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박선주, '보컬트레이너의 보컬트레이너'
일본 중국서도 보컬트레이너로 맹활약
한국어에 맞는 전문적 발성 체계화
“보컬트레이닝은 아이덴티티 찾아주는 행위”
90년대 초부터 MIDI를 다룬 첫 여가수이기도
양현석, 이상민, 이재훈 등이 MIDI 제자
많은 히트곡을 쓴 유명 작곡가‧프로듀서
오는 가을 솔로 6집 발매
책임감 일깨워주기 위해 ‘혹독한 심사평’
“전소연은 한국의 레이디가가, 효린은 비욘세”
“태연‧아이유, 이미 극락급(끝판왕) 존재”
“이효리 보컬트레이닝 꼭 해보고 싶어”
“김용필은 나의 뮤즈, 50대로선 최고의 발성”
제일 좋아하는 호칭은 ‘에이미 엄마’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박선주(53)하면 '보컬트레이너'라는 명칭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김범수, 규현, 시아준수(김준수), 윤미래, SG워너비, 바비킴 등등 당대의 TOP 보컬은 물론 이병헌, 정우성, 원빈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슈퍼스타가 박선주에게 교습받았다. 1세대 보컬트레이너로서 정점을 찍고 일본과 중국에 진출해 '쿠라키 마이'를 비롯한 현지 여러 스타를 지도하기도 했다.
박선주는 많은 히트곡을 쓴 작곡가이자 음악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바비킴 '사랑 그놈'과 DJ DOC '슈퍼맨의 비애' '고해성사'를 필두로 쿨 '너의 집앞에서', 김종국 '잘해주지 마요', NRG '티파니에서 아침을', 2AM '1초만 더', 변진섭 '몹쓸 사랑' 등 저작권협회에 187곡이 등록돼 있다. DJ DOC '슈퍼맨의 비애'와 쿨 3집 등 여러 작품을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지금도 곡 쓰기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때그때 좋은 멜로디나 가사가 떠오르면 메모하는 스타일이다. 아직 미공개 작품이 80여 곡이나 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특정 캐릭터가 눈에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 생각하며(빙의) 곡을 써 내려가는 스타일이다.
또한, 박선주는 국내에 MIDI가 유행하기 이전인 1993년부터 '아타리(Atari)'로 작업하며 여러 가수 및 관계자들에게 MIDI를 레슨했다. 음악에 MIDI를 활용한 국내 최초의 솔로 여가수‧싱어송라이터인 셈이다. 당시 '미디앤사운드' 대표가 "아타리에 관해선 박선주가 1등"이라고 추천해 '서태지와 아이들' 양현석이 박선주에게 미디를 배운 바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하여가'를 준비할 즈음이었어요. 양현석이 직접 제게 전화를 했죠. 그래서 양현석의 연희동 집으로 가 아타리 세팅을 해주고 작동법 등 2개월 정도 레슨을 해줬습니다."
이 인연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하여가' 첫 공연 때 박선주를 깜짝 초대해 6일간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당시 양현석은 하모니카, 박선주는 건반을 연주했다.
이외에 룰라 이상민, 쿨 이재훈 등 여러 가수가 박선주에게 MIDI를 배웠다. 가수뿐만 아니라 당시 아타리 사용자나 관계자들이 기기 문제가 생기면 박선주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이후 박선주는 MIDI 전반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99년 일본으로 갔다. 아타리로 시작해 큐베이스 등 다양하게 경험한 박선주는 현재 '로직'을 사용하고 있다.
교수로서 20여 년 가까이 여러 대학에서 후학 양성에도 관심을 늦추지 않았다.
물론 박선주의 근간은 가수이며 바로 이 지점부터 음악가로서의 모든 활동이 시작됐다. 1989년 '귀로'로 데뷔한 올해 34년 경력의 중견 가수다.
이번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에선 가수(싱어송라이터), 보컬 선생, 작곡‧작사가, 프로듀서, 교수 등 다방면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레전드 보컬트레이너' 박선주를 만났다.
서태지와 아이들 출현을 기점으로 기타, 베이스, 보컬, 드럼 등 실용음악 학원이 유행처럼 생겨났고 90년대 중후반부턴 홍대와 신촌에 작은 규모의 보컬 전문학원들이 개원했다. 주로 보컬 지망생을 위한 학원들이었고 그중 일부 학원에 유명 가수 몇 명 정도가 레슨을 받는 정도였다.
