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을 준비하는 야심찬 국가들 [정삼기의 경영프리즘]
정삼기 씨에스케이파트너즈 대표 skchung@cskpartners.com
지난해 지구촌에서 유난히 이목을 끈 세 나라가 있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이들 세 나라는 2050년에는 새로운 경제 강국이 될 야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도는 1인당 GDP가 세계은행의 고소득 기준치를 넘어섭니다. 인도네시아는 고령화로 성장이 정체되기 전까지 선진국들을 따라잡을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6년에 내세운 ‘비전 2030’ 개혁으로 석유 중심에서 다각화된 경제 체제로 변신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에티오피아, 말레이시아 등도 비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모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겁니다. 북반구 저위도나 남반구에 위치한 나라들입니다.
인도는 연간 8퍼센트의 GDP 성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연평균 7퍼센트의 성장이 필요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비석유 분야가 연평균 2.8퍼센트에서 9퍼센트씩 성장해야 합니다. 2023년은 세 나라에게 모두 괜찮은 한해였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 이 정도로 성장한 나라는 없었습니다. 30년은 고사하고 5년 동안 이러한 성장을 유지한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정말 숨이 벅찰 정도의 성장 속도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폭발적인 성장을 무모하다고 할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번영을 위해서라면 일반적으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이름 아래 IMF와 세계은행이 1980년대 말부터 추진해 온 온갖 종류의 자유화 개혁을 처방합니다. 가장 널리 채택된 것이 재정정책과 안정적인 환율관리입니다. 오늘날 테크노크라트들은 경쟁규제 완화와 국영기업 민영화를 촉구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안들은 성장 엔진 폭발보다는 성장 장벽 제거에 집중된 것입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워싱턴 컨센서스를 충실하게 따른 52개 국가의 1980년 이후 20년 동안 연평균 GDP 증가율이 연 2퍼센트에 그쳤습니다. 글로벌 사우스 신흥국들은 전혀 다릅니다. 이들 나라의 리더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원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들 국가의 전략을 세 가지로 봅니다.
맨 먼저 제조업 육성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전자제품), 일본(자동차), 싱가포르(제약)의 성장모델을 따르겠다는 겁니다. (물론 싱가포르는 이젠 대표적인 무역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입니다. 2015년 모디 총리는 제조업 비중을 16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늘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어디서 팔든지 인도에서 만들 것”을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촉구합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 적도의 케냐도 연간 15퍼센트의 제조업 성장을 원합니다.
그런데 제조업 중심의 산업화는 40~50년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기술 발전 때문입니다. 인도는 1980년보다 2007년에 공장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근로자 수가 5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업은 이제 선진국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기술과 자본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대규모의 저렴한 노동력이 더 이상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나라는 최첨단 제조 분야로 눈을 돌려 승부하기를 원합니다. 대규모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하여 양말을 만들기보다는 고부가가치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인도는 연간 1,00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30조원의 투자를 늘리겠다며 반도체 제조업체 유치를 주요 경제 목표 중 하나로 선언했습니다. ‘생산 연계 인센티브’를 내세워 인도에서 생산된 컴퓨터와 미사일은 물론이고 첨단 기술 제품에 대해 세금을 감면합니다. 2023년에 이런 보조금이 GDP의 1.2 퍼센트인 450억 달러로, 3년 전에는 약 80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구축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고 국내 공장 설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케냐는 면세 산업단지 다섯 개를 건설하고 있으며, 20개를 더 건설할 계획입니다.
두 번째 모델은 그린 산업에 필수적인 금속과 광물 등 천연자원 중심의 산업 생태계 구축입니다.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전 세계 공급량의 7퍼센트와 22퍼센트를 차지하는 보크사이트와 니켈 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배터리 부품부터 풍력 터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물론 당근이 동원된 인프라 붐이 함께 합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진행 중인 투자 규모가 4,000억 달러로, 여기에는 최소 27개의 산업단지 조성도 포함됩니다. 천연자원을 기반으로 한 인프라 붐은 저 멀리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자국 내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제공합니다. 볼리비아는 리튬 산업을 국유화하면서도 한편으로 국영기업들이 나서서 중국 기업들과 합작 투자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델은 전례가 거의 없습니다. 세계 석유 부국들은 대부분 원유를 해외로 운송하여 정제합니다. 전 세계 정제 용량의 40퍼센트 이상이 미국, 중국, 인도, 일본에서 나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대기업 아람코는 중국에서 정유소를 운영하며 정제를 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이런 석유 부국과는 달리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제조 생태계 구축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제조업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세번째 모델은 중동 석유 부국의 중계국 전환입니다. 걸프 지역은 세계 각지를 연결하는 중심지로서,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지정학적 긴장에 대해 피난처가 되고자 합니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비하여 2050년까지 탄소배출 넷 제로(net-zero)를 달성하겠다는 지구촌 아젠다를 주도하고자 합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아랍에미리트입니다. 운송, 관광을 비롯하여 인공지능(AI)과 화학 등 첨단 산업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 아부다비는 관광객을 상대로 우주 여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이웃인 카타르는 65억 달러를 들여 거대한 규모의 캠퍼스를 건설하고 있으며, 노스웨스턴 등 세계 유수의 대학 분교를 유치하고 있습니다.
중동의 대표적인 석유 부국 사우디아라비아도 조용할 리 없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외국인 투자를 2022년 GDP의 0.7퍼센트에서 2030년 5.7퍼센트로 늘릴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엄청난 돈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공공투자기금이 지난 10년 동안 지출한 자금이 1조3천억 달러로, 미국이 인플레이션감축법을 앞세워 뿌릴 자금보다 더 큰 규모입니다. 이 기금은 축구팀과 석유화학 공장부터 천지를 개벽할 신도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정도의 산업정책은 전례가 없습니다. 중국은 2019년 GDP의 1.5퍼센트를 지출했습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는 GDP의 20퍼센트를 지출했습니다.
