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선물’ 홍삼·비타민 중고거래, 설엔 안 되고 추석엔 된다?

건강기능식품 영업신고 없이 판매는 불법
식약처, 4월부턴 소규모 재판매 허용할 듯

8일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올라온 홍삼 판매 글. 번개장터 갈무리

서울 강북구에 사는 김아무개(30)씨는 명절을 앞두고 지인에게 비타민을 선물 받았다. 잘 챙겨 먹지 않아 나중에 버리게 되는 것보단 필요한 사람에게 싸게 파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8일 중고거래 플랫폼에 비타민을 내놨다.

김씨의 이런 행위는 현재 불법이다. 현행법상 홍삼, 비타민, 프로바이오틱스 등 건강기능식품은 영업 신고 없이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건강기능식품법 44조를 보면 신고하지 않은 개인 간 재판매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김씨는 한겨레에 “다른 사람들도 다 팔고 있어서 불법인 줄 전혀 몰랐다. 유통기한과 관련된 가이드라인만 잘 잡힌다면 합법화가 되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씨 말대로 비슷한 사례가 많다. 본격적인 설 연휴 전날인 이날 낮 12시부터 4시간 동안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올라온 ‘홍삼 판매 글’만 57개에 이른다. 4~5분에 한건씩 판매 글이 올라오는 셈이다. 개중에는 ‘선물 받은 홍삼 몸에 안 맞아서 팔아요’, ‘선물 받았는데 집에 너무 많아서 한상자 처분하고 싶어요’ 등의 글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만 오는 추석 명절 땐 건강기능식품의 개인 간 중고거래가 가능할 전망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개인의 소규모 재판매까지 금지하는 현행 제도를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그림자 규제’로 보고,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지난달 16일 밝혔다. 식약처 관계자는 “오는 3월까지 개인 간 재판매 거래 횟수, 금액 등 세부 허용 기준을 정해 4월부터 1년간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약처 자료를 보면, 10가구 중 8가구가 1년에 1번 이상 건강기능식품을 구매하고, 선물 비중도 전체의 약 26%에 이른다. 한 중고거래 플랫폼의 건강기능식품 게시글 자동 차단 건수는 한 달 평균 1만1000여건, 신고 차단 건수는 2만9000여건에 달한다. 미국·일본·유럽연합 등은 건강기능식품의 개인 간 재판매를 허용하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대외협력실장은 “판매자가 건강기능식품을 어떻게 보관하고, 어떻게 관리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제3자에게 판매했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식품의 한 종류인 만큼, 제도 개선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