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법무부 등에 수용자를 ‘조사 수용’할 때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마약류 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를 개선할 것을 권고했다. 이 권고는 지난달 수도권에 위치한 한 교도소에서 조사 수용됐던 피해자가 자살한 사건에 따른 조치다.
‘조사 수용’은 징벌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고 의심되는 구치소 수감자가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다른 수용자의 위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때 다른 수감자와 조사 기간 중 분리해 수용하는 것을 뜻한다.
미약사범인 A씨는 조사 수용 조치된 지 12일 만인 지난달 28일 교도소에서 위중한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튿날 끝내 숨졌다. 앞서 A씨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수용자가 같은 방에 배정되자 “방을 바꿔 달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숨진 뒤 그의 아버지와 지인은 “(A씨가) 규율 위반을 하지 않았음에도 억울하게 조사 수용됐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A씨의 죽음으로 조사는 사망 경위에까지 확대됐다.
진정인들은 교도소의 B 교위가 피해자와 수용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일삼아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폈다. B 교위는 “피해자에게 ‘앉아’‘눈깔아’라는 말을 하다가 언쟁하긴 했지만, 욕설을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인권위 조사에서 A씨를 알던 수용자인 참고인 C씨는 “B교위가 말끝마다 ‘야 이 XX야’하는 욕설이 습관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C씨는 “A씨가 이후에도 수용 생활을 잘했지만, 조사 수용된 것에 대해 억울해하고 불만을 표출했다”며 “죽기 전날 자신이 죽으면 억울하게 조사 수용 시킨 그 사람들이 벌을 받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는 A씨의 행위가 분리수용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해당 조치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또한 인권위는 마약사범이며 정신병원에서 약을 처방받고 있던 A씨에 대해 교도소가 적절한 보호 조치를 했는지 살폈다. 교도소 측은 “마약사범이며 정신질환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관심 대상자로 지정할 만한 상황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에 별도의 영상 계호(경계하여 살핌)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분리된 징벌조사방은 ‘취약개소 순찰강화 계획’에 따라 오후 7~10시 사이 총 6회 순찰돼야 했으나, 순찰 인원 부족 등의 이유로 4회의 순찰만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A씨에게는 TV시청 금지, 타인과 접촉제한, 자살 또는 자해 우려로 인한 생활용품 별도 보관 등 행위제한이 부과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에 대한 조사는 다른 수용자들과 분리된 지 10일이 지나서야 이뤄졌는데, 인권위는 “일련의 절차가 피해자에게 무력감과 좌절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라고 봤다.
인권위는 “교도소의 수용자 보호 조치 미흡으로 A씨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며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무부에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신질환 미결수용자에 대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실시할 것과 조사 수용 시 적법절차 원칙을 준수할 것 등을 권고했다.
해당 교도소에는 징벌 대상 수용자에 대한 무조건적 분리 수용을 지양할 것과 마약류 및 정신질환 수용자에 대한 긴급 예방상담 등 보호조치를 강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