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동네 빵집 위기론’이 가린 현실

황보연 기자 2024. 2. 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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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폐기물 수조를 청소하던 노동자 7명이 쓰러져 1명이 숨진 인천 현대제철 공장 시설에 인천소방본부 화학대응센터 대원들이 들어가고 있다. 인천소방본부 제공.

황보연 | 논설위원

지난 6일 현대제철 인천 공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폐수처리 작업을 하다가 숨졌다. 2022년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시행 뒤 이 회사에서만 네번째 사고다. 2022년 3월 당진 공장에선 금속을 녹이는 대형 용기에 노동자가 빠져 숨졌다. 며칠 뒤 예산 공장에서도 노동자가 철골 구조물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그해 11월 당시 대표이사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지만, 1년 뒤 당진 공장에서 또 안전난간 보수 공사를 하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그나마 검찰 송치는 예산 공장 사고뿐이다. 같은 회사에서 심각한 중대재해가 여러 건 발생했지만 수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정부·여당의 중대재해법 재유예 시도가 일단 불발로 그쳤다. 그런데 그 후유증이 간단치 않다. 온 국민이 중대재해법을 곡해하도록 만든 탓이다. 대통령과 경제부처 장관들, 국민의힘 지도부가 총동원됐다. 1월27일 50명 미만 사업장에 법이 확대 시행된 이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7일 한국방송 특별대담에서 “(중대재해법을) 무리하게 확대하는 것보다 확실한 효과를 위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법 개정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는데도 유예 주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이 이럴진대 누가 이 법을 지키려 할까. 노동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자는 법 제정 취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이른바 ‘동네 빵집 위기론’이 불쏘시개 노릇을 했다. 동네 빵집 사장님도 중대재해법 대상이 된다→처벌이라도 받게 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였다. 빵집은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현황을 보면, 사망자 623명 가운데 빵집(제과점)이 포함된 숙박·음식점업에서 숨진 이들은 4명뿐이다. 건설업(328명)과 제조업(168명) 사망자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떨어지고(272명) 부딪히고(71명) 끼여서(61명) 목숨을 잃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대재해법을 미루자면서 장관들은 건설현장 노동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대신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도 반복된다. 대통령은 “처벌 수위가 높아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 기업이 문을 닫으면 많은 근로자가 일터를 잃게 될 것”(특별대담)이라며 공포를 조장했다. 그런데 정작 산업현장에선 중대재해법이 솜방망이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법은 사망자가 나오거나 같은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나오면 사업주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것도 사업주가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입증돼야 한다. 지난해 말 기준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수사된 510건 중 33건만 검찰 기소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법원 선고가 나온 14건 중 경영책임자에 대한 실형이 나온 것도 수차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한국제강 1곳뿐이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를 처벌하려는 법이 아니라 안전보건 관리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만들려는 법이다.

중대재해법이 산재 예방으로 이어진다는 “실증적 검증 결과가 없다”(윤 대통령)는 주장도 무책임하다. 50명 이상 사업장부터 법이 시행된 지 이제 만 2년이 지났다. 충분한 시계열이 확보되지 않은 단기간의 통계로 규제 효과를 따지자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대통령이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통계도 근거가 미흡하다. 2022년 50명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이상)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 잠정치 통계는 256명으로 전년보다 8명 늘어난 규모였지만, 연말에 확정된 통계에선 247명으로 오히려 1명 감소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월 잠정 통계를 발표할 때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12월 확정 통계는 슬그머니 누리집에만 올려놨다. 일부 언론은 아직도 잠정 통계만을 활용해 산재 예방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편다.(임재성 변호사·한겨레 칼럼)

그 외에도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법에서 정한 바와 다르게 소규모 기업에도 대기업 수준의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부여하는 것처럼 왜곡한다거나 버젓이 전문가 집단에 실태조사를 의뢰해놓고도 경영계 설문조사만 냉큼 갖다 쓴다. 이 모든 일을 정부·여당이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중대재해법마저 4월 총선에 활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법을 미루자는 정당은 민생을 챙기는 것이고 반대하면 민생을 외면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로 표심을 공략하려는 것이다. 노동자의 안전을 도외시한 민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중대재해법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요즘은 원청 사업주 책임을 따지기 어려운 위치의 하청 노동자나 불법체류 신분의 이주노동자가 산재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안전한 작업장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처지다. 그래서 중대재해법은 지금보다 강해져야 한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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