이후 2001년 강남 압구정동에 PMI(Parks Music Institute) 보컬전문학원이 오픈했다. PMI는 일반인은 받지 않고 현역 가수와 데뷔를 앞둔 유명 소속사 연습생 중심의 프로 음악인 전용 보컬학원이었다. 브아걸(브라운아이드걸스) 제아, SES, 그리고 당시 15살이던 SM 연습생 시아준수도 이 학원에서 보컬트레이닝을 받았다. 이외에 숱한 한국 대중음악계의 스타들이 이곳을 거쳐 가며 PMI는 가요 보컬‧발성의 '성지'이자 '요람'으로 우뚝 섰다.
PMI 설립자이자 대표 보컬트레이너가 박선주다. BMK 김현정, 김연우 등 유명 가수가 강사로 일했다. 한참 가수 활동을 하던 시절임에도 '업그레이드'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오른 박선주가 2001년 귀국과 동시에 설립한 보컬 전문학원이 PMI다.
몇 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하며 많은 걸 깨달은 박선주는 가수가 오랫동안 자기 컨디션을 유지하며 노래하는 방법의 체계화 및 보급을 위해 보컬트레이닝 전문학원을 차린 것이다.
갖고 있던 돈으론 부족해 우리은행에서 5000만원 대출받고 나머지는 지인에게 투자받아 PMI를 오픈했다. 압구정동에서도 좋은 위치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곳에 40평 규모의 학원을 오픈하는데 인테리어 등 온갖 시설비 포함 2억이 들었다. 설립 초기엔 '재능있는' 신인 가수 20명이 학생이었다. 보컬트레이닝을 거친 이들을 추후 각 기획사에 연결해주려는 포부도 있었다.
"PMI를 개업하며 함께 일하던 관계자와 '보컬코치' '보컬트레이너' 중 뭐를 사용할까 고민하다 보컬트레이너란 명칭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보컬 전문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때인 만큼 박선주는 전문직으로서의 보컬트레이너의 역할 및 그 영역 의미를 체계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PMI 보컬학원 오픈과 함께 '보컬트레이너'란 명칭을 상표 등록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이름이 '통용화'된 명칭이라 상표 등록이 불가하다는 말을 듣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방식으로 커리큘럼을 짜 다른 학원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PMI의 성공은 음악가로서 박선주의 뛰어난 역량도 있었지만, 타이밍도 절묘했다. PMI 학원 오픈 몇 개월이 지난 후 가수들이 MR에서 AR로 노래하지 못하게 방송 규제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면서 많은 가수가 PMI로 와서 보컬트레이닝을 받았고 눈코 뜰 새 없이 호황을 누리게 됐다.
"그간 보컬트레이닝에선 세스릭스 발성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세스 릭스 발성은 영어권, 클래식과 뮤지컬에 기반한 방식이라 (세부적으론)한국 가요와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죠. 한국 가요는 자음과 모음이 많아서 성대의 움직임이 많이 필요합니다. 영어로 가능한 발성인데 한국어에 적용하면 소리 발음이 흐트러지고 부자연스러워지는 이유이기도 해요. 따라서 한국어에 맞는 전문적인 발성 체계를 확립하고자 했죠. 김범수, 시아준수, 규현 등 많은 가수를 이런 방식으로 트레이닝했어요. 이외에 윤미래, SG워너비 등은 물론 이병헌, 정우성, 원빈 등 배우들도 이런 방식으로 트레이닝했습니다."
박선주는 소리, 호흡 등 디테일을 더해 가요 발성을 다듬어갔고 이런 와중에 '가요 보컬트레이닝=박선주'라는 게 공식화됐다. SM엔터테인먼트는 데뷔를 앞둔 소속 아이돌을 모두 박선주의 PMI에 보냈고 YG, JYP 등 다른 메이저 기획사도 우선적으로 박선주를 찾았다. 업계에선 "PMI로 가는 연습생은 곧 데뷔"라는 말이 관행처럼 나올 정도였다.
이렇게 호황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박선주는 자신의 본업인 가수 활동을 위해 "2004년 박선주 4집에 집중하겠다"를 이유로 PMI를 접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앨범이 솔로 4집 '아포리즘(A4rism)'이다.
