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 신세 된 ‘나주 영상테마파크’ 철거 갈등, 문제가 뭔가 봤더니...
일부 시민단체 반발 “공론화 과정 부족…혈세 낭비 일방적 행정”
나주시 “안전·만성적 적자…원활한 박물관 건립 위해 철거 불가피”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남 나주 영상테마파크 철거 문제, 더 좁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고구려궁 존치 여부를 놓고 나주시와 지역 시민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다. 일부 단체는 혈세 낭비와 소통 부재를 이유로 반발하고, 나주시는 건축물 안전과 관광객 감소 등을 이유로 철거가 불가피하다며 대립하고 있다.
나주시는 전남도와의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이하 의병박물관) 협력 협약 이행 차원에서 더는 철거 공사를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굳이 수백억원 들어간 국내 최대 규모 드라마 세트장을 철거해야만 하느냐는 반대 여론과 의병박물관이 꼭 이 부지에 들어서야만 하는 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전면 철거' 위기 맞은 드라마·영화 촬영 메카
2007년 137억 원을 들여 조성한 나주영상테마파크. 나주영상테마파크는 단순한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이 아닌 고구려 건국 역사와 엔터테인먼트가 결합한 영상 전문 테마공원이다. 이곳은 애초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위한 오픈 세트이자 삼국시대 민속촌으로 기획 건립됐다. 기와집과 저잣거리, 성곽까지 옛 시대를 재현했다. 드라마와 영화 등 21개 작품의 촬영장으로 활용되고, 지난 2022년 기준 한해 3만여 명이 방문했다.
특히 지난 2006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주몽'의 주 촬영장으로 활용되면서 일약 신흥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하지만 효자 노릇하던 나주 드라마 세트장은 지금은 '계륵' 같은 존재다. 준공된 지 17년 세월이 흐르면서 건축물 노후화에 따른 지속적인 유지보수 비용 발생과 관광객 감소로 인한 만성 적자 운영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나주시는 아예 영상테마파크를 철거한 뒤 의병박물관을 짓기로 했다.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일대 140만㎡에 건립된 나주 영상테마파크는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것을 주 촬영장으로 활용한 드라마나 영화가 뜨면서 영상테마파크도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드라마 '주몽'(MBC)이 대표적이다. 주몽은 최고시청률 49.5%을 찍었다. 이어 주몽의 손자 대무신왕의 일대기를 그린 KBS2 드라마 '바람의 나라' 영화 '도깨비' 주 촬영지로 이용됐고, 태왕사신기(MBC)와 이산(MBC)에 이어 조인성, 주진모 주연의 영화 '쌍화점'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또 인기리에 방영됐던 KBS 대하드라마 '천추태후'가 고구려궁과 다야뜰 일원에서 촬영됐다.
지금까지 총 입장객이 어림잡아 천만명 선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드라마 주몽으로 전 국민이 다 아는 유명 관광지로 부상하면서 한 해 수백만 명이 몰려오기도 했다. 한창 붐빌 때는 수㎞의 자동차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다. 나주에 '주몽 택시'가 달리고, 나주대학은 고구려대학으로 학교 명칭을 바꾸기까지 했다. 드라마 기획사 관계자들은 "전국 어디를 가도 삼국시대를 촬영할 수 있는 이만한 시설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20여년 만에 의병박물관 건립에 밀려 전면 철거 위기를 맞았다. 시설을 관리하는 데 연평균 5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는데다 건물도 점차 노후화돼 안전을 위협하는데, 뾰족한 활성화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주시는 한발 나아가 지난해 말까지 의병박물관 건립을 위해 지장물 부분 철거 공사를 마쳤으며, 고구려궁 등 일부 시설물에 대해서는 철거에 반대하는 일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잠시 중단된 상태다. 시는 현재 고구려궁의 존치 여부에 대해 '정해진 게 없다'면서도 적어도 이달 안에는 확실한 결론을 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췄다.
잘 나갔던 '나주 영상테마파크' 가보니...
2월 6일 오전, 입구에 들어서니 '공사 중 출입금지'라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삼족오의 비상'이라는 커다란 조형물이 서 있었고 송일국, 한혜진, 전광렬, 이계인, 진희경, 최정원, 정진영, 김정화, 오윤아 등 그동안 이곳에서 영화를 찍었던 주연배우들의 핸드 프린팅과 출연사진이 붙어 있던 스타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민들이 기거했던 흔적들을 찾아 걸음을 걸으면 어느새 그 시대로 빠져드는 느낌마저 들었던 저잣거리와 체험시설이 있던 너와집거리 등도 종적을 감추고 천막에 가려진 채 잔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남아 있는 것은 고구려 시대 궁궐뿐이었다. 그나마 고구려궁은 지붕에서 떨어지는 기와장을 막기 위해 철제 기둥을 세워 철망이 쳐져 제 모습을 잃고 있었다. 궁궐 앞 잔디 마당이 중장비 바퀴자국으로 깊게 패여 머지않아 철거의 운명에 처했음을 직감케 했다.
