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저기도 공실…신도림 테크노마트 혹독한 겨울 [視리즈]
네, 팬데믹 때보다 힘듭니다➌
유동인구 50만명 신도림역 인근
공실투성이 신도림 테크노마트
매장 찾는 손님 하루에 1~4명
팬데믹 때보다 매출 20~30% 감소
업종 변경 어려운 테마형 집합상가
시대 소비 트렌드 좇는 것도 실패
퇴근시간에 문 닫힌 매장 수두룩
월세 0원. 관리비와 보증금만 내도 입점할 수 있다. 그런데도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공실투성이다. 하루에 50만명이 오가는 신도림역을 배후로 두고도 상황이 이렇다. 팬데믹에서부터 이어져온 침체 때문인지 전략의 실패 탓인지도 알 수 없다. 활력이 사라진 자리에 '무력함'이 들어찬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추운 겨울로 들어가 봤다.
'안녕하세요. 13년 동안 제 삶의 터전이었던 곳, 오늘 그만둡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랑 넘치도록 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10층 식당가에 위치한 어느 '비빔밥 매장'엔 누군가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아 쓴 듯한 메모가 힘없이 붙어있었다. 쓴 날을 보니 2023년 8월 31일. 벌써 5개월이 훌쩍 지났는데 아무도 떼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림잡아 매장 두곳 중 한곳은 '임대문의'를 붙여놨다. 이곳엔 누군가의 신규입점을 기대할 만한 기대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문을 연 매장에 고객이 자리잡은 테이블은 1석뿐이었다. 식사시간이 아니란 점을 감안해도 침체가 심각해 보였다. 장사 중인 마라탕 상인 김영호(가명)씨는 "신도림 테크노마트 건물 전체의 유동인구가 적은데, 번거롭게 10층 식당가까지 올라와서 밥 먹는 고객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장사가 잘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인지 하나둘씩 폐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루에만 50만명이 오가는 신도림역이란 엄청난 배후를 끼고 있는 복합쇼핑몰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침체는 뼈아픈 함의를 갖고 있다. 2020년 팬데믹을 기점으로 내리깔린 '침체의 그림자'가 이젠 소비자를 넘어 '파는 사람'까지 휘감았단 방증이어서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2024년 1월 29일 오후 4시, 우리는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식당가가 있는 10층에 섰다. 한층씩 내려가면서 이곳의 침체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4층이 최고층이지만 피트니스센터ㆍ영화관 등을 운영 중이어서 10층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 내려가자 휴대전화 매장이 나왔다. 10층과 풍경이 똑같았다. 층 전체에 손님이 한두 팀 정도 보일 뿐 썰렁했다. '불법 보조금의 성지'란 악명이 붙기도 했지만, 서울의 어떤 매장보다 휴대전화를 싸게 팔아 고객들로 붐볐던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휴대전화 매장 사장들은 "마스크를 쓰고 손님을 받던 코로나19 때보다 손님이 더 뜸하다"고 한탄했다.
활력이란 녀석을 찾아볼 수 없는 9층을 지나 우린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8층ㆍ7층엔 웨딩홀, 6층은 학원, 5층은 구로경찰서가 둥지를 틀고 있다. 마치 분수처럼 1층에서 꼭대기층까지 손님을 유인하기 위해 '상가의 연결'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복합쇼핑몰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역시 침체의 원인 중 하나로 꼬집을 만하다. '분수효과(Trickle-Up effect)'를 꾀하는 건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층과 층 사이를 무료하게 건너뛰고 만난 4층, 가구를 파는 매장. 이곳 가운데도 텅텅 비어 있다. 층 전체에 손님은 2명뿐이었다. 손님이 찾지 않는 게 익숙해진 듯 자신이 파는 의자에 누워 세상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 매장 주인도 눈에 띄었다.
