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못 쓴 예산 ‘46조’ 역대 최대…“불용으로 저성장 심화”
지난해 정부가 예산에서 미처 쓰지 못한 돈을 뜻하는 불용액이 46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자 지방자치단체에 내려보낼 돈을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것인데, 정부의 긴축·불용 재정정책이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가 낸 ‘2023 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를 보면 지난해 예산 불용액은 45조7000억원, 불용률은 8.5%였다. 2022년(12조9000억원)의 3배가 넘는 규모로 관련 시스템을 정비해 불용액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직전 최대치는 2013년으로 당시 불용액은 18조1000억원, 불용률은 5.8%였다.
불용액은 예산에서 총세출과 이월액을 뺀 금액으로, 정부 예산안에는 잡혀 있었지만 쓰지 않은 돈을 뜻한다. 우선 국세 수입이 줄면서 국세와 연동해 지자체에 보내는 지방교부세·교부금 18조6000억원이 감액됐다. 특별회계나 기금 등에 이월하는 정부 간 내부거래에서도 16조4000억원의 불용이 발생했다. 여기에 사업비 불용(7조5000억원)과 예비비 불용(3조3000억원)이 더해졌다.
지난해 56조4000억원에 달하는 세수펑크가 역대 최대 불용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이나 국채 발행 없이 세수결손에 대응하려다 보니 줄어든 수입만큼 지출을 깎는 불용 규모가 늘어난 것이다. 정부의 재정지출은 소비·생산·소득·고용 등 국민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기 둔화 국면에 지출을 줄이면 경기를 위축시키는 효과가 난다.
다만 정부는 결산상 불용액은 45조7000억원이지만 ‘사실상 불용’ 규모는 10조8000억원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지방교부세·교부금 감액분은 통합재정안정화기금 등 지자체 자체재원을 활용해 보전됐고, 정부 내부거래에 따른 불용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작다는 판단에 따라 실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불용액을 ‘사실상 불용’이라는 개념으로 별도 추산한 수치다.
기재부는 “결산상 불용액은 개별 회계상 불용액의 단순 합계로 세수부족 발생시 사업상 요인과 자금상 요인이 결합해 금액 증가가 불가피하다”며 “사실상 불용 10조8000억원은 예비비 불용 및 사업 지출소요 감소 등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방 교부세·교부금 불용은 지방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큰 만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역으로 내려가야 할 예산이 줄면 지자체 사업이 지연되거나 이행된 사업 대금 결제가 밀릴 수 있어서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세수결손 부담을 강제로 지자체에 떠넘긴 강요된 불용”이라며 “결과적으로 지역에 돌아야 할 돈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사실상 불용액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지난해 불용률(2.0%)은 2022년(1.3%), 2021년(1.0%)보다 높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위기를 제외하고 최저 수준인 1.4%에 그쳤다. 정부소비 증가율은 2022년 4.0%에서 지난해 1.3%로 줄었고, 정부의 성장기여도는 0.4%포인트 수준이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재정의 역할을 방기해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며 “정부가 재정 운용을 통한 국민 후생과 경기 조정이라는 기본 책무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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