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변할지라도 본질 잃지 않는 ‘자연’ 그리다

김신성 2024. 2. 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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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동·권지안·박정용 3인展
뭉치고 쪼개지는 ‘암석윤회’ 통해 우주 담아
기억 속의 찰나 포착… 순간의 잔상들 시각화
평범하지만 끈질긴 우리 삶의 모습 재구성

“나는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이치를 담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작은 모래알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 작은 모래알 하나에 지구의 역사가 담겨 있다. 작은 모래알이 뭉쳐서 돌이 되고 바위가 된다. 그래서 돌이나 바위에 기도하는 것이다. 바위는 신들이 드나드는 통로다. 나는 인간이 윤회한다고 믿는다. 모래나 흙이 뭉쳐서 돌이 되고 그것이 부서져 다시 모래나 흙으로 돌아간다. 이를 계속 반복해 왔다. ‘암석윤회’다. 모든 것은 윤회한다. 자연의 이치다.”

작가 윤위동은 중앙대 서양화과 졸업 무렵 이스라엘 갤러리에 발탁되어 해외 전시를 갖는 등 일찍부터 국내외 미술계에 이름을 알렸다.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의 정수를 보여 주는 그의 작품은 각종 전시회나 아트페어에서 확고한 존재감으로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다.
윤위동 ‘모놀로그(Monologue) 848’
꾸준히 작업해 온 ‘모놀로그(Monologue)’ 시리즈에는 모래나 흙이 뭉쳐서 돌이 되고 그것이 부서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암석윤회를 통해 모든 것은 윤회한다는 작가의 믿음이 투영되어 있다. 끊임없는 작업을 통해 돌 하나에도 자신의 신념과 자연 그리고 우주를 다양하게 담아낸다.

특히 ‘거울’시리즈의 돌은 긴 시간 풍파를 겪으며 반질반질해진 모습을 띠는데, 모래가 뭉쳐 거친 돌이 되고, 그 돌이 부드러운 조약돌이 되기까지 돌의 일생을 나타내고 있다. 마치 임산부의 배처럼 보이기도 하는 돌의 형상은 생명이 순환하는 이치 그리고 자연의 희생과 숭고함을 품고 있다.

요즘 새로이 선보이는 작품들은 돌에서 흙이 쏟아진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더해 한층 추상적인 작업으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뉴욕 파크웨스트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진 권지안은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설치 미술, 행위예술,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기억 속의 찰나를 포착해 그 순간의 잔상들을 스케치 없이 자유로이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권지안 ‘허밍 레터(Humming letter)’
특히 그에게 ‘꽃’이란 곧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는 꽃들과 그 위에 순간의 감정을 담은 기억의 멜로디인 ‘허밍 소리’를 시각적으로 담아내며 ‘허밍 레터(Humming Letter)’라는 시리즈를 잇고 있다.

“나에게 허밍은 그 순간의 감정을 담은 기억의 멜로디다. 인간이 경험하는 수많은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난 나만의 리듬을 넣은 문자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것이 ‘허밍’이었고 허밍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냈다.”

작가의 말처럼 그는 기억 속에 사진처럼 남은 찰나의 순간들을 멜로디화하고 이를 시각화해 캔버스 위에 본인만의 악상을 펼쳐내는 것이다. 무의식 속 허밍이라는 음악 낙서…. 심장박동 그래프처럼 보이는 그의 시각적 허밍은 곧 생명력을 표현하기도 한다.

꽃과 돌 그리고 나무, 풀 등 자연물로 인체의 형상을 갖추는 박정용의 ‘스톤 피플(Stone People)’은 태어나고 죽는 삶의 한계를 초월한 신화적 그림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작품 속 요소들은 주변에 흔히 보이는 돌과 꽃, 풀잎이지만 어디론가 열심히 뛰어가고 사랑을 나누며 환희하는 인물들로 되살아난다. 평범하지만 끈질기고 아름다운 우리 삶의 모습을 재구성해낸다.
박정용 ‘키스(Kiss)’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린 대표작을 꼽자면 ‘키스(Kiss)’(2013∼2021) 연작이다. 온갖 꽃과 식물이 만발한 가운데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는 이 그림들은 마음을 주고받는 사랑의 대화를 마치 꿈처럼, 환상적으로 보여 준다. 눈과 코, 입이 배제되어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자연의 축복을 받으며 한자리에 선 이들의 모습에서 평온함과 안락함, 사랑의 감정이 물씬하고, 그 순간의 달콤함은 현실 너머의 세계까지 이어진다.

윤위동, 권지안, 박정용 3인전이 ‘Normal Nature(노멀 네이처): 보통의 자연’이라는 문패를 내걸고 14일부터 3월2일까지 서울 성북구 성북동 갤러리 반디트라소에서 열린다. 돌을 그리는 윤위동과 꽃을 그리는 권지안 그리고 꽃과 돌을 그리는 박정용의 작품을 통해 우리 주변 ‘보통의 자연’을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이다. 작은 모래알들이 뭉쳐 돌이 되고 또다시 쪼개져 흙으로 돌아가며, 싹을 틔우고 꽃이 피고 지면서 그 형태가 변화할지라도 본질을 잃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 곁을 지키는, 늘 보이는 자연 말이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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