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부산 회식비 자료 없다”고 했지만, 법원은 “있을 개연성 증명”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부산 해운대구의 한 횟집에서 진행한 만찬의 회식비를 공개하라고 시민단체가 소송을 내자 대통령실이 ‘자료가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법원은 대통령실이 자료를 갖고 있을 ‘상당한 개연성’이 증명됐다며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8일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재판장 신명희)는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인 하승수 변호사가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하 변호사 승소로 판결하며 이같이 판단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6일 해운대구의 한 횟집에서 전국 시·도지사 및 각 부처 장관 등과 만찬을 했다. 당시는 윤 대통령이 ‘2030 부산 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부산에 방문한 상황이었다.
하 변호사는 대통령비서실에 회식 비용 액수, 비용 지출 주체가 누구인지, 대통령비서실의 예산으로 비용을 지출했는지 자료를 공개하라고 청구했다. 대통령비서실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고, 국정 관련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하 변호사가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대통령비서실 측은 해당 만찬의 경비를 대통령비서실 예산으로 집행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업무추진비 또는 특수활동비로 집행해 (하 변호사가 요구한) 정보를 일정한 매체에 기록된 ‘정보공개법상 정보’의 형태로 생산하거나 보관·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보공개법상 정보는 공공기관이 직무상 작성·취득해 관리하고 있는 문서와 매체 등에 기록된 사항을 말하는데, 만찬 회식비와 관련해서는 이런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가 정보를 보유·관리하고 있을 상당한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판단된다”며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업무추진비 집행은 법상 정부구매카드를 사용하거나 계좌이체 방법으로 집행하도록 돼 있으므로, 만일 만찬 비용이 업무추진비로 집행됐다면 집행 액수가 카드결제 영수증이나 금융거래내역 형태로 지출증빙서류가 보관·관리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만일 특수활동비로 집행됐다면 지출계산서나 관서운영경비출납계산서가 존재하고, 지출증빙자료로 관련 영수증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만찬에 소요된 경비를 대통령비서실 예산으로 집행한 이상 그것이 업무추진비 또는 특수활동비 중 어떤 명목으로 집행됐는지를 불문하고 그에 관한 관서운영경비 출납계산서, 지출증빙서류 등이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가 공개를 구하는 정보는 그 문서에 기록된 내용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료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를 대통령비서실 측이 따로 내지도 않았다고 했다.
대통령실 “회식비 자료, 대통령기록물 지정 예정이라 공개 안 돼”…법원 “주장 이유 없어”
재판부는 만찬 회식비 자료가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할 우려는 없다고 판단했다. 만찬은 이미 종료됐고 만찬 장소와 소요시간, 참석자 등이 여러 언론에 보도된 점, 만찬 회식비 자료에 대통령 경호인력이나 규모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도 없는 점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대통령 직무의 공적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이 사건 정보가 대통령의 국정 관련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비서실 측은 만찬 회식비 자료가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도 펼쳤다. 재판부는 이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장래에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점이 정보공개법상 비공개를 정당화할 수 없음은 관계법령 문언상 명백하다”고 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당시 만찬에 대해 “우리 정치가 여의도를 떠난 민생의 현장에서는 협치를 잘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자리”라며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여야 시·도지사들은 만찬을 함께하면서 엑스포 지원 방안과 각 시·도별 현안에 대해서 논의를 이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만찬 뒤 윤 대통령이 일렬로 도열한 참석자들의 인사를 받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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