이런 성장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1980년대 이후 지난 수십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정부가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 이젠 미국 주도로 지난 30여 년간 이어져왔던 워싱턴 컨센서스에 질렸다는 겁니다. 중앙은행과 전문 경제학자 주도로 간단한 개혁은 가능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 다음, 실패하면 국가 부도의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경제 대국이지만 이런 도전을 두 번 다시 하기는 힘듭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석유 수요가 떨어지기 전에 경제 개발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국가 성장 방식의 변화입니다. 제조업은 과거에 가난한 나라가 성장을 위해 생산성 증가 속도를 높이는 유일한 분야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제조업 생태계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되었기에 그렇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세 전략 모두 국가의 운명을 걸 정도로 대담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모하다고 할 정도의 성장 전략을 내세우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기대를 걸어 볼만한 요인도 있습니다. AI 때문입니다. AI라고 하면 서구의 얼리 어답터들과 실리콘벨리 스타트업, 그리고 챗GPT 등장 이후 시가 총액이 천문학적 규모로 늘어난 7대 기술기업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Seven)’에만 시선이 쏠립니다. 하지만, AI는 신흥 경제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진단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기술 확산 속도로 더 빠르게 생산성을 높이고 인적 자본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AI는 글로벌 사우스에서 잠재적인 영향력이 큽니다. 서방 세계처럼 소비자와 근로자에게 유용한 다목적 도구로서 정보 획득과 해석이 수월해집니다. 물론 일부 직업은 사라지겠지만 새로운 직업도 생겨납니다. 신흥국은 화이트칼라 근로자가 적기 때문에 기업들이 겪는 혼란과 이익은 서구에 비해 덜할 수도 있습니다. IMF에 따르면, 이런 충격에 노출된 일자리가 선진국은 3분의 1인데 비해 신흥국은 5분의 1 내외에 불과합니다.
영향력이 가장 큰 분야는 교육과 의료로 인프라 개선을 통해 건강한 인적자본 육성이 가능해집니다. 신흥국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은 건강한 근로자 부족이 성장을 막습니다. 인도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미국에 비해 두 배나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고, 아프리카는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제대로 훈련받은 의사는 더 드뭅니다. 청소년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건강이 부실하면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잠재력을 발휘하기 힘듭니다.
신흥국들은 폭발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 주도로 AI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인도는 문맹 농부들이 봇(bot)을 이용하여 정부에 대출을 신청할 수 있도록 대규모 언어 모델과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케냐의 경우 챗봇이 학생들의 숙제를 돕는 유연한 수업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훈련이 부족한 기초 의료기관 업무에 AI가 도입되고 있습니다.
지금 신기술 확산 속도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릅니다. 100년 전에는 새로운 기술이 대부분의 국가에 도달하는 데 5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세상을 바꿨다는 아이폰이 등장한지 벌써 17년이 지났습니다. AI는 이미 수십억 명의 신흥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통해 확산되었고, 앞으로도 더욱 확산될 것이며, 여기에 더해 챗봇 비용 하락으로 무한한 적용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AI는 미국의 기술기업의 승자독식 무대였지만 이젠 다릅니다. 인도에서는 수백만 명의 기술 개발자와 AI를 사용하여 디지털 인프라를 개선하며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AI 국수주의를 내세우며 엄청난 자금을 앞세워 인재들 끌어들이고 AI 기술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이런 도전을 보면서 한국 경제의 위치와 방향이 궁금해집니다. 글로벌 사우스의 성장 전략 중 어느 것도 지금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의 AI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언론은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4퍼센트로 25년 만에 일본에 추월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25년 전은 외환위기 극복에 정신없을 때입니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부진, 고금리와 물가상승으로 인한 내수 부진, 저출산과 고령화 등 구조적 문제를 주된 원인이라는 사족을 달기는 했습니다만 너무 익숙한 것들입니다. 과연 한국은 이런 것들만 없으면 저성장의 늪에서 탈피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였습니다. 국가부도로 이어졌던 격변은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1970년대 이후 30여 년 이어져온 고속성장의 결과라는 내부적인 요인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사라진 기업들 중 대부분이 저임금에 의존한 산업이었고, 경제는 환율이라는 외부 충격에 쉽게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27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었고, 국민연금과 금융기관들의 덩치도 엄청나게 커졌고, 선진국 대열에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증시를 보면 10년 동안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를 위협할 기업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동안 미국과 일본, 중국은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 중 예닐곱 개가 바뀌었습니다.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돈은 넘치는데, 투자할 기업은 안 보이는 듯합니다. 역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춘수는 두루뭉술한 작업으로 자신의 욕망을 감추며 희정을 속이고 환심을 삽니다. 그리고 밋밋한 관계로 끝납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접근, 즉 솔직한 감정과 행동으로 희정을 불편하게 했던 접근에서 둘의 관계가 훨씬 더 좋아집니다. 삶에서 작은 판단과 행동으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가 흔합니다. 하물며 국가는 더할 것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3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산업 구조 고도화는 정점에 도달하였고, 대표 주자라는 반도체와 자동차마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젠 삼성전자를 위협할 기업 몇 개 정도는 나올 그림이 절실합니다.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은 틀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본 글은 The Economist의 ‘How to get rich in the 21st century’와 ‘Could AI transform life in developing countries?’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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