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팔도에 글과 성경 전한 전도부인, 근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

양민경 2024. 2. 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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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미국 북장로회 한국선교와 전도부인’(케노시스) 펴낸
김은정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
1892년 발간한 선교잡지 ‘우먼스 워크 포 우먼’에 실린 전도부인들. 김은정 예장 통합 전여교연 사무총장 제공

“이 새로 온 손님은 나이가 갓 마흔이 자칫 넘은 듯한 곱게 늙은 여편네라. 헐고 낡은 치마를 쓰고 검정물 들인 솜둔 조백이를 회동그랗게 쓰고 무엇인지 참빗장수의 빗주머니 같은 것을 메고 태연히 들어와서 양지쪽 마루끝에 걸터앉으면서, ‘네에 나는 정동교회에서 왔소.’”

1898년 창간한 황성신문에 실린 순한글소설 ‘몽조’ 속 ‘전도부인’(傳道婦人) 모습이다. 소설에서 정동교회 전도부인은 ‘헐고 낡은’ 쓰개치마를 쓰고 ‘빗주머니 같은 것’에 성경과 전도지를 넣고 다니며 동네 곳곳을 가가호호 방문한다. 규방과 가마, 쓰개치마 속 여인을 스스럼없이 마주한 당시 전도부인은 당대 여성의 고민거리를 들어주며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전했다.

김은정 예장 통합 전여교연 사무총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 사무실에서 장로교 전도부인의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개화기 당시 언어·문화적 장벽으로 선교의 길이 막힌 서구 선교사를 대신해 조선 여인을 위한 순회 전도와 자선사업에 앞장선 전도부인. 이들을 ‘기독 여성 지도자의 원형’으로 조명한 책이 최근 나왔다. 김은정(53)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전국여교역자연합회(전여교연) 사무총장이 펴낸 ‘미국 북장로회 한국선교와 전도부인’(케노시스)이다. 책은 김 사무총장의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박사 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생전 그에게 한국교회 여성 지도력의 역사를 기록할 것을 주문한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등 여러 여성 신학자의 후원에 힘입어 나온 결실이기도 하다. 지난달 29일 서울 동대문구 전여교연 사무실에서 김 사무총장을 만났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펴낸 ‘한국교회 전도부인 자료집’에 따르면 그간 집계된 전도부인의 수는 1215명이다. 이중 감리교 전도부인이 717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장로교(209명) 소속이다. 김 사무총장은 장로교 전도부인의 수가 당시 교세보다 현저히 적은 데 궁금증을 품었다.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 존 헤론 등을 파송한 미국 북장로회는 가장 먼저 한국에 정착한 선교회로 서울 평양 대구 안동 등 주요 도시에 선교부를 뒀다.

그는 이런 배경의 장로교가 전도부인이 적은 이유로 ‘무급 전도부인’의 존재를 꼽았다. 한국교회 자립을 강조하는 네비우스 정책을 따른 장로교가 전도부인을 교파 소속이 아닌 무급 평신도 여성 지도자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1910년 미국 남·북, 호주, 캐나다 4개 장로회로 구성된 장로교 통계에 잡힌 전도부인은 44명인데 비해 미국 북장로회는 166명으로 보고한다. 후자는 자원한 전도부인까지 포함했기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난 것”이라며 “교권에 소외돼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장로교 전도부인의 발자취를 기록하기 위해 이번 연구에 나섰다”고 말했다. 또 “미국 북장로회는 이북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는데 분단이 되면서 한국교회 주요 선교 현장이 사라져버렸다”며 “한반도 전체 교회사를 밝힌다는 사명감으로 이번 주제를 연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교잡지 ‘우먼스 워크 포 우먼’(Woman’s work for Woman)과 ‘더 코리안 미션 필드’ 등에 담긴 미국 북장로회 여성 선교사의 보고서와 편지를 분석해 장로교 전도부인의 활약상을 추적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전도부인은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여성 지도자이자 ‘근대 여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신식 교육을 받은 ‘신여성’이 역사에 등장하는 1920년대 전까지 이들은 성경과 찬송 및 역사와 지리, 한글 등을 전하며 조선 팔도 여성의 복음화와 문명화에 힘썼다. 대표적 사례가 한국YWCA 설립자인 독립운동가 김필례(1891~1983)의 어머니 안성은이다. 전도부인인 안씨는 황해도 곳곳을 다니며 여성에게 성경과 글을 가르쳐 ‘황해도 여성의 어머니’로 불렸다. 어머니의 부재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 김필례였지만 훗날 황해도 방문 시 ‘선생님 어머니 덕에 글과 성경, 기도를 배웠다’며 고마워하는 이들을 여럿 만나며 전도부인의 저력을 실감한다.

1902년 발행한 선교잡지 ‘우먼스 워크 포 우먼’에 실린 사진. 사진 하단에 '머릿수건을 쓴 평양여사경회 참가자들'이라고 적혀있다. 김은정 예장 통합 전여교연 사무총장 제공

전도부인과 여선교사가 주최한 사경회는 여성 교육의 장이었다. 여성들은 이곳에서 기독교뿐 아니라 위생관념 산수 육아법 등을 배웠다. 세계정세를 파악하는 안목도 길렀다. 1898년 소래교회 여성 교인들은 인도의 기근을 도와달라며 은가락지 네 쌍을 정동교회에 보내기도 했다.

전도부인은 기독 여성의 사회적 연결망인 여전도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1919년 전도부인 어윤희 전도사 등은 이 조직을 활용해 개성의 항일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여전도회는 이후 여성 단체와 여성 고등교육기관 설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전도부인이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쓴 표현이 ‘천국’ ‘참 재미’ ‘예수의 사랑’이란 것도 흥미롭다. 김 사무총장은 “초기 여성 성도들은 사경회에서 다른 지역에 사는 기독 여성을 만나며 소수자로 살던 고립감을 덜어냈다”며 “‘고아와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말씀을 실천키 위해 전도부인이 심방 중 발견한 고아를 같이 돌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연세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인 그는 조만간 구한말 기독 여성 지도력 연구에 착수한다. 1910년대 교회들의 당회록을 분석해 당시 집사로 활동한 여성의 활동을 살핀다. 김 사무총장은 “한국교회가 여성 문제에 있어 보수적이라고 보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적잖은 게 현실”이라며 “한국 기독교 선교 초기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이 연구로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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