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성 폭발 예상됐던 '사상검증구역'에 대한 검증이 흔치 않은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웨이브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특이한 서바이벌쇼다. OTT 시대에 서바이벌 예능이 중흥한 이래로 방 탈출식 추리, 생존본능, 심리, 물리적인 힘 등 다양한 소재와 접근이 이뤄졌지만 정치관과 가치관을 주된 키워드로 삼은 쇼는 처음이다. 좌우 진영 논리, 경제력, 성별 갈등 등 사회적으로 첨예한 주제에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서바이벌을 벌인다는 기획은 꽤나 선정적으로 다가왔다. 매일 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던 익명의 참호격전을 오프라인에다 콜로세움을 세우고 불러온 셈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단순히 선정성에 기댄 기획이 아니다. 오히려 서바이벌 예능은 거들뿐, 건강한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실험에 가깝다. 선의와 시스템, 세력화와 견제, 좋은 사람들의 약점과 건강한 커뮤니티를 지켜가려는 가치관의 전략 등 국가 정책과 사회 규범의 축소판 같은 커뮤니티를 통해 건설적인 실험과 담론을 나누고 싶어 한다. 참가자들의 태도도 다르다. 출연자이자 기자 역을 맡은 '낭자'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으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쇼에 참여했다고 한다. 다른 출연자들도 대부분 우승 상금을 내가 갖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공동체 가치관의 수립과 조율이란 과정에 관심을 더욱 크게 보인다.
생존 앞에 인간의 본성, 이기심 등 민낯을 까발리는 데 집중하던 기존의 서바이벌과 달리,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적자생존의 로얄럼블이 아닌데다, 실제 자신의 가치관을 숨기고 연기하는 것이 제1의 덕목이다 보니, 권모술수보다는 말 그대로 정치가 행해진다. 그래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가듯 규칙과 공금을 위해 각자 지불하는 세율 등을 매일매일 합의 하에 정하는 과정이 중요한 일과다. 다수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결정과 합의부터 시작하니 약육강식의 승자독식을 내세웠던 여타 서바이벌 예능과 비교하면 굉장히 이색적이다.
지금까지 서바이벌 예능의 재미와 몰입 요소는 생존이란 날것에서 오는 생생함에 기인했다. 이를 위해 극도의 리얼리티를 중시하고 본명을 쓰면서, 쌍욕과 비속어 등을 자유롭게 쓰는 등 출연자들이 최대한 자연인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결정적인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군상의 민낯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아예 반대로 공을 돌려 사회적 카모플라주를 서바이벌 예능에 입혔다. 출연자들은 가명을 쓰고, 자신의 견해나 성향이 들키지 않으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신념을 발휘하는 캐릭터플레이를 한다. 그리고 가치관이 각자 다르지만 함께 잘 살 수 있으면서, 공동체의 규범에도 반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한다. 서바이벌 예능의 단골 출연자인 마이클(윤비)의 경험과 마인드셋은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 불순분자 역의 벤자민의 말처럼 좋은 사람, 교양인들이다. 시청자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출연자들이 현실 조건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흔들리거나 변화하지 않는지 지켜본다.
다시 말해, 기존 서바이벌 예능이 최대한 단순명료하고 말초적인 생존 서사와 대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도파민 터지는 서바이벌이나 날카로운 갈등과 대결이 목적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만큼이나 공동체라는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잘 꾸려나가는 조율 과정을 관찰하는 교양적 가치를 담고 있는 사회실험에 가깝다. 적자생존과 각자도생, 이합집산의 세계에서 명분과 약속, 평등과 분배 등의 합의와 우리가 중요시되는 굉장히 신선한 방향이다.
이렇듯 발상의 전환을 가진 접근부터 정치적 소재까지 신선한 건 좋은데, 기대를 했던 콜로세움은 아니다. 내세웠던 사상검증은 프로그램 내에서 숨겨야 할 진실이지 전장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그 빈자리를 채우려는 장치와 설정들이 꽤나 복잡하다. 큰틀에서는 불순분자를 찾아내는 마피아 게임을 진행하면서 사상검증이란 공격 제도를 운용하고, 익명 채팅 토론을 통해 다른 출연자들을 경계하고 의심하는 와중에 협력해서 퀴즈도 풀고, 리더도 뽑는 인기투표도 하고, 모두 모여 밥도 함께 차려 먹는다. 정작 가치관의 대립은 주된 갈등이나 생존의 장치로 등장하지 않는다.
새로운 주제 의식 아래 기존 서바이벌 예능의 재료를 갖고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4화까지 몰입을 부르는 뚜렷한 스토리라인이 뚜렷하지 않다. '랍 밴 댐' 세레모니를 하며 초반부터 불순분자임을 시청자들에게 밝힌 벤자민 정도 이외에는 자기 본 모습을 숨겨야 하기에 의도나 매력을 가진 캐릭터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서바이벌 예능은 결국 이야기의 힘이다. 그런데 물고 물리는 아전투구가 아니라 다 같이 함께 가기를 결정하다보니 방영된 4화까지 결론적으로 시작되거나 달라진 것이 딱히 없다. 새로움도 좋고 우려했던 선정성보다 건설적인 논의를 담는 방향은 좋지만, 그러다보니 그 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지 가둬놓고 지켜보는 긴장감, 스토리의 줄기가 약하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의 기획을 한 줄로 요약하면 '사상검증' 이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던 페미 논쟁을 면전에서 펼치는 등의 선정적인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갈등의 골이나 생존이란 절대가치를 뛰어넘는 공동체를 위한 고차원적인 고민과 실험이 서바이벌 예능의 틀 속에서 펼쳐지는 이른바 정치에 관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 예능을 잘 즐기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야 하고, 정치시사를 비롯해 여러 사회 이슈에 피로보단 관심이 있어야 하며,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가열차게 논박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도 익숙해야 한다. 즉 굉장히 타겟이 구체적이고 다른 말로 한정적이다. 한마디로 난이도가 있다. 화제성이 폭발할 수 있을 가연성 높은 기획임에도 불구하고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에 대한 반응, 리뷰가 흔하지 않는 이유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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