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인방송, '입막음용' 소송 대신 책임있는 소명이 먼저
조동성 경인방송 이사, 본지 의혹 보도에 기사삭제 가처분 신청
법원 가처분 신청 기각 "진실 아니거나 공공 이해 아니라고 단정 어려워"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지난해 12월30일 경인방송의 조동성 이사로부터 기사 삭제 요청이 왔다. 지상파 라디오방송사 경인방송 주요주주 3인의 비밀 계약서를 통한 주식 위장 분산 의혹을 제기한 기사에 대한 게시물 삭제 및 게시금지 가처분 신청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해 12월29일 경인방송 주요 주주들이 최다액출자자와 특수관계인이 소유한 지상파방송사 지분의 합이 40%를 넘을 수 없다는 방송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주주간 비밀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의혹 보도에 언론중재위원회 제소가 아닌 기사 삭제 가처분 신청이 들어온 건 이례적이다. 조 이사 측은 인격권과 명예가 훼손됐다며 5000만 원을, 기사를 삭제하지 않을 경우 시간당 10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 2일 미디어오늘의 손을 들어주며 조 이사 측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51민사부는 “조동성이 주장하는 사정들 및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들만으로는 기사가 진실이 아니라거나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미디어오늘 보도에 대해 “주주간 계약서와 추가합의서에 기재된 내용에 근거해 작성 동기나 경위에 대한 제보자 내지 미디어오늘의 법적 견해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며 “조동성이 방송법에서 정한 주식 소유 제한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단정적으로 보도한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점” 등을 들어 보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기사의 공익성 관련해 “언론과 방송의 독과점을 방지하고 방송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의 방송법상 소유 제한 규정이 적용되는 경인방송의 주식과 관련해 조동성, 민천기, 권혁철의 이름이 기재돼 있는 주주간 계약서와 추가합의서가 작성되거나 존재하게 된 경위 및 작성 동기 등과 관련된 의혹을 알리기 위한 공익적인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조동성, 권혁철, 경인방송에 대해 질의하고 이에 대한 권혁철과 경인방송의 답변을 기사에 포함시키는 등 반론의 기회를 부여했다”고 기사의 완결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미 게재된 글을 삭제할 것을 명하는 가처분은 일반 가처분과 달리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이 이행된 것과 같아 고도의 소명이 요구된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비밀계약을 작성한 주주 3인 중 민천기 전 이사에게 비밀계약서 작성 사실을 확인했다. 권혁철 이사는 '할 말은 많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은 못 된다', '조동성 민천기와 공동 경영 합의를 했다'며 비밀계약을 부정하지 않았다. 반면 경인방송의 최대주주인 조 이사 측은 반론 취재에 응하지 않고 기사 삭제 가처분을 제기했다. 경인방송 측은 반론 취재에 답하지 않다가 기사가 나온 당일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조 이사 측은 인천 지역신문 '인천투데이'가 이 사안을 보도하려하자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조동성 측 법률대리인 배한영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반론을 요청하는 인천투데이 기자에게 “미디어오늘과 동일한 취지로 기사를 싣겠다는 건데 (미디어오늘에) 민형사 법적 대응을 하고 있다”, “조만간 결론이 날 거다. 법적으로. 그걸 한번 보고 싣든지 하는 걸 권고하고 싶고, 우리가 명확히 입장을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한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추가적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의 후속 보도가 나간 뒤엔 경인방송 보도국장이 직접 <경인방송에 대한 허위·악성 주장...이기우 대표이사 “심각한 우려...법적 강경 조치”> 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지난달 31일 비밀계약서를 제보한 강원모 전 경인방송 대표 직무대행과의 인터뷰 기사를 내보낸 뒤의 시점이다. 허위라는 주장에 대한 제보자 강 전 직무대행의 반론은 없었다. 제보자는 경인방송 기사와 이를 받아쓴 타 언론사 기사들을 언론중재위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경인방송 대상으로 재허가 청문회를 실시했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통위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이기우 대표이사, 안병진 편성제작국장, 조동성 이사가 청문회에 참석했다. 청문회에선 언론보도에 제기된 주주간 계약서 내용의 방송법상 소유제한 위반 여부 등에 대한 당사자의 명확한 소명과 시청자위원회 운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방통위는 지난달 31일 경인방송에 최다액출자자가 참여한 주주 간 계약으로 위법이 드러나면 재허가를 취소하겠다며 3년의 유효기간을 부여한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 방통위는 경인방송 주요 주주간 계약 관련 위법 사항을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 경인방송과 조동성 이사는 언론보도에 '입막음용' 소송부터 꺼낼 게 아니라 의혹에 대해 투명하게 소명하는 책임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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