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숯덩이로 변한 로마 시대의 두루마리, 해독해 보니

이철민 기자 2024. 2. 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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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원천이 희소성에 있는가, 아니면 풍부함에 있는가” 질문

2000년 전 이탈리아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인해 숯덩이로 변한 고대 문서가 CT 스캐닝과 다이아몬드 광원 입자 가속기, 인공지능(AI) 등의 첨단 기술을 이용한 연구진에 의해 해독됐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반도의 허리 아래에 위치한 베수비우스[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화산재와 흙더미가 폼페이와 인근 마을인 헤르쿨라네움을 덮쳤다. 이 화산재로 인해, 헤르쿨라네움의 한 도서관 빌라에 있던 800여 개의 두루마리 문서들이 모두 숯덩이로 변했다.

약 2000년 전 이탈리아 반도의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에서 쏟아진 고열의 화산재로 인해 숯덩이로 변한 로마 시대의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베수비우스 챌린지 제공

이 두루마리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의 장인이 소유했던 것으로 추정됐는데, 화산재의 높은 열기로 인해 탄화(炭化)됐다. 이후 1750년 이탈리아의 한 농부가 이 헤르쿨라네움 도서관과 소장된 숯덩이 두루마리들을 발견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 문서들 중 일부를 펼쳐보려는 고고학계의 노력은 모두 실패했다. 문서들은 잘게 부숴졌다.

이후 270여 년 간 이 숯덩이 고대 두루마리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큰 고민거리였다. 작년에 미국 켄터키대의 컴퓨터공학자인 브렌트 실스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이 고해상도의 CT 스캔으로 이 텍스트를 1차로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서에 달라붙은 탄화 잉크를 해독할 수가 없었다.

결국 실스 팀은 10개 월 전 테크 투자가들을 모아서, ‘베수비우스 챌린지’를 출범했다. 4쪽에 해당하는 문서를 우선 읽어내는 팀에게 1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미국인 투자가이자 이 챌린저의 설립 후원자인 냇 프리드먼은 지난 5일 우주기업 스페이스 X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한 컴퓨터 박사 과정 학생과 스위스의 로봇 전공학생 등 3명의 컴퓨터 전문가 팀이 한 두루마리에서 전체 분량의 5%에 해당하는 2000여 자의 그리스 문자를 해독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 팀은 작년 10월에 최초로 ‘보라(purple)’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문자 πορφύραc(포스피라스)를 추출할 수 있었다.

3명은 AI와 기계학습 알고리듬을 통해 탄화된 잉크의 일정한 패턴을 읽어가는 모델을 구축했고, 계속 알고리듬을 수정하면서 두루마리 문서의 “매우 끝부분”에 해당하는 15개 열의 문자를 읽었다고 한다. 켄터키 연구진과 이들은 이 고대 사본의 ‘초벌 번역’을 했다.

20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숯덩이 고대 사본의 끝부분 15개 열 2000여 그리스 문자/베수비우스 챌린지

이 문서는 인생의 즐거움, 쾌락주의를 강조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 필로데무스(BC 110~BC 35)가 쓴 것으로 추정됐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의 그리스학 전문가인 로버트 파울러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비비꼬인 문체가 전형적인 그의 스타일이고, 주제도 딱 그의 취향”이라고 말했다.

이 고대 두루마리 사본의 저자는 ‘풍부한 것보다는 희소한 것이 더 쾌락을 준다’는 일반적인 전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음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풍부한 것보다는 희소한 것들이 절대적으로 더 큰 즐거움을 준다고 (즉각적으로) 믿지는 않는다”며 “풍부한 것들 없이 사는 것이 더 쉬운지, 이런 질문을 종종 고찰해야 한다”고 썼다. 파울러 교수는 “그가 던진 질문은 쾌락의 원천이 지배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냐, 희소한 것에 따른 것이냐, 아니면 혼합이냐를 묻고 있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또 에피쿠로스 학파와 학문적 대척점에 있는 스토아 학파를 겨냥한 듯이, “그들은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과 관련, 일반적이든 특수한 경우든 할 말이 없다”고 썼다.

이 문서의 마지막은 “우리는 어떠한 것에 대해 질문하고, 또한 다른 것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다. 이로써 우리가 말해온 것에서 종종 드러나듯이, 우리가 진실된 것을 말한다는 게 명백하지 않는가!”였다.

챌린지 조직팀은 “우리가 발견한 첫 텍스트가 어떻게 삶을 즐긴 것인가에 대해, 2000년 된 블로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이번에 밝혀진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고대 사본 학자들은 (숯덩이로 변해) 이렇게 읽어야 할 사본이 수백 개에 달한다며, 이번에 입증된 해독 방식은 “완벽한 게임 체인저”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의 파피루스 전문가인 페데리카 니콜라르디는 가디언에 “이번 작업은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 연구와 그리스 철학 연구에서 혁명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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