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부모 엄마들과 11년 동행…이젠 엄마 행복이 먼저란 생각”

강성만 기자 2024. 2. 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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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대구 아가쏘잉협동조합 김경애 상임이사
김경애 이사가 ‘도나의 집’ 건축에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을 새긴 전시물을 가리키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대구 달서구 마을기업인 ‘아가쏘잉협동조합’(대표 신영철) 상임이사 김경애(50)씨는 2남2녀의 엄마다. 아들 둘은 고2, 고1이고 두 딸은 중2, 초5이다.

결혼 이후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의 삶은 넷째를 낳은 2013년 이후 크게 바뀌었다. 그해 미혼모를 돕는 봉사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그는 2년 뒤 이웃 엄마들 넷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대개 20대 초반인 미혼모와 한부모 가족 엄마(이하 한부모 엄마)의 경제적, 정서적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초기엔 한부모 엄마들에게 옷 만드는 재료를 제공하고 재봉 기술도 가르쳐 그들이 경제적으로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다 몇 년 전부터는 아이 돌봄과 긴급 생활안정자금 지원도 하고 있다.

최근엔 비영리 단체인 ‘도나의집사회적협동조합’을 따로 설립해 대구 월배시장 안에 희망놀이터와 문화센터 기능을 겸한 카페도 열었다. “카페 운영에는 조합원 14명이 참여하는데요. 한부모 엄마가 8명이고 나머지는 후원자이죠.”

지난 5일 대구 선사유적공원 근처 복합문화공간 ‘도나의 집’에서 김 이사를 만났다.

아가쏘잉협동조합에서 판매하는 제품들. 강성만 선임기자

“카페에서 일하는 한부모 엄마가 8살 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에 가려고 공부 중인데요. 아이 때문에 카페에서 길게 일하기 어렵다고 하니 7살 아이를 키우는 다른 한부모 엄마가 대신 아이를 봐주겠다고 나서더군요. 그렇게 서로 힘이 되어주는 걸 보며 우리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직원이 모두 여섯인 아가쏘잉은 수건이나 파우치 등 아기나 엄마를 위한 용품을 주로 만든다. 지난해 매출은 약 3억원이었다. 설립 초기엔 재봉 교육을 받은 한부모 엄마들이 직접 물건을 만들었으나 “엄마들의 각기 개별적인 사정 등이 겹치면서” 지금은 전문 재봉사와 기술자들이 한부모 엄마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단다. 그는 아가쏘잉과 동반하며 경제적 자립을 이룬 한부모 엄마는 모두 넷이라고 했다. “작년에 아이 둘 키우는 엄마가 한 사회복지법인에 취업했는데요. 자립엄마 4호입니다.”

아가쏘잉에는 지역주민과 고객, 수강생 출신 등 약 20명으로 구성된 어깨동무봉사단이 있다. “한부모 엄마들이 기댈 수 있도록 자신 어깨를 내어주는 분들이죠. 재봉 교육에서 아이 돌봄이나 양육 상담은 물론, 언니가 되어 20대 초반 엄마들의 고민을 들어주죠. 사실 한부모 엄마들은 한부모 가족 복지 시설을 나오면 완전히 혼자가 됩니다. 기초수급비나 주거비 지원 신청도 어떻게 할지 잘 몰라요.”

현재 아가쏘잉과 동행하는 한부모 엄마는 약 70명이다. 이 중엔 대구에 살다 타지로 이사한 엄마들도 꽤 된단다. 아가쏘잉은 이들에게 매년 김장김치를 보내고 4년 전부터는 11월16일에 엄마의 날 행사도 한다. 도나의 집 인근에 한부모 엄마를 위한 임시 쉼터용 월세방도 구했다. “(임시 쉼터에)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엄마가 살고 있어요. 한부모 엄마들이 위급한 사정이 생겨 여성 쉼터 같은 곳에 들어가려고 해도 가정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만 가능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입소 절차에만 두어 달 걸려요.”

그는 “어깨동무들과 함께” 아이 돌봄도 한다. “6년 전에 시설에서 돌이 안 된 아이를 키우던 엄마가 아이를 홀로 두고 길게 외출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이가 혼자 있다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니까요. 그때 엄마에게 다음엔 꼭 나에게 맡기라고 말한 게 아이 돌봄의 시작이었죠. 처음엔 신청 사유가 주로 ‘엄마가 아프다’였는데 나중에는 ‘남자친구와 여행가고 싶다’, ‘친구들과 자유롭게 맥주를 먹고 싶다’ 등 솔직히 이유를 밝히더군요.”

