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의사가 왜 배우해요?"…'치과의사 배우' 문도윤, 인생을 바꾼 열정

김지혜 2024. 2. 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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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로서의 성공은 끊임없이 행동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영국 출신의 명배우 마이클 케인은 자신의 저서 '마이클 케인의 연기 수업'에서 "배우로서의 시작은 행동하는데서 온다"고 말한 바 있다. 연기란 액션과 리액션의 총합이다. 연기의 시작이 액션이듯, 배우의 시작도 마찬가지다. 가슴에 꿈만 품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정체되기 마련이다.

문도윤은 현직 치과의사다. 동시에 배우다. 치과를 운영하며 연기도 한다. 'N잡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전혀 다른 성격과 속성을 지닌 일 두 가지를 수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치과의사로서 15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고, 배우로서도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치과를 찾는 고객에게 그는 숙련된 '치과의사'지만 병원 밖을 나서면 그는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한다. '준비된 배우'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어떤 역할이 주어져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연기를 선보이기 위해 역량을 갈고닦는다.

30대 중반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배우의 불을 지폈기에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 문도윤의 연기 열정은 진심이다.

◆ 부모님 반대로 포기했던 배우의 꿈, 30대 중반에 재도전

문도윤의 꿈은 어릴 때부터 배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연극부에서 주인공으로 무대에 올랐던 그는 암전 속에서 본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을때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인데도 그때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약 500석 정도 되는 극장에서 3회 공연을 올렸는데 객석의 환호와 박수 소리에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였지만, 그때 그 순간부터 제 꿈은 배우였습니다"

꿈은 현실의 벽과 부딪히며 희석됐다. 부모님에게 "꿈이 배우"라고 말해도 한 귀로 듣고 흘리셨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도 연극부가 있는 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그 역시 여의치 않았다. 꿈을 펼치기엔 그 어떤 여건도 마련되지 않았던 문도윤은 부모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연세대와 경희대 치의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부모의 기대대로 치과의사가 됐다.

"개원을 하고 병원이 자리 잡은 30대 중반 무렵이었어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삶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 새벽에 자다가 깼는데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온 꿈을 이제는 펼쳐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 뭔가를 시작하기에 아주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신인 배우로서 고령인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배우와 무관한 삶을 살아왔기에 첫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메소드 연기법을 알려주는 극단 비슷한 학원을 찾아갔어요. 연기를 가르치면서 공연도 하는 곳이라 연극도 3~4편 정도 올렸어요. 이후 배우 출신의 연기자 분들에게 개인 레슨을 받으며 연기의 기본기를 익혔고요. 업계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기회가 주어지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프로필을 제작사에 돌리는 것부터 시작했고요. 포털 사이트 영화 카페에 있는 정보를 보고 계속해서 오디션에 도전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투자한 끝에 작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고, 업계에 아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생겼다. 배우에 대한 신뢰가 쌓이며 크고 작은 기회들과 귀한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겪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했다.

"아침드라마에 출연했는데 페이를 못 받은 적도 있어요. 작품을 연결해 준 캐스팅 디렉터가 잠수를 타버린 거예요. 소속사도 없이 혼자 활동하고 개인 대 개인으로 접촉하다 보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처음엔 억울하고 분했지만 이 또한 경험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독였죠. 그런 것에 억울해하기보다는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는 것, 제 연기를 화면으로 보는 기쁨이 컸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하고 싶은 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끼며 10년을 지낸 것 같아요"

◆ '종이의 집'·'미끼' 출연한 경험 큰 도움…가족 응원도 큰 힘

문도윤은 연기를 전공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기본기는 '연기 레슨'을 통해 다졌고,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영화와 드라마 등 매체 연기의 '감'을 익혔다.

집에는 연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전용 작업실도 있다. 그는 연기 연습을 할 때 전신거울을 보며 자신의 표정은 물론이고 동선을 꼼꼼히 체크한다고 했다. 매체 연기 초반 가장 어려움을 겪은 부분이 카메라 앞에서의 시선처리와 동선이었기 때문이다.

의사 출신 배우라는 이력 때문인지 그는 유독 '의사' 역을 많이 맡았다. 의학 용어와 전문 지식에 익숙해 능숙한 연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는 '의사 역할'에 본인이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그려진 의사의 모습은 실제 모습과는 차이가 좀 있어요. 그래서 의사 연기를 하는 제 모습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저는 의사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는 아니에요. 오히려 건달이나 악당 역할을 하면 더 잘할 자신 있습니다"

지난해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과 '미끼'에 잇따라 출연하며 규모가 큰 OTT 시리즈 경험도 했다. 특히 전 세계 180개국에 스트리밍 된 '종이의 집'으로 인해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했다.