그러나 가수와 보컬트레이너는 그녀에겐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 새 앨범 발매하며 다시 보컬트레이너를 병행하기 위해 '모래공장'이란 보컬 전문학원을 오픈하기에 이른다. '모래공장'이란 이름은 "모래처럼 빛나는 재원을 육성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박선주는 이 학원을 몇 년 운영하다가 경영에서 빠지고, PMI 시절 함께 일하던 부원장이 현재까지 '모래공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PMI와 모래공장 등 일련의 보컬전문학원을 통해 돋보이는 티칭을 선보였고 당대의 유명 가수들을 트레이닝하며 박선주의 명성은 일본과 중국 등으로 퍼지며 많은 러브콜이 오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이 적극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박선주는 일본 'Being'과 전속 계약하고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보컬트레이너 및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일본 내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혀갔다. 이 당시 제자 중엔 2000만 장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린 스타 '쿠라키 마이'도 있다.
일본에 이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에서 3년간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 가창을 총괄하는 보컬트레이너로 활동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이 완성된 직후 중국의 한류 콘텐츠 제제인 '금한령(대한령)'이 내려지며 방송으로 나오진 못했다. 이 프로그램의 보컬트레이너로 활약할 때도 현지에서 그녀가 보컬 레슨을 너무 잘한다고 금세 소문이 퍼지며 여러 곳의 현지 기획사에서 러브콜이 왔다. 중국 내에서의 인기로 박선주는 광저우에 보컬학원을 설립하려고 했으나 코로나가 터지면서 귀국하게 됐다. 중국 제1도시 상하이가 아닌 광저우를 택한 이유는 이미 자신의 선배인 김형석 작곡가가 상하이에서 보컬학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저우를 택했던 것.
최근에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여러 곳에서 박선주에게 K팝학원을 만들고 싶다는 취지의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박선주는 자신만의 보컬 레슨 노하우(방식)를 특허 기술로 인정받아 유지하기 위해 2017년 특허청에서 보컬트레이닝 특허 심사를 받았다. 담당자는 박선주가 보낸 내용들에 대해 "특허 출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특허 출원이 되려면 제 기술을 공개해야 합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 특허 출원을 받을 예정입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오픈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죠."
"국내의 모든 보컬트레이너가 사용하고 있는 제반 시스템은 제가 만든 5가지 기법, 즉 발성-발음-음정-리듬-감정에 토대를 둔 것입니다."
"가수에서 보컬트레이너로 방향을 튼 데엔 3에서 4옥타브까지 올라가던 쨍쨍한 목소리를 잃은 것에도 기인합니다. 젊을 때의 저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 모른 채 마구 성대를 혹사시켰는데, 결국 '재능'이 '재앙'으로 된 것이죠. 그러던 어느 날 저처럼 목소리를 잃는 가수들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목 컨디션을 유지해가며 자신의 재능을 계속 갖고 갈 수 있는 여러 방식을 체계화시켜야겠다고 결심했고 그게 보컬트레이너였어요."
박선주의 롤 모델은 김현식(국내)과 휘트니 휴스턴(국외)이다. 1989년 '귀로'로 데뷔할 당시 휘트니 휴스턴에 미쳐 있었다. 10개월 동안 휘트니 휴스턴 'Greatest love of all'을 하루 8시간 이상 매일 연습할 만큼.
"고교 2학년 때 대학로에서 버스킹을 했었어요. 어느 날 한 남자가 제게 다가와 '너 노래 정말 잘하는구나'라며 저를 데리고 갔는데 그게 김광석이었어요. 이후 대학로에서 김광석 님과 함께 노래 부르며 활동하기도 했죠."
김광석은 어린 박선주에게 "넌 반드시 유학 가야 해"라며 대중음악의 본고장 해외 유학을 통해 더욱 많은 걸 배워보라고 적극 추천했던 두 명 중 하나다. 또 한 사람은 광고음악 및 KBS 음악음악프로듀서로 유명한 강승원이다.
박선주는 8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기타, 베이스, 드럼 등 여러 악기를 연주할 줄 안다. 모두 독학으로 배웠다. 보컬은 김현식, 보이싱은 유재하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중 하나는 박선주가 가수보다 작곡가로서 먼저 데뷔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오래전 '시간 속에서'라는 곡을 작사작곡했다. 이후 시간이 지나 이정선이 이 곡을 부르며 앨범에 수록된 바 있다. 이 곡을 마음에 들어 한 이정선이 박선주에게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박선주는 1990년 솔로 1집 '하루 이틀 그리고...', 93년 2집 '내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 95년 3집 'Alphabet Soup', 2006년 4집 'A4rism', 그리고 2007년 5집 'Dreamer'를 발매했다.
