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군주 조정석에 매혹되는 시간, '세작'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배우 조정석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다. 대중에 그의 얼굴을 알린 영화 '건축학개론'부터 악인의 얼굴을 보여준 영화 '뺑반',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까지, 장르도 캐릭터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의 색으로 소화해낸 것만 봐도 그렇다. 3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그가 선택한 장르는 상상력에 기반을 둔 픽션 사극이다. 데뷔 이래 처음 곤룡포를 입고 시청자를 매혹한다.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극본 김선덕, 연출 조남국, 이하 '세작')은 높은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비천한 임금 이인(조정석)과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세작(첩자)이 된 여인의 잔혹한 운명을 그리는 드라마다. 조정석이 연기하는 인물은 임금의 숙명을 타고난 진한대군 이인이다. 이미 세자가 있음에도 제 아들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어머니의 욕심에 왕재 교육을 받게 된 이인은 자신을 아껴주는 이복형이자 당시 세자였던 이선의 친절함에 괴로워하며 죽는 날까지 형의 신하로 살며 충심으로 섬기겠노라 다짐한다.
그러나 인생은 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임금인 형 이선(최대훈)과 나라를 위해 청의 볼모로 끌려갔던 이인은 온갖 고난을 겪고 조선으로 돌아오지만 오히려 용상을 탐하고, '청의 세작(첩자)' 노릇을 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형을 향한 충심이 역심으로 비치자 괴로워하던 이인은 한량의 삶을 택하는데, 그런 이인의 속내를 알아주는 결정적인 인물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져본 적 없다는 내기 바둑꾼 강희수(신세경)다. 사실 강희수는 이인의 스승인 영상대감의 딸이지만, 남장으로 신분을 숨기고 내기 바둑꾼으로 활동하며 돈을 벌어 청나라에 끌려간 사람들을 데려오던 인물.
이인은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맞서 역성을 내는 묘한 분위기의 강희수에게 관심이 쏠리고, 그런 강희수를 공격하는 괴한의 칼부림까지 대신 맞아준다. 이후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바둑을 두게 되고, 강희수와의 내기 바둑에서 진 이인은 제가 아끼는 별호인 몽우를 내어준다. 설레면서도 가슴 아픈 사랑의 시작이다.
이날을 계기로 이인에게 몽우라는 이름으로 인식된 강희수는 유일한 자신의 편이자, 유일하게 휴식을 안겨주는 망형지우(忘形之友)가 된다. 이렇게 바둑을 매개로 남장여자와 왕의, 신분과 성별을 뛰어넘는사랑 이야기가 시작되는구나 싶지만, 이야기가 짐작대로만 흘러가면 드라마는 식상해지고, 시청자는 미련 없이 채널을 돌리기 마련이다. 이에 대비한 듯 '세작'은 이를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망형지우의 누명을 풀어주기 위해 이인과 독대하던 왕이 갑작스럽게 승하하면서 드라마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왕의 유언을 조작해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이인은 매섭고 날카로운 임금으로 흑화한다.
이인은 자신을 의심하고, 제 행보에 반대하는 이들을 단호하게 처단한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저를 음해하던 세력과도 손을 잡고, 죄 없이 옥에 갇힌 이들을 알고 있음에도 눈 감아 넘긴다. 본인이 망형지우라 불렀던 강희수의 애절한 부탁마저도 매정하게 외면한다. 과거의 인연은 송두리째 잘라내고, 핏빛 숙청까지 끝낸 이인을 형상화하는 조정석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적당한 다정함과 적당한 무게감, 장난기와 미소, 인물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 매너와 정의로운 성정까지. 드라마 초반 이인의 모습은 조정석이 전작들에서 사랑받은 부분들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이는 4부 전까지의 모습이다. 왕이 된 이인을 연기하는 조정석에게선 익숙함을 찾기 힘들다. 잔뜩 벼려진 칼날처럼 날 선 예민함과 모두를 꿰뚫어 보는 듯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서늘한 눈빛과 진중한 목소리, 표정 없는 얼굴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조정석의 모습이다.
2004년 뮤지컬 '호두까기 인형'으로 데뷔한 조정석은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며 입지를 다졌다. 그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뮤지컬 '그리스'로, 여러 작품들을 통해 확인된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떠올리면 '그리스'에서 활약하는 그의 모습이 쉬이 짐작 가능하다. 이후 조정석은 '헤드윅' '올슉업'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티켓 파워를 입증, 뮤지컬 계의 아이돌로 불렸다.
그의 연기 반경이 넓어진 해는 영화 '건축학개론'이 개봉된 2012년이다. 첫사랑으로 힘들어하는 주인공에게 "어뜩하지 너?"하는 추임새를 시작으로 걱정을 한가득 늘어놓고, 양손을 활용해 키스 방법을 정열적으로 설명하던, 주인공의 친구 납뜩이로 대중에게 얼굴과 이름을 각인시켰다. 첫 영화, 짧은 등장 시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는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드라마 '더킹 투하츠'에서 무뚝뚝한 원칙주의자이자 공주를 향한 순애보를 품은 왕실 근위 중대장 은시경으로 분해 영화와는 상반된 캐릭터를 완벽 소화하며 연기력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이후 드라마만으로도 가수를 꿈꾸던 기획사 대표('최고다 이순신'), 까칠함과 다정함이 공존하는 스타 셰프('오! 나의 귀신님'), 유방암에 걸린 마초 앵커('질투의 화신'), 노는 것도 성적도 늘 일등인 다정다감한 의사('슬기로운 의사생활') 등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디테일 장인'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각각의 작품마다 섬세한 연기로 캐릭터를 빚어내는 그의 연기는 시청자를 사로잡는 힘이다. 매번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연기에 시청자가 매혹되는 이유다. 이에 앞으로 '세작'에서 펼쳐질 숨가쁜 복수극 속에서 피어오르는 치명적인 사랑을 그려나갈 조정석의 연기에 기대감이 모아지고 있다. 군주로서의 카리스마와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섬세하게 오가는 조정석의 연기는 또다른 인생작 탄생을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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