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서카포'가 싱가포르 대학에 밀린 이유
싱가포르국립대 1년 예산은 3조, 서울대는 1.8조
정부가 대학에 투자하지 않으면 미래 없어
얼마 전 서울대가 싱가포르에 세계 대학 순위에서 밀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영국 대학 평가기관인 ‘THE’가 발표한 2024 세계 대학 순위에서 싱가포르국립대(NUS)가 19위, 난양공대(NTU)가 32위를 기록했는데, 국내 1위인 서울대는 62위, 국내 연구중심대학의 맏형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83위로 밀렸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서울대와 KAIST가 싱가포르 대학들에 밀린 일은 ‘초유 사태’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심각성을 전했다.
하지만 국내 교육계와 과학기술계 누구도 이번 성적표가 ‘초유 사태’라고 여기지 않는다.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한국과 국가 역량을 결집하는 싱가포르 사이에 이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싱가포르 정부와 대학 관계자들이 서울대와 KAIST를 벤치마킹하러 서울과 대전을 찾아오던 때가 있었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썼던 20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한국 축구도 몇 수 아래로 여기던 요르단에 완패하고, 한국 대학도 싱가포르와 경쟁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경쟁력이 추락했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진 걸까. 얼마 전 이용훈 울산과학기술원(UNIST) 총장은 조선비즈와 인터뷰에 앞서 자신이 정리하고 있던 정책제안집을 건넸다. 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정책제안집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대학에 투자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이 총장은 국내외 주요 대학의 1년 예산을 정리한 표를 가리켰다. 2021년 기준으로 서울대가 1조7921억원, KAIST가 9738억원, 포스텍이 4316억원의 예산으로 학교를 운영했다. 미국의 스탠퍼드대는 6조1282억원, MIT는 3조3880억원이었다. 포스텍이 목표로 삼는 ‘작지만 강한’ 공과대학의 표본인 칼텍의 예산은 9337억원이었다. 스탠퍼드는 서울대의 4배, 칼텍은 포스텍의 2배의 예산을 가지고 있다.
싱가포르 대학들은 어떤가. 싱가포르국립대 1년 예산은 2조9228억원으로 이미 서울대를 훌쩍 앞선다. 난양공대는 1조9317억원으로 KAIST의 두 배가 넘는다.
예산 총액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수입 구조를 보면 한국과 글로벌 대학의 격차가 더욱 명확해진다. 서울대와 KAIST, 포스텍 모두 ‘보조금 및 연구수입’이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는다. 기부금이나 ‘이자 및 투자수익’은 다 합쳐도 10%를 넘는 곳이 없다. 반면 글로벌 주요 대학은 기부금이나 투자수익의 비중이 높다.
싱가포르 대학들의 성장 비결에 대해 이 총장은 “싱가포르국립대와 난양공대는 이자 및 투자수익 비중이 10%가 넘는데, 이 수익은 총장이 소신껏 연구 기반시설과 새로운 연구 분야 육성에 재투자할 수 있는 재원”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국내 대학들은 해외 대학들의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1, 2위를 다툰다. 하지만 이 많은 돈 가운데 대학에 들어오는 돈은 1년에 10조원이 채 되지 않는다. 비중으로 치면 9.1%다. 미국이 11.3%, 독일이 18.7%, 영국은 23.5%다. 중국은 7.7%로 비중은 낮지만 모수가 커서 대학에 투자하는 연구개발 예산만 30조원이 넘는다. 그마저도 한국은 경쟁력이 높은 대학에 많은 투자를 하기 보다는 골고루 나눠주는 데 집중한다. 대학 지원에서 수월성의 원칙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국내 대학은 등록금 동결과 각종 규제로 스스로 수익을 창출할 길이 요원하다. 국가에서도 대학 경쟁력을 높이는 데 관심이 없다. 윤석열 정부는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을 창출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을 글로벌 R&D 체계를 강화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말처럼만 된다면 박수치고 환영할 일이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정부가 말하는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누가 할 것인지 조금만 고민해봐도 답이 나온다. 세계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대학에 투자도 하지 않으면서 도전과 혁신, 글로벌을 이야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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