"2집은 록이 베이스이고 3집은 힙합, 4집은 평소 해보고 싶은 걸 다 쏟아부은 앨범입니다. 5집은 가사, 즉 제가 쓰고 싶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기를 썼어요. 사랑 이야기를 제일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 가장 애착이 많은 앨범으로 5집을 꼽고 싶어요. 4집은 평단에서도 호평받았고 상도 많이 받은 작품이지만 무언가 많이 묻어있는, '세팅된' 듯한 작품이었어요. 부자연스럽다고 할까요? 그러나 5집은 최소의 악기로 편성해 꾸밈없이 마음이 가는 데로 자연스럽게 했어요. 이제 6집에선 더 자연스럽고 솔직해지려고 합니다."
오는 가을 발매 예정인 박선주 6집은 100% 재즈 스타일을 지향한다. 거기에 일렉트로닉, 애시드, 힙합 등 여러 스타일을 조금씩 가미해 듣는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6집은 몇 년 전에 데모 녹음을 끝냈지만, 코로나로 인해 발표하지 못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재작업해서 하반기에 발매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전처럼 100% 자작곡, 싱어송라이터 박선주 인생의 깊이가 더 묻어나는 음악세계를 선보인다.
"미국 유학 시절 한 교수가 저한테 '재즈는 60살 넘어서 하는 거야'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땐 이 말뜻을 몰랐는데 이젠 조금 알 것 같아요."
솔로 6집을 작업하며 가장 많이 고민한 부분이 사운드(소리)다. 박선주는 평소 즐겨 듣는 50~60년대 재즈 사운드는 유독 듣기 편하게 다가오지만 지금의 재즈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주파수의 문제였다.
"피아노 튜닝시 440Hz가 기준입니다. 일반적으로 440에서 청명하고 깨끗한 음역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죠. 그러나 1950~60년의 음악은 440Hz이 아니라 432~438Hz 사이가 대부분입니다. 모차르트, 쇼팽 음악이 모두 432Hz죠. 432와 440Hz을 꾸준히 비교해서 들어봤는데 개인적으론 432Hz에서 나오는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냇 킹 콜, 토니 베넷 등이 모두 432에요. 따라서 이번 앨범은 432~436Hz 사이에 맞추었고 앨범 타이틀도 432 헤르츠를 뜻하는 '432'와 박선주의 '박'을 합쳐 '432 Park avenue'라고 지었습니다. 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해 4집 타이틀을 '잠언'으로 했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 6집은 이런 것과 너무 다른 작명일 수 있죠."
박선주는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등 모든 악기를 432Hz에 맞춰 연주했다. 일본 스튜디오에서 실력파 현지 뮤지션들이 이미 레코딩 세션을 끝낸 상태다.
박선주는 속 시원하게 평가한다고 해 '사이다 심사'라는 칭찬도 듣지만 혹독하게 심사평을 해 '안티'가 많기도 하다. 출연자들에게 혹독한 평을 하는 이유가 뭘까? 여기엔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며 그 외 또 다른 깊은 뜻이 있다.
"출연자에겐 좋은 얘기도 많이 하는데 방송에선 유독 나쁜 얘기 중심으로만 편집되고 있어요. 해당 프로그램에서 그러한 악역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고 저는 '악역'에 동의한 것이죠. 이렇게 심사평을 하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내가 맡은 '악역' 멘트가 당연히 관심을 끌게 되고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는 데에도 일조하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제자들에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재능은 하느님의 영역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데, 이 재능인 '창조'라는 걸 하기 때문이죠. 철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모든 분야는 '있었던 것에 대한 것'이지만 창조의 영역은 전혀 다른 문제예요. 따라서 창조하는 영역인 음악엔 그만큼 엄청난 책임감도 따릅니다. 음악적 재능으로 사람들을 서로 죽이자는 내용의 곡을 만들 수도 있고 세상을 즐겁고 아름답고 행복한 곳으로 보이게 하는 곡도 만들 수 있죠. 재능을 받았다는 건 그 재능을 재앙으로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동반된다는 걸 가르치고 있습니다. 혹독한 심사평은 그러한 책임감을 강조하기 위함이기도 해요. 큰 자극을 받아 음악가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계속 '악역'을 선택할 것입니다."
