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런 끝? 의대정원 늘려도 '소아과' 소멸한다" 의사들 경고

정심교 기자 2024. 2. 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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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더 늘리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계가 설 이후 총파업 카드를 내밀며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의대 정원을 늘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배출한다 해도 그 전에 소아과가 붕괴할 것"이라며 날 선 입장을 보인다.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은 8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여당을 비롯한 일부에선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안이 마치 소아과 오픈런 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발언했다"며 "이는 소아과 오픈런 문제 등 소아의료체계 붕괴의 원인조차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소아청소년과 2차 병원가 단체로 전국 120여 아동병원이 속해있다.

최용재 협회장은 "최근 몇 년간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 제로(0) 상태는 의대 정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에 따른 소송전 △저수가 △저출산 등으로 소청과 전문의 포기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금 증원해 의대에 입학한 의대생들이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기까지는 14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일부의 발언처럼 의대 정원 확대 명분을 소아과 오픈런 해결로 관련지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며 "아마 그전에 모든 수련병원 소청과는 소멸하고 소청과 대학 교수들과 소청과 전문의는 소청과 진료가 아닌 타과 진료 내지는 업종 변경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임 회장은 이날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들은 직원 두 명의 월급을 못 줘서 한 명을 내보내다가 한 명 남은 직원의 월급마저도 못 줘서 결국 지난 5년 간 662개가 폐업하고 있는 상황이다"면서 "지금 상태로는 병원을 더 이상 운영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2023.3.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홍준 대한아동병원협회 부회장은 의사가 늘면 필수 의료 분야에 지원자도 증가할 것이란 정부의 '낙수효과 정책'이 성공하려면 대대적인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나서서 일정 소득을 보장하는 식으로 안정적인 진료 환경을 만드는 데 나서야 의사들이 그나마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아과 전문의 A씨는 "지금과 같은 소아 진료 환경으로 전공의들이 재수하더라도 절대 소아과는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 당장 소아 진료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환아와 보호자가 모두 고통받고 있는데, 현실적인 대안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소아과 전문의 B씨는 "정부는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 낙수 효과로 소아과 지원율이 늘어날 것으로 (정부가) 보는 모양인데, 이는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꼬집었다. '소아과 오픈런'을 해결하려면 소아과 전문의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게 하고, 불가피한 의료 사고로부터 보호받는 등 소아 진료의 바람직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아과 의사들의 분노 속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복지부 장·차관을 고발할 것임을 예고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가 권력을 이용한 국민 사찰이고 폭력이자 인권유린"이라며 "법적 검토 후, 명절 직후에 복지부 장·차관과 실무자를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의 딸이 올해 고3이라는 내용도 게시하며 "그런 거였구나"란 글도 함께 올리기도 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이 지난 1일 분당서울대병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이 병원에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를 열고 "내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늘려 의사 수를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사진=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앞서 임현택 회장은 정부의 의대 증원책에 대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원 진입장벽을 높이고 각종 규제로 개원가를 비롯한 의료환경을 황폐화시켜 의사들을 반강제적으로 고위험·고난도·저보상 진료 영역으로 몰아넣으려는 단군 이래 최악의 보건의료 망책"이라고 힐난했다.

반면 소아과 오픈런 등 의료계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책을 내놓은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7일) 오후 10시 시작된 KBS 특별대담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기준으로 했을 때 의료인 수가 최하위"라며 "'소아과 오픈런'이라든지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이 있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소아과의 의사 수는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제출받은 과목별 전공의(1~4년 차) 현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최근 10년간(2014~2023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현원이 536명 줄어 5개 필수과목(소아청소년과·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중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필수과목 전공의는 2014년 2543명에서 2023년 1933명으로 610명(24% 감소) 줄었는데, 줄어든 인원 중 소아과 전공의가 무려 87.9%(536명)에 달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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