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정현의 얼굴상, 추사의 세한도…설 연휴 전시도 풍성

노형석 기자 2024. 2. 8. 14: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얼굴들이 묵묵하게 바라본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작고한 조각 거장 권진규(1922~1973)와 현역 조각가 정현(68)이 각기 만든 얼굴의 형상을 감상하면서 이런 물음을 꺼내 들게 된다.

흙을 빚어 굽는 테라코타 기법으로 자신의 얼굴과 여성 제자들의 얼굴을 강건하면서도 숭고한 초역사적 풍모로 떠냈던 권진규는 투철한 이상주의자였다.

엑스레이 필름 위에 침목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조형물과 얼굴 형상들을 콜타르 재료로 그린 드로잉 연작은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현 작가의 2005년작 ‘무제’. 석탄 덩어리를 툭툭 쳐서 만든 얼굴상이다. 노형석 기자

얼굴들이 묵묵하게 바라본다. 무엇을 보고 있을까. 허공인가, 영원인가, 영혼인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작고한 조각 거장 권진규(1922~1973)와 현역 조각가 정현(68)이 각기 만든 얼굴의 형상을 감상하면서 이런 물음을 꺼내 들게 된다. 흙을 빚어 굽는 테라코타 기법으로 자신의 얼굴과 여성 제자들의 얼굴을 강건하면서도 숭고한 초역사적 풍모로 떠냈던 권진규는 투철한 이상주의자였다. 석탄 덩어리를 툭툭 쳐내어 간신히 사람 얼굴의 꼴을 갖추게 한 정현 작가의 치열한 재료·물성 탐구의 단면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조합이다.

두 작가의 얼굴상들은 두 건의 계기가 이어진 덕분에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6월 남서울미술관 1층이 수년 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권진규 작품들의 상설전시관으로 바뀌었고, 지난해 12월부터 미술관 2층에서 정 작가가 최근 만든 근작들과 구작들을 함께 엮은 개인전 ‘덩어리’도 마련되면서 서로 통하는 두 작가의 다기한 작품들을 층을 달리해 관람할 수 있게 됐다.

‘권진규의 영원한 집’이란 제목을 단 1층 권진규 전시장을 우선 샅샅이 봐야 한다. 일본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 시기(1949∼1956)와 서울 아틀리에(1959∼1973) 시기로 작가의 시대를 일별하고 ‘새로운 조각’, ‘동등한 인체’, ‘내면’, ‘영감’, ‘인연’ 등 7개 소주제 영역으로 유족 기증작과 미술관 구입 작품, 아카이브 자료 등을 보여준다. 형형한 눈매가 압도적인 조형적 카리스마를 발상하는 자소상과 제자들의 상, 일본인 부인 오기노 도모의 상, 보살과 여래의 도상이 융합된 불상, 이중섭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어 빚어낸 말년작 황소상 등이 주목되는 출품작들이다.

이중섭의 황소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권진규의 1972년작 ‘황소’. 노형석 기자

2층에 있는 정 작가 개인전은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온 1990년대 이래로 침목, 폐자재, 고철 같은 거친 산업재료들과 씨름하며 새로운 형상 조각의 지평을 모색해온 고투의 결과물들을 추려 놓았다. 삽이나 도끼 등으로 석탄 덩어리를 패거나 떼어서 만든 얼굴 형상의 연작들과 아스팔트 재료인 아스콘 덩이로 만든 누워 있는 사람 형상 작품은 작가의 성가를 높인 대표작들이다. 엑스레이 필름 위에 침목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조형물과 얼굴 형상들을 콜타르 재료로 그린 드로잉 연작은 전시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 흰 철판 위에 흠집을 내어 수년 동안 녹슬게 해서 추상그림 같은 효과를 연출한 녹슨 화면 연작들도 눈힘을 들여 감상할 만하다.

최근 전남 여수 레지던시 초대작가가 되어 작업하다가 현지 해변을 걸으면서 발길에 부딪힌 조약돌의 촉감, 질감 등에 자극받아 만든 근작들도 이채롭다. 수집한 돌들의 형상을 디지털 입체 스캐닝 기법을 통해 합성수지 조형물로 확대·변형시키고 이들의 질감이 부딪히는 양상까지 형상화한 파격적 시도를 펼쳐냈다. 재료와 기법을 바꿔가며 꾸준히 작풍의 변화를 추구해온 작가의 조형적 흐름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전시 마당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때 그린 ‘세한도’. 한겨레 자료사진

전통 명절 나들이이니만큼 19세기 최고의 예인 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와 고려불화 ‘수월관음도’를 보러 가는 것도 좋겠다. 최근 새로 단장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증관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수장가 손창근씨와 기업가 윤동한씨가 각각 내놓은 명작들이다. 박병래, 이홍근, 송성문 등 각계 수장가 114명이 지난 60여년간 국립박물관에 기증한 명작 명품 1671점을 2129㎡(약 644평) 규모의 공간에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해 선보이는 중인데, 인공지능 로봇 ‘큐아이’(QI)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볼 수 있다. 상설전시관 로비와 전시실 사이 ‘역사의 길’에서는 최근 디지털로 재현한 4~5세기 고구려 군주 광개토왕비의 대형 영상도 펼쳐지는 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