이곳 가장자리에서 가구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현묵(가명)씨는 "여기서 1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지만 지금이 최악"이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 바로 앞 매장도 지난해 상반기까지 겨우 겨우 버티다 얼마 전에 나갔다. 상가를 찾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을 거다. 우리 매장에도 하루에 1~4명가량만 찾아온다. 팬데믹보다 매출이 20~30% 줄었으니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신도림 테크노마트가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2007년 개장 초기에는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국제전자센터, 용산전자상가와 함께 '서울 3대 디지털 상가'로 불릴 정도였다.
지역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장소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9년에는 지하연결광장에 DJ 부스를 설치하고 시민들로부터 노래 신청을 받아 노래를 들려주는 '라디오스타' 코너 등을 운영했다. 청소년이 참가하는 댄스ㆍ노래 경연대회, 각종 축제와 페스티벌도 활발하게 펼쳐졌다. 집합 상가론 처음으로 포인트 적립형 마일리지 카드를 발행한 곳도 신도림 테크노마트다.
이랬던 신도림 테크노마트의 영화榮華가 막을 내린 이유는 오로지 침체만은 아니다. 이곳이 시대의 소비 트렌드를 좇는 데 실패했다는 점도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신도림 테크노마트같은 테마형 집합상가는 상가 관리 규약에 따라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트렌드 변화에 따라 업종을 변경하는 게 쉽지 않다. 업종을 바꾸려면 점주들의 동의가 필요한 데 이해관계가 제각각이어서 접점을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영갑 KYG 상권분석연구원 교수는 "주인이 한명이라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빨리 업종을 바꿀 수 있지만, 점주가 많으면 합의가 어려워 업종 변경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의 이주현 선임연구원은 "현재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구분상가 하나로 임대수익을 창출하기도 힘든 상황"이라며 "지금 상태로 계속 방치하는 것보다는 한층 전체를 테마파크 형식으로 개발해 건물 전체를 살리는 기획이 필요하지만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느덧 카메라와 디지털가전을 팔고 있는 2층. 이곳 역시 '공실투성이'다. 간신히 살아남아 있는 듯한 매장 안엔 카메라ㆍ녹음기 등 전자기기들이 질서 없이 쌓여있었다. 10년 넘게 이곳에서 카메라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오현수(가명)씨는 "카메라 자체가 사양산업인 데다, 살 사람들은 모두 온라인에서 구매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오씨는 "닭장 같은 좁은 가게 안에 갇혀 관리비와 월세만 겨우겨우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 1층과 지하층의 상황은 어떨까. 만약 1층이나 지하층에 '작은 활력'이라도 감돈다면 신도림 테마파크는 회생할 가능성이 있다. 언급했듯 소비자는 아래에서 위로 '분수'처럼 이동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상가 1층 패션ㆍ잡화 코너나 지하 1층 잡화ㆍ푸드코트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하 1층에 있는 무인민원발급기를 이용하러 온 사람들이 손님보다 많다는 건 이곳의 씁쓸한 현주소를 상징하는 듯했다.
그나마 작은 캐릭터숍엔 20대 여성 6명이 몰려있었는데, 별다른 의미를 찾긴 힘들었다. 일행 중 심예솔(23)씨는 "귀여운 캐릭터 상품을 구매하고 가챠(뽑기)를 하기 위해 왔다"며 "이 매장이 아니라면 볼거리도 매력도 없는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굳이 찾아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층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보증금 300만원, 관리비 25만원, 월세 0원~10만원인 곳도 있다"면서 "월세 등이 이렇게 싼데도 공실이 많다는 건 이곳의 뼈아픈 현실을 시사한다"고 꼬집었다.
오후 6시 30분.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손님들이 몰리는 퇴근시간인 데다, 폐점시간(밤 9시)이 한참 남았는데도 대부분의 매장은 문을 닫은 뒤였다. 이곳에서 만난 카메라 상인의 힘없는 목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어째 계속 힘들어지기만 하네요. 여기서 나아질 거란 희망도 없어요."
우리 상인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게 신도림 테크노마트만의 문제일까. 그 무렵, 어느 1층 매장의 사장이 판매대를 '흰천'으로 덮고 있었다. 그 옆으론 사람들이 '무관심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후 6시42분, 아직도 퇴근시간이었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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