"선생님으로서의 철학은 '내가 너의 첫 번째 관객'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나부터 감동시키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결코 감동시키지 못한다. 결국 그건 돈을 '훔치는' 것, 사기에 불과하죠. 나를 감동시켜 봐. 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봐. 제 티칭 철학도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024년엔 6집 앨범 및 그 외 음악가로서 음악에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NYU 출신 감독이 대본을 쓰고 박선주가 음악을 총괄한 음악영화도 연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부분은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한 것이라 더 이상 언급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이처럼 올해 계획 중인 여러 음악 관련 플랜을 위해 당분간 심사활동도 자제할 예정이다.
이러한 여러 계획 중에서도 보컬트레이너로서 여전히 올해에 꼭 가르치고 싶은 가수가 몇 명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효리다. 누구보다 이효리의 특장점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박선주는, 따라서 보컬리스트로서 이효리의 발전을 더욱 효과적으로 해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박선주의 딸 에이미가 제주 국제학교에 재학 중이라 제주도는 이제 또 하나의 터전이기도 하다. 이미 이효리와는 이웃인 셈이다.
보컬트레이너‧가수‧작곡가‧작사가‧프로듀서‧교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박선주가 가장 듣기 좋아하는 호칭은 '에이미 엄마'다. 아이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무릎을 꿇어보기도 했다. 에이미에겐 17개월 때와 4살 때 두 번 화를 냈다. 꾸중하지 않는 엄마에게 "학교에 가면 다른 엄마들은 애를 때린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우리 엄마는 나한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게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 이에 대해 박선주는 "자라면서 이제 속 한번 썩이지 않는 에이미라서 화를 낼 이유가 없다"고 했다. "에이미가 주는 행복이 너무 크고 감동이며 (그래서)에이미 하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더 이상 애는 갖지 않으려고 하다.
박선주는 지난 12월 27일 발매한 '미스터트롯2' 김용필의 '사내의 밤' 노랫말을 썼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리려고 했다. 김용필 '사내의 밤'에 대해 박선주는 자신의 인생곡이라고 말했다.
"주변에선 제게 남자 가수들의 곡을 잘 쓴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여기엔, 남자 사회에서 36년 넘게 일을 해오며 무의식적으로 다져진 감각도 있을 겁니다. 남자의 마음으로 일해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남자의 마음을 잘 알죠. '사내의 밤'은 바비킴 '사랑 그놈' 다음 편 이야기입니다."
"발성법, 무대 스타일 등에서 김용필은 예전의 나 자신을 보는 느낌입니다. (따라서)제겐 뮤즈 같은 존재죠. 프로듀서로서 해보고 싶은 게 많은 가수일 뿐 아니라 김용필은 이미 50대로선 최고의 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블랙핑크는 4명 모두 보컬이 너무 뛰어납니다. 특히 로제의 경우 음색이 환상적이죠. 이런 톤은 정말 나오기가 어려워요. 자기 삶과 생각이 목소리에 잘 담겨 있어요. 상상력과 머릿속에 들어있는 게 굉장히 큰 사람이랄까요?"
"아이덴티티가 기술을 넘어야만 그 사람의 진정한 아이덴티티가 나오는 것이죠. 기술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은 아이덴티티가 아닙니다. 보컬트레이닝 또한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찾아내 주는 행위입니다. 발성 발음 음정 등 테크닉을 가르치는 게 보컬트레이닝이 아니에요. 이러한 박선주식 보컬트레이닝 모토에 최적화된 제자 가수로 바비킴, 타샤, 윤미래, 김준수를 꼽고 싶어요."
"테크닉적으로 가장 완벽한 가수는 국내에선 김범수를 꼽습니다. 김범수는 기술적으론 이미 세계적(월드와이드) 입니다."
박선주는 1993년 미국에서 바비킴을 처음 만났다. 이후 한국에 온 바비킴을 제작자에게 소개해줬는데 그 제작자가 전홍준 대표다. 피프티피프티 소속사의 바로 그 전홍준 대표다.
"보컬트레이닝 수준은 한국이 세계 최고입니다."
