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과 사직 [말글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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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서 언어학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걸 보니 반갑다.
한국의 모 집권당 당수가 '사직에서 야구를 봤다'고 했지,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고 말한 바 없어 이를 바로잡고자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더라('허위보도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았다'던데, 하루속히 쾌차하시길). 말인즉슨 틀린 거 하나 없이 다 맞는 말이다.
'용산이 또 사고를 쳤다'는 말은 2년 전만 해도 뭘 뜻하는지 헷갈렸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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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정치판에서 언어학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걸 보니 반갑다. 하도 기발하여 이 얘기를 모르는 사람이 드물다. 한국의 모 집권당 당수가 ‘사직에서 야구를 봤다’고 했지, ‘사직구장에서 야구를 봤다’고 말한 바 없어 이를 바로잡고자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더라(‘허위보도로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보았다’던데, 하루속히 쾌차하시길). 말인즉슨 틀린 거 하나 없이 다 맞는 말이다. 그의 송사는 말이 세계와 똑떨어지게 들어맞는 게 아님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공익성도 있다. 익숙한 걸 낯설게 보려는 예술가의 냄새마저 풍긴다.
말은 부분이 전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전체가 부분을 대신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를 뭉뚱그려 환유라고 한다. 그는 환유로 가득 찬 말의 세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하다. ‘강아지가 할머니를 물었다’고 하면 ‘엄밀성’이 떨어지니, ‘강아지의 위아래 앞니와 송곳니가 할머니의 왼쪽 발뒤꿈치를 물었다’고 해야 직성이 풀리겠지. ‘뿔테안경이 너를 자꾸 쳐다봐’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이 설레기보다는 “안경은 사람을 볼 수 없어!”라며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지도 모른다.
문제는 말이란 게 사회적 맥락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맥락에 따른 해석은 개인의 범위를 벗어나기도 한다. ‘한국이 요르단에 참패했다’는 말이 쓰인 사회적 맥락을 모른다면 전쟁에서 졌는지, 배구에서 졌는지, 축구에서 졌는지 알 수 없다. ‘용산이 또 사고를 쳤다’는 말은 2년 전만 해도 뭘 뜻하는지 헷갈렸을 거다.
말의 부정확성은 인간이 세계를 유연하면서도 역동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보증해준다. 말을 논리로만 다투면, 재판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타인과 말이 통하지는 않게 될 거다. 기특하긴 한데, 웃음거리가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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