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 맞아 더 바삭한 걸까…왕의 밥상 부럽잖은 해변의 붕어빵

박미향 기자 2024. 2. 8. 10: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미향의 미향취향 : 해변 마을 걷기
부산 ‘흰여울문화마을’ 여행
‘흰여울붕어빵’에서 파는 붕어빵.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여울목’은 가수 한영애가 부른 노래다. 버터 잔뜩 들어간, 밀도 조밀한 디저트 맛이다. 눅진눅진한 빨간 고추장으로 만든 찌개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사는 더 걸쭉하다. 인생의 고단함이 묻어있다. ‘굽이치는 여울목에서/ 나는 맴돌다 꿈과 헤어져/ 험하고 먼 길을 흘러서 간다/ 덧없는 세월 속에서/ 거친 파도 만나면/ 눈물겹도록 지난날의 꿈이 그리워’.

‘여울목’은 ‘여울물이 턱진 곳’이라는 뜻이다. ‘여울’은 ‘강이나 바다 등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센 곳’을 이른다. 이 ‘여울’이란 단어를 차용한 여행지가 있다. 요즘 부산을 대표하는 여행지로 꼽히는 ‘흰여울 문화마을’(영도구 영선2동 15·16통)이다.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박미향 기자
맑은 날 ‘흰여울 문화마을’ 전경. 부산관광공사 제공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졌다. 박미향 기자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졌다. 박미향 기자

부산 영도구 서쪽 해안에 있는 ‘흰여울 문화마을’은 위쪽에 있는 봉래산에서 굽이쳐 빠르게 내려오는 여울 모습이 마치 흰 눈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달동네다. ‘여울목’ 가사처럼 삶의 고달픔이 아롱아롱 새겨졌던 마을은 2010년대 초부터 달라졌다. 마을재생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다. 예술가들이 공방을 차리고, 낡은 집들은 카페로 변신했다. 슬레이트 지붕들은 파란색이나 노란색 페인트칠이 돼 색다른 눈요기가 됐다. 여행객들은 이를 두고 ‘한국의 산토리니’란 별명을 붙였다. 풍경은 생소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채 고상한 멋을 자랑했다.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졌다. 박미향 기자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졌다. 박미향 기자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졌다. 박미향 기자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에 있는 한 소품 가게. 박미향 기자

마을 여행은 ‘흰여울 문화마을 안내센터’에서 시작한다. 안내센터에 배치된 마을 지도를 들고 시작하면 좋다. 센터에는 ‘변호인’(2013) 등 이 마을에서 촬영한 영화 정보가 가득하다. 센터에서 아래쪽으로 난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한 줄로 길게 이어진 마을길을 만난다. 대략 2m 정도 폭으로 좁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출렁이는 파도가 보인다. 걷다 보면 고양이달력 비롯해 각종 고양이 굿즈를 파는 가게, 나무판에 추억을 새겨주는 공방, 화려한 디저트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 등이 줄지어 나타난다.

‘흰여울붕어빵’ 주인 김주희씨. 박미향 기자
‘흰여울 문화마을’에 있는 ‘브런치 카페 에테르’의 먹을거리. 박미향 기자

한참을 걷다 보면 고소한 향이 일렁이는 곳에 발걸음이 멈추게 된다. ‘흰여울붕어빵’이란 문패를 단 붕어빵 포장마차다. 김주희(44)씨가 한 달 전에 문 열었다. 그는 본래 와인수입업체에서 일했지만, 점차 사라져 가는 길거리음식이 아쉬워 붕어빵 포장마차를 열었다고 했다. 그가 구운 붕어빵은 유난히 바삭바삭하다. 알싸한 해풍이 요리 솜씨를 발휘한 것일까. 바닷바람이 볼을 스쳐 갈 때 집어 든 따스한 붕어빵 한입은 왕의 밥상이 부럽지 않다. 아쉽게도 김씨의 붕어빵 포장마차는 주말에만 연다.

지난 2월4일 찾은 ‘흰여울 문화마을’ 풍경. 영화 ‘변호인’ 촬영 장소. 박미향 기자
맑은 날 ‘절영해안산책로’ 풍경. 부산관광공사 제공
‘흰여울 문화마을’에 있는 ‘브런치 카페 에테르’ 실내. 박미향 기자

포차를 지나면 천만 영화 ‘변호인’ 촬영지에 도착한다.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국밥집 아줌마 최순애(김영애) 집에 찾아간 장면을 이곳에서 찍었다. 현재 그 집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길에서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새파란 색으로 포장된 길이 보인다. 삼발이 방파제(테트라포드)가 넘실거리는 파도를 막아준다. ‘절영해안산책로’다. 중리항, 감지해변길 지나 태종대로 이어지는 3㎞ 길이다. 산책로와 연결된 마을 계단은 총 4개. 맏머리 계단, 꼬막 계단 무지개 계단, 피아노 계단 등이다.

‘흰여울 문화마을’에 있는 ‘브런치 카페 에테르’ 풍경. 박미향 기자

이 마을 여행엔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소란스럽게 떠들면 안 된다. 조용히 여행할 것. 주민들의 삶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 둘째 쓰레기 등을 함부로 버려서도 안 된다. 셋째 길이 좁기에 여행객 서로가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흰여울 문화마을 걷기 여행은 대략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여행자의 걷는 속도에 따라, 풍경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동행한 이와의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마음에 남는 감상은 한가지다. 바닷바람이 전하는 위로와 긍정. ‘여울목’ 마지막 구절 ‘은빛 찬란한 물결 헤치고/ 나는 외로이 꿈을 찾는다’가 은유하는 긍정 같은 거 말이다.

부산/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