또 활쏘기, 승마, 민속놀이, 전통 공예 등 다양한 체험시설과 실내세트장과 밀레, 고흐, 뭉크, 마티스, 클림트, 신윤복, 김홍도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실사해 내건 명화 미술관도 철거돼 그 자리는 허허 벌판이 됐다. 다행히 고구려궁 맞은편에 있는 성루에 올라서면 영산강과 넓게 펼쳐진 나주평야 전경을 여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철거를 바라보는 나주시 vs 시민단체, '입장차 뚜렷'
철거된 영상테마파크 부지에는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의병박물관은 남도의병의 구국 충혼을 기리고 의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전남도 역점사업이다. 나주시는 박물관 공모 당시 도내 지자체 8곳과 치열한 유치경쟁을 펼쳐 지난 2020년 7월 최종 대상지로 선정됐다. 전남도는 2025년 개관을 목표로 422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나주시 공산면 일대 36만㎡의 부지에 6993㎡ 규모로 전시실, 수장고, 체험학습장, 편의시설 등을 갖춘 의병박물관을 건립하게 된다. 또 박물관 주변에 둘레길 등 숲을 만들어 모두 36만 3000㎡의 대규모 관광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나주시는 올해 9월 착공을 목표로 사업 첫 단추인 부지확보를 위해 지난해 말까지 영상테마파크 시설물 부분 철거를 마쳤다. 시설물 철거와 관련된 지역사회 찬반 여론이 있지만 남도의병역사공원 공모사업 선정에 따른 의병박물관의 원활한 건립 추진을 위해 테마파크 시설물의 부분 철거가 불가피했다는 게 나주시의 입장이다.
또 준공 이후 17년이 경과한 영상테마파크 건축물 노후화에 따른 지속적인 유지보수 비용 발생, 관광객 감소로 인한 만성 적자 운영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부분 철거와 박물관 건립을 통해 해소하고 새로운 관광 활성화 거점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 나주시의 전략이다. 특히 전면 철거 후 박물관 건립부지로 활용하는 방안 외 고구려궁을 존치하거나 H빔 위의 궁 건축물을 헐고 바닥 부분을 활용하는 제3안을 바탕으로 박물관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도 "수십년에 걸쳐 '힘없고 빽없어' 활성화를 요구하지 못하다 이제 겨우 활로를 찾기 시작했는데 일부 단체가 주민 실정도 모른 채 반대만 일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일부 단체는 SNS 등에서 소통 부재 상태에서 철거공사를 강행, 혈세를 들인 시설을 파괴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철거 반대 입장은 대체적으로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부지 무상기부 의혹과 137억여원을 들여 지었던 세트장을 굳이 30억원을 들여 철거하는 것은 혈세낭비 아니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쨌든지 간에 이러한 결정을 하는 데는 시민들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다른 곳이 아닌 드라마세트장 자리에 굳이 연관성을 찾기 힘든 의병박물관을 수백억원을 들여 만들어야만 하는 지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황광민 나주시의원은 시정질의에서 "실제 영상테마파크를 철거하겠다는 전제로 전남도의 공모사업이 됐다는 점과 이것이 사전에 시민들과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는 점 등이 문제가 됐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철거를 반대하는 대책위 한 관계자의 말이다.
"남도의병박물관 부지는 약 11만 평이다. 반면 영상테마파크는 4만 평 가령이다. 7만 평 정도가 늘어난다. 의병박물관 건축 연면적은 2000평이다. 2층으로 지을 경우 단면적은 1000평에 불과하다. 전체 부지 면적의 1%가 되지 않는다. 1000평의 의병박물관을 짓기 위해 30억원의 철거비를 들여 4만 평의 영상테마파크에 있는 크고 작은 100여 개 건축물 대부분을 부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에 어긋난다. 설령 궁여지책으로 고구려궁 하나 존치한다고 한들 궁색하기 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나주시는 조목조목 해명했다. 우선 의병박물관 부지 11만평 무상기부 주장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나주시 관계자는 "2020년 12월 전남도와 업무협력 협약에 따라 박물관 건립부지는 무상기부가 아닌 무상사용 허가사항으로 지난해 3월 시의회 동의를 통해 전남도에 무상사용 허가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또 과다 철거 예산 편성에 대해선 "테마파크 철거를 위한 실시설계 용역을 실시해 사업비 절감 등을 위해 건설·혼합폐기물을 최소화하고 재활용 할 수 있는 자재 선별, 공법 선정 등 설계를 신중히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계약심사를 거쳐 철거사업 공개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나주시는 시민 공론화 과정과 관련해 2019년 7월 남도의병역사박물관(당시 남도의병역사공원) 유치추진위원회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박물관 유치를 위해 시민의 역량을 결집해왔다고 강조했다. 다만 테마파크 부분 철거에 앞서 시민사회와 교감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 대해 공감하며 의병박물관 착공 이전 박물관 건립 전반에 대한 소통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나주시 관계자는 "한때는 대표 관광 명소였지만 오랜 침체기가 지속돼왔던 영상테마파크가 남도의병역사박물관과 조화를 이뤄 새로운 관광 명소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 숲, 다야뜰 수변공원 조성 등 기왕의 시 사업을 박물관 건립과 연계해 체류형 관광의 성지로 조성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해가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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