문도윤의 연기 장면을 본 인도네시아 시청자들이 자국의 '국민 개그맨'과 같은 인기를 얻고 있는 한 방송인과 닮았다며 열광한 것. 현지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닮은 꼴을 비교하는 인도네시아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정식 섭외가 오기도 했다.

경력이 쌓이면서 현장에서 배우는 것도 많아졌다. 그는 '종이의 집'에 주연을 맡았던 배우 박해수의 연기와 태도를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인 것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를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의 위치와 상관없이 한결같은 사람, 저런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 롤모델로는 이병헌을 꼽았다. 그는 "매 작품 다른 연기를 선보이는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은 차이로 큰 변화를 일궈내는 모습을 보면서 타고난 배우가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 현장에서 함께 연기할 날을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조, 단역을 맡아도 현장에 가고 연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고 했다. 신인 배우들에게 기다림의 연속인 현장이지만 그는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라고 웃어 보였다. 배우의 꿈을 포기했던 가족들의 시선은 어떨까.

"아버지가 몇 해 전에 암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병석에 누워계실 때 용기를 내서 "저 요즘 연기해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의외로 좋아하시더라고요. 아마도 자신의 기대 때문에 꿈을 못 펼친 아들이 뒤늦게나마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모습이 미안하면서도 기특해 보였나 봐요.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는데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진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와 딸은 든든한 지원군이다. 그는 "아내는 처음에는 좀 걱정하는 것 같더니 열심히 하는 제 모습을 보며 누구보다 응원해주고 있어요. 많은 의사들이 여가 시간에 골프에 심취하거나 차나 시계에 돈을 쓰는 것과 달리 저는 오로지 제 꿈을 이루는데 시간을 쏟고 노력하니까 그 모습에 안심을 하는 것 같아요. 딸도 제 든든한 팬이에요.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는 의사도 하고, 배우도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진 배우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 "돌아갈 곳 있어 쉽게 포기할 것'이라는 시선, 9년의 시간으로 증명"

문도윤은 지난 9년간 '의사'와 '배우' 두 가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지만, 업계에 곱지 않은 시선도 분명 존재했다. 그는 업계에서 만난 한 제작사와의 에피소드를 언급했다.

"업계에서 만난 한 제작자가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연기를 하는거냐. 너를 보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도 없어'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는 말이었죠. 맹목적인 비난이라 신경 안 쓰려고 했지만 조금 억울한 면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제 연기를 보거나 한 게 아니라 술자리에서 대뜸 한 말이었거든요. 그 말에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진 않았어요. 왜냐하면 연기를 계속하는 것으로 그분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은 돌아갈 곳이 있고, 생계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언제든 연기를 관둘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 그 반대예요. 생계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치지 않고 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거고요"라고 확고한 소신을 밝혔다.

이어 "물론 10년간 이 일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의미 있는 기회가 온다거나 저를 믿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일을 계속할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연기는 물론 힘든 일이지만 하면 할수록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기는 없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드라마 '블랙'으로 인연을 맺어 '종이의 집, '미끼'에서 호흡을 맞췄고 신작 '탄금'까지 촬영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김홍선 감독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잇따라 두 작품을 촬영한 스케줄로 인해 '투잡'을 수행하는 것의 어려움을 겪진 않았을까. 그는 "한때 위기가 오기도 했지만, 오히려 두 가지를 유연하게 잘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밝혔다.

"'종이의 집'을 작업할 때 세트 촬영장이 일산이었어요. 다행히 제 병원이 있는 마곡과 멀지 않아서 진료와 연기를 병행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오전에 진료를 하고 오후에 촬영장에 가는 스케줄이 어찌 보면 고된 일정인데, 희한하게도 촬영장에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카메라 앞에만 서면 오전의 피로가 싹 가시더라고요. '이게 되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지금은 이러한 '투잡'이 가능한 스케줄이지만, 배우 활동의 비중이 커지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 없이 "제 꿈은 연기고, 연기만 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주저 없이 의사란 직업을 포기하고 배우를 선택할 것"이라고 답했다.

문도윤의 매니지먼트 업무를 하고 있는 황재근 이사는 "문도윤에게서 자기만의 연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 과거 류승범의 매니저를 꽤 오랫동안 했었는데 그때 가졌던 느낌처럼 남과는 다른 개성을 가진 이 배우만의 매력을 느꼈다"고 평가했다.

재능과 자질, 끈기는 반드시 기회와 만난다. 준비된 사람은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배우 문도윤의 꿈은 "계속해서 보고 싶은 배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는 "매 작품, 시청자나 관객이 자신을 몰라봤으면 좋겠다.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bada@sbs.co.kr

<사진 = 백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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