"보컬은 결국 인간의 삶과 생각의 반영입니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그 사람의 삶에서 비롯되는 것, 절대 트레이닝으로 바뀌는 게 아니죠. 보컬트레이너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요.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을 끌어낼 수 있는 보컬트레이너냐 아니면 발성 등 기술적인 것으로만 음정박자를 탁월하게 잘 맞춰 노래부르게 하는 보컬트레이너냐죠. 지금의 트레이너들은 두 번째 쪽을 강조하고 있어 보여요. 매우 잘못 가고 있는 것이죠. 고음을 더 잘 낼 수 있게 끌어 올려서 모두 김범수로 만들어버리고 모두 나얼로 만들어버리는 식이죠. 각자 지닌 그만의 특장점, 오리지널리티를 잘 살릴 수 있는 트레이닝이 중요합니다. 고음 잘 내는 것 따위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게 목소리, 따라서 목소리는 곧 인성입니다. 우리 같은 소리의 전문가들은 목소리 안에서 그 사람을 읽을 수도 있어요. 단 5분만 만나도 그 사람의 학력 성격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일종의 직업병이죠."
"K팝 아이돌 중 발성 가창면에서 몇 명을 최고로 꼽을 수 있겠는데 그중 하나가 (여자)아이들입니다. 최근 걸그룹 중에선 (여자)아이들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소연(전소연)이 그 중심이죠. 경연에 나왔을 때부터 남다르게 봤는데 시간이 갈수록 역시라고 감탄하게 만드는 게 소연이죠. 자기 음악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는 것도 돋보입니다. 'Super lady'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가창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늘었기 때문이죠."
"로제(블랙핑크), 소연과 함께 소미(전소미)도 대단해요. 전소미는 노래에서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랩도 하고 보컬도 하는 등 혼자 모든 걸 다 할 줄 알죠."
"태연, 아이유 등은 이미 하이레벨, 극락급(끝판왕) 같은 존재입니다."
"시스타 효린 또한 대단합니다. 효린은 비욘세급이라고 보고 싶어요. 효린은 자신이 가진 역량에 비해 평가절하되고 있는 대표적인 보컬 중 하나입니다. 한국의 레이디가가가 전소연이라면 한국의 비욘세는 효린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정국(BTS)의 이번 솔로앨범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21세기의 진화한 마이클 잭슨'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죠." 정국 관련 박선주의 자세한 평은 2월 6일 자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을 참조하면 된다.
박선주는 그 자신이 이미 한국 최정상의 보컬트레이너이자 뉴스메이커‧셀럽이지만 가족 또한 예사롭지 않다.
박선주의 아버지(1935년생)는 40년 넘게 경찰공무원(강력계 형사)으로 경찰계의 신화적 인물이다. 청량리, 종로, 마포, 용산, 강동, 강남 등 일류 주먹들이 가장 많이 집결된 곳에서만 근무하며 수많은 조폭을 소탕했다. '공공의 적' 강철중의 실제 주인공이다.
"경찰계예선 유명한 얘기지만 물론 아버지는 부인하고 계시죠. 아버지 후배 경찰관이 사실이라고 말해서 저도 알게 됐죠. 대본 쓸 때 아버지를 모델로 강철중이란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아버지는 가족과 캠핑을 가게 되면 어떠한 도구 하나 없이 오로지 김치와 고기만 갖고 출발하시죠. 현지에 도착한 후 아버지는 근처에 있는 돌을 깨고 나무를 꺾어 이런저런 도구로 만들어오는데 그걸로 캠핑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즉석에서 해결하는 겁니다.(웃음)"
슬하에 2남1녀(박선주는 차녀)를 둔 아버지는 밖에선 '1남2녀'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들 둘은 여자같이 조용한 반면 딸은 괄괄한 타입이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박선주 오빠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지난 97년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든 장본인으로 '구미호'도 작업하는 등 한국에서 알아주는 CG(컴퓨터그래픽) 전문가다. 미국 픽사에서 근무하며 '토이 스토리' 등 여러 작업에도 참여했다.
'2012년 강레오'와의 결혼도 마치 영화 같은 스토리다.