2015년 조합 만들어 한부모 엄마들
경제적, 정서적 자립 지원하는 활동
재봉 교육에 나눔 돌봄·자금 지원
최근 한부모 엄마들 운영 카페도 열어
‘윗실과 밑실 만남’ 미싱 인문학 강의도

“처음엔 엄마 헌신 당연하게 여겼으나
이젠 엄마의 삶 소중하게 영위했으면”

코로나 팬데믹이 오고는 종잣돈 300만원으로 긴급 생활안정자금 지원에도 나섰다. “코로나 때 알바도 구하기 힘들어 휴대폰까지 끊기는 엄마들이 있었어요. 기댈 친정이나 시댁도 없는 엄마들에게 사회적 신뢰를 느끼게 하고 싶어, 영수증도 받지 않고 빌려주었죠.” 그는 “그간 약 30명이 이용했으며 잔고는 27만원”이라고도 했다.

한부모 엄마와 함께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봉사란 말에 숨어 내가 엄마들에게 뭔가 줄 게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았죠. 그러다 어느 순간 계단을 내려와 엄마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그런 깨달음을 얻을 때이죠.” 말을 이었다. “처음엔 봉사를 하면서도 ‘엄마가 왜 저러나’ 그런 마음도 있었어요. 진정한 교감을 하지 못한 거죠. 또 엄마가 아이에게 헌신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소중하게 자기 삶을 영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을 태어나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젠 당신의 삶을 돌보라고요. 그래서 생활자금 지원 때 아이보다 엄마를 위해 돈을 썼으면 한다는 말도 하죠.”

그는 지난해 성탄절 전날 받은 전화를 떠올리며 그간 활동 중 보람이 컸던 순간이라고 했다. “7년 동안 우리를 지켜만 본 한부모 엄마가 ‘공부가 너무 하고 싶다, 간호대를 가고 싶다’며 상담 신청을 했어요. 이 엄마 이야기를 들은 뒤 영어와 수학 지도 교사를 구해주기로 하고 시간제 알바도 알선해주었죠.”

그는 결혼 전 국어 교사를 지냈다. 재봉은 큰 아이 임신 때 태교를 위해 배웠단다. 2012년 대구의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한부모 엄마들에게 재봉교육 재능봉사를 한 게 지금의 삶으로 이어졌다. “갓 출산한 한부모 엄마와 아이를 지원하는 곳이었는데요. 프로그램이 부족하단 말을 듣고 제 재봉틀을 들고 가 가르쳤어요. 차츰 수강생은 느는데 재봉틀이 부족하더군요. 그러다 누군가 마을기업을 만들면 지원금으로 재봉틀을 살 수 있다고 하고 또 구청에서도 권유해 마을기업을 설립했죠.”

그는 재봉 교육을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30분 정도 ‘미싱 인문학’ 강의를 한다. “재봉은 윗실이 밑실을 만나야 합니다. 윗실이 내려가 밑실을 끌고 올라오면서 시작되거든요. 이처럼 사람도 경계를 넘어 서로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한부모 엄마들과 함께하며 사람이 언제 행복해지는가 생각해보면, 경계를 넘어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때가 아닌가 해요. 또 윗실과 밑실을 거는데 각각 8단계, 4단계 과정을 거치는데요. 어느 한 과정이라도 건너뛰면 바늘땀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요. 인생도 그렇지 않으냐는 이야기도 해요.”

한겨레와 인터뷰 중인 김경애 이사. 강성만 선임기자

아가쏘잉은 2022년 8월에 3층짜리 도나의 집을 개관했다. 행안부 지역자산화 사업에 신청해 지원받은 10억원이 주요 재원이었다. ‘도움과 나눔’을 줄여 명명한 이 공간은 제품 생산과 교육, 전시 외에 서로 위로의 밥상을 함께 나누는 ‘도나의 식탁’, 의료보험이 없는 이주민들에게 의료 봉사를 제공하는 공간 등도 들어섰다. 하지만 대출이자 부담이 크게 늘면서 운영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김 이사에 이어 대표를 맡은 신영철씨는 “도나의 집이 외롭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기대고 차 한 잔 마시면서 힘을 얻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되길 바라는데 이자 부담만 연 1억이 넘어 운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부모 엄마를 비롯해 이웃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준다는 공간 조성의 취지를 계속 실현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 이사에게 지금 당장 국가가 한부모 엄마들에게 시급하게 해줬으면 하는 게 뭔지 물었다. “시설에서 퇴소하면 한부모 가족 일반 수급을 받아야 하는데요. 이때 반드시 (한부모 엄마의) 부모 동의가 있는 3개월 금융 거래 내역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부모가 안 계시거나 연락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어요. 우리와 동행하는 17살 한부모 엄마도 이런 사정으로 아무것도 받지 못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없다고 하더군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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