다. 고향 산천의 익숙한 것들과 만나는 것. 혈육 같은 동료들을 만나 위축되지 않은 본성으로 즐거워지는 것 등등. 하지만 어디도 갈 수 없을 때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에버랜드 유튜브 채널의 ‘전지적 할부지 시점’을 본다. 처음엔 화면에 비치는 판다가 귀여워서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내가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게 ‘귀여운 멸종위기 동물 판다’의 일상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화면 속에서 멸종위기에 다다른 동물에 대한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사랑을 읽었기 때문이다.
판다를 기르는 사육사와 사육사를 따르는 판다. 그들 사이의 사랑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물론 내 눈치가 전적으로 옳다거나 바르다고 할 수 없지만, 내게 분명히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우선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에겐 편견이나 권위 같은 것이 없다. 내가 너를 길러준다, 같은 보호자의 자세 또는 수혜자를 낮춰보는 위세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생명과 생명 사이 아주 깊은 바탕에 깔린 사랑이 감지됐다. 그러나 말이 간단해서 사랑이지, 서로 다른 동물 사이가 사랑까지 가는 게 가능할까? 동물이 필요한 걸 해결해 주는 건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된다. 자기 직분에 충실하면 되니까. 그런데 강철원 사육사는 다르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그 사랑이 아니고서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판다를 ‘안다’. 사랑으로 존재와 존재가 교감하니까.
자연분만에 이른 산모 아이바오의 고통을 대할 때, 푸바오를 낳았을 때, 그리고 다시 쌍둥이 판다를 낳았을 때, 산모인 엄마 아이바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강철원 사육사는 미리 알고 해결해 주곤 했다. 마치 서로 이야기해서 부탁하고 약속한 것처럼, 오래전부터 한식구로 살아왔던 것처럼. ‘판다들과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사육사의 마음을 분명히 느낀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사실 사랑한다는 건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먼저 느끼고, 요구하기 전에 해결해 주는 힘일 것이다.
사랑 없는 정치, 영혼 없는 행정
1990년대였을까? 그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신분이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그맘때 어디선가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여성이 여성인 이유인 임신과 출산을 멈추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그땐 상상이었다. 상상이어서 신화시대 이야기처럼 들렸다. 단지 남성과 여성의 가치나 대우가 동등해져야 하고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 상상의 고갱이였을 뿐이다.
그때로부터 30년이나 흘렀나? 언제부턴가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인구가 줄기 시작하면서 줄줄이 사회에 문제들이 생겨났다. 요즘 정부 주요 정책에는 인구 증가, 그러니까 출산 문제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 인구 감소를 막는 정책을 편다고 국민이 낸 세금 수백조원을 퍼부었다지만 인구는 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들에서 돈을 준다고 액수를 내건다. 꼭 흥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 하나 낳으면 얼마! 사람의 고통 중에서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가장 작은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저출산 문제가 돈으로 해결될까?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은 나라를 만들면 누가 자식을 안 낳을까. 유일한 분단에 휴전 중인 국가에서 고용은 불안정하다. 계층, 빈부, 세대, 남녀 사이의 혐오와 불신이 흡사 시대정신 같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해당하고 자살하는지!
선거철이 다가온다. 가능하랴 싶지만, 제발 희망을 보여 달라! 거짓과 임기응변에는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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