박선주는 엠넷 '슈퍼스타K' 1, 2회 보컬트레이너 전담 및 CJ 음악 자문 역을 했었다. 그러던 중 CJ 일행과 레스토랑으로 식사하러 갔는데 그게 강레오의 식당이었다. 첫 만남은 이렇게 인사 정도로 끝났고 이 인연으로 술친구처럼 편한 사이로 발전했다. 그런데 둘은 가치관이 너무 잘 맞았다. 당시 박선주는 결혼은 하기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싱글맘'을 원했고 강레오 또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것. 생각이 너무 잘 통한 둘은 각자 아이만 하나 낳아 잘 키워보라는 식으로 격려해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둘 사이에 진짜 아이가 생긴 것이다. 둘이 사귄다는 기사가 터지며 결국 결혼으로 이어진 것. 혼인신고도 아이 낳은 후에 했다.
지금도 박선주X강레오는 서로를 최대한 존중하고 아껴주는 '베스트 프렌드'다. 한국적 사고방식으론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둘은 서로에게 '이상적인 삶의 동반자'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적으로도 떨어져 있고 그 외 몇몇 이유로 서로의 발전을 위해 '자발적 별거'를 하게 됐는데 언론에선 '자발적'이란 말은 빼고 "박선주 강레오 부부가 '별거'에 들어갔다"라고 보도해 박선주는 너무 어이없고 화가났다고 이번 인터뷰에서 당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박선주는 에이미를 낳은 지 16일 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17일째엔 김남길 팬콘서트에 가서 무대 체크를 해줄 정도였다. 출산한 지 불과 2주밖에 안 된 박선주가 자신의 무대를 찾자 김남길은 화들짝 놀라 했을 정도. 물론 한참 전에 김남길의 무대를 봐주기로 얘기가 됐지만 출산과 함께 이게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놀라움은 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평소 2시간 이상 매일 운동을 하는 것도 건강 비결 중 하나다. 독서 중에도 몸을 계속 움직이는 등 생활 자체를 운동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타입이다.
박선주의 취미는 여행. 소위 '위험국가'를 제외한 많은 나라를 가봤다. 그중 모나코가 가장 기억에 남으며, 2019년 7살 된 에이미를 데리고 11개국을 여행한 것도 인생 여행 중 하나로 꼽는다.
사교적 외향적인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는 것과는 달리 박선주는 좁고 깊게 사귀는 스타일이다. 내 장례식에 올 수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염두에 둘만큼. 식당 또한 맛집을 찾아 이곳저곳을 찾는 게 아니라 가는 곳만 간다. 무엇보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방콕' 선호자다. 명품엔 더더욱 관심이 없다. 화려해 보이는 패션이지만 저가 의류를 좋아한다. 인터뷰 때 들고 있던 백도 2만 원대의 '자라' 브랜드였다.
인생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 인생 드라마는 '별에서 온 그대'다. 드라마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가 '별에서 온 그대'이기도.
인생곡은 빌리 조엘 'Piano Man'이다. 앞으로 이런 곡을 꼭 써보고 싶다고. "이 곡은 처음부터 하나의 코드로만 진행되는데, 이런 원 코드 패턴에서 이렇게 멋진 멜로디와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고 배울 게 많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위대한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생각났다.
원하는 묘비명이 "열심히 산 사람"이라고 했다. 그럴듯했다. 박선주는 젊을 때부터 하나하나 다이어리에 플랜을 짜며 살아가는 계획형 인간이었던 것.
"20대엔박선주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음악가가 되자, 30대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살자, 40대엔 한국 최고의 여성 프로듀서가 되자. 물론 에이미 때문에 이건 깨졌지만(프로듀싱에 몰두할 시간 모두를 에이미한테 쏟아야 했으므로). 그리고 나이가 들었을 때 재즈를 하자라는 식의 플랜을 끊임없이 짜며 살아왔습니다."
딸 에이미는 그녀에겐 또 다른 세계이자 행복,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딸바보'다. 에이미를 통해 사랑이란 개념을 더욱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2010년 첫 저작물 '박선주의 하우쏭'을 발간했다. 이제 기회가 된다면 사랑과 삶에 대한 에세이집을 써보고 싶다고.
"가창력, 표현력이란 단어를 쓰는 시대는 지났고 이제 '딜리버리(delivery)'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딜리버리를 잘할 줄 아는 가수, 즉 (듣는이와)소통을 잘하는 음악가가 진정한 명가수 명보컬이죠."
"나이가 들어도 각 나라의 와이너리를 돌며 재즈를 노래하고 사람들과 인생을 함께 즐기고 싶습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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