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이런 대통령 신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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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언론사에서 인터뷰어의 전범으로 꼽히는 이가 오리아나 팔라치다.
무례할 만큼 공격적이어도 그와의 인터뷰 자체가 세계적 인물로 인정받는 영광이었다.
상대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 인터뷰는 무의미하며 그러면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전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방송대담이 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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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헐거웠고 답변은 공허했다
핵심의제인 김 여사 문제는 비켜가
대통령의 막중한 공적책임 살피길
현대 언론사에서 인터뷰어의 전범으로 꼽히는 이가 오리아나 팔라치다. 무례할 만큼 공격적이어도 그와의 인터뷰 자체가 세계적 인물로 인정받는 영광이었다. 그래서 키신저 덩샤오핑에서부터 호메이니 카다피 같은 독재자들까지 기꺼이 곤욕을 감수했다. 상대를 곤란하게 하지 않는 인터뷰는 무의미하며 그러면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전하게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방송대담이 딱 그랬다.
“질문은 집요하고 답변은 소상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이 사전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질문은 헐거웠고 답변은 공허했다. 앵커는 추가질문, 반론 없이 진행자 역할만 했다. 뭐 하나 얻어듣겠다고 국회 복도에서 뻗치는 후배기자들의 얼굴을 어찌 볼지 모르겠다. 이러니 윤 대통령은 편하게 원론만 늘어놓으면 됐다. 잠 미룬 심야의 90분이 허망했다.
대통령 부인 문제는 대담을 지켜보게 한 가장 중요한 의제였다. 지난 글에 썼듯이 문제는 윤 대통령에 대한 전반적 불만–불공정, 비상식, 책임방기, 불통 같은-이 모두 응축된 상징사안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중치 높아진 이 문제만 제대로 풀면 전체 성적을 크게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까지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런데 답은 김건희 여사의 착하고 여린 성품이었다. 이 문제를 예사롭지 않게 본 국민들만 매정한 인간이 됐다. 명품백도 아닌, 잡동사니 넣는 파우치 따위나 문제 삼는. 이 사안에 대해선 보수층이 더 비판적으로 해결을 갈구해왔다. 행여 이 일이 큰 빌미가 돼 윤 정권의 성공을 해칠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겨우 하루 지났지만 주변의 적지 않은 보수인사들이 참지 못하고 돌아앉는 모습을 보고 있다.
총선이 두 달 남았으니 사태를 돌이킬 시간도 없다. 깨끗한 새 정치를 표방한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급속하게 언어의 신선도를 잃어가고 있다. 엊그제 관훈토론회에서도 이재명이 더 나쁜 정치인임을 강조하는 것 외에 어떤 긍정적 새 가치도 제시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내 안에 불공정과 비상식을 끼고 어떻게 공정과 상식을 말할 수 있나.
범중도계층이 총선에서 여당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대통령 지지도가 나아질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황에서 기댈 건 운동권식 구태정치 청산에다 막연한 야당 견제론뿐이다. 현재로선 이마저도 든든한 의지처가 될지 의문이다. 운동권정치가 그들끼리의 불공정한 기득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쪽도 별반 다르지 않고, 또 여당에 힘을 실어준들 더 나은 정치가 될 것 같지 않다면 그것도 별 의미 없어진다.
다른 얘기지만 최근 새벽 용산 대통령 관저에 난데없이 빈 택시 18대가 몰려들었던 일이 있었다. 누군가의 해괴한 장난질이었겠지만 좋든 싫든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는 정서가 남다른 우리사회에서는 대단히 생경한 사건이었다. 아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런 장난을 쳤다는 건 국가 권력틀의 정점인 대통령의 권위가 크게 추락했다는 상징으로도 볼 만하다. 지도자의 권위(마키아벨리식으로는 두려움) 기반이 통치행위의 정당성이란 점에서 보면 더 걱정스럽다. 어느 진영이 승리하든 총선 이후의 국정도 심히 불안해지는 이유다.
대담에선 대통령 책상의 ‘the Buck Stops here’ 명패가 조명됐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뜻이자, 상술하면 ‘매 순간 대통령으로서 막중한 공적 책임을 의식한다’는 자기다짐이다. 그 의미를 새삼 잘 새겨보기 바란다. (사족-스스로를 경계하는 문구인 만큼 본인이 늘 보도록 돌려놓으면 좋겠다. 남에겐 행여 ‘내 책임이니 내가 다 알아서 한다’로 잘못 읽히지나 않을지.)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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