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사먹기 주저하는 당신…우리는 왜 비트코인에 현혹되었을까

한겨레 2024. 2. 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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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리포트] 임일섭의 화폐를 다시 생각하다
로이터 연합뉴스

인필자모연후인모지(人必自侮然後人侮之)

중국 사상가 맹자의 말이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업신여기면 다른 사람도 그를 업신여긴다”는 뜻이다. 오래된 이 말을 떠올린 이유는 비트코인을 둘러싼 일련의 소동 탓이다. 우리가 화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현행 화폐제도에 대한 그릇된 비판이 주목받고, 비트코인은 미래의 디지털 화폐라는 섣부른 주장이 호응을 얻게 된 것 아닐까.

‘비트코인 피자데이’라는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트코인으로 피자를 구매한 사례도 있고, 심지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나라도 있다. 사실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지급수단이 될 수 있다. 나름의 사용가치를 갖는 많은 사물들은 화폐 기능을 부분적으로 수행한다. 거래상대방 간의 필요가 일치하는 재화는 지급수단이 될 수 있고, 금방 상하지 않는 한 가치저장 기능도 어느 정도 수행한다. 그러나 화폐의 일부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 좋은 화폐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좋은 화폐제도가 지녀야 하는 속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화폐를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역사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기억 때문에 화폐의 공급과잉만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화폐의 공급부족도 경제활동의 침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문제다. 근대 초기 서유럽에서는 귀금속의 유출로 인한 만성적인 주화 부족이 문제였으며, 조선 후기에도 구리 공급의 부족으로 인한 전황(돈가뭄)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도 빈번했다. 또한 현대 그림자은행의 탄생도 기존의 은행 중심 화폐제도가 화폐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은행이 만드는 부채 화폐

현대 시장경제에서 대부분의 화폐는 은행의 부채, 즉 예금이라는 형태를 띤다. 은행 예금은 은행이 상환을 약속한 채무증서다. 은행 예금은 대출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대출심사를 통해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평가한 이후, 대출자의 계좌에 특정 금액의 예금을 기입함으로써 대출이 이뤄진다. 은행의 대출 행위는 대출자에게 은행 명의의 채무증서를 건네주는 일이다. 이 결과 은행은 자산 항목에 대출채권, 부채 항목에 예금부채를 보유하게 된다. 은행 예금은 양도가능한 부채(transferable debt)라는 점에서 지급수단으로 사용된다.

은행의 부채를 화폐로 사용할 때 장점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만큼 화폐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의 대출심사는 대출자의 화폐수요가 적정한가를 평가하는 과정이다. 만약 은행이 대출을 통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화폐를 만들었다면, 그 대출은 부실화되고 은행은 책임진다.

부채 화폐의 장점은 상품 화폐와 비교할 때 두드러진다. 대표적 상품 화폐인 금속 화폐의 경우, 화폐의 공급량은 금속의 공급량에 종속된다. 그러나 부채 화폐는 어떤 물질적 제약 없이 필요 화폐량에 대한 판단에 따라 탄력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

2023년 11월16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거래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화폐의 내재가치…금속 화폐 VS 부채 화폐

이른바 내재가치(intrinsic value)의 유무를 기준으로 상품 화폐와 부채 화폐를 비교해볼 수도 있다. 상품 화폐는 내재가치를 갖는 상품을 화폐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치의 근거가 뚜렷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예컨대 금의 고유한 내재가치는 장신구로서의 가치, 공업적 용도로의 쓰임새 등을 지칭하는데, 만약 금이 화폐로 사용되면 내재가치의 근거인 본래 용도로는 더는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유한 내재가치를 갖는 상품을 화폐로 사용하는 것은 그 내재가치의 활용도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은행의 부채 화폐, 즉 예금 화폐는 위와 다른 방식으로 가치의 근거를 갖는다. 장부상의 숫자나 디지털 기록 그 자체에는 내재가치가 없지만, 은행 부채에 대응하는 자산이 존재한다. 은행의 부채인 예금은 대출자산을 담보로 만들어지며, 이것이 예금 화폐 가치의 근거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상업은행이 ‘허공에서’(ex nihilo) 화폐를 만들어낸다는 표현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비트코인이 화폐가 될 수 없는 이유

현대의 예금 화폐와 비트코인은 모두 디지털 코드에 불과하며, 그 소재의 내재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예금 화폐는 은행의 부채이며, 그에 대응하는 대출자산이 예금의 가치를 담보하지만, 비트코인의 가치를 담보하는 것은 없다. 비트코인은 그 누구의 부채도 아니기 때문이다.

화폐로서 비트코인의 약점으로 흔히 지적되는 가격 변동성은 표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비트코인이 좋은 화폐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급량을 필요에 따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채 화폐인 은행 예금과의 결정적인 차이다. 은행의 예금화폐는 대출과정을 통해 발행되는 부채이기 때문에 자의적인 남발을 피하면서도 탄력적으로 공급될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경제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채굴’된다. 비트코인에는 화폐 수요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없으며, 발행자의 부채가 아니므로 대응하는 자산도 없다. 이처럼 가치의 준거가 없기 때문에, 투기수요에 따른 가격 급등락이 불가피하다.

부채 화폐와 비트코인의 차이는 ‘결제의 최종성’(finality of settlement)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비트코인의 이전은 제3의 중개자 없이 이루어진다. 네트워크 참여자들 간의 신뢰가 없어도 암호화기술 덕분에 디지털 코인의 중복사용을 차단할 수 있고, 거래기록의 위변조를 막을 수 있으며, 확정된 거래기록은 수정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 기술은 중개자 없이도 결제의 최종성을 보장한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본래 결제의 최종성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결제의 최종성이 중요한 이유는 다수 발행자(은행)의 민간화폐가 지급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다수의 지급결제 개론서들은 이를 ‘비현금거래’라고 모호하게 서술한다). 그래서 민간화폐로 이뤄진 거래를 더욱 신용도가 높은 중앙은행의 화폐로 마무리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 마무리 과정을 지급과 구별하여 결제라고 칭한다. 달리 표현하면, 예금화폐가 지급수단으로 사용된 거래는 아직 잠정적인(tentative) 상태이며, 이를 중앙은행의 화폐로 정산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완결하는(finalize) 절차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지급결제제도의 역할이다.

요컨대 결제의 최종성이 중요한 이유는, 신용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민간의 채무증서가 지급수단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누구의 부채도 아니기 때문에 신용위험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비트코인에서 결제의 최종성은 데이터베이스의 무결성(integrity)과 거래의 비가역성을 확보하는 문제로 변형된다. 부채의 신용위험 관리가 아니라, 중복사용의 차단과 위변조 방지가 중요해진다.

비트코인은 중개자 없이 작동하는 전자화폐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지만, 부채라는 속성을 제거함으로써 탄력적인 화폐 공급이 불가능한 제도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비트코인의 등장 이후, 분산원장을 기반으로 중개자 없는 지급결제가 가능하면서도 가격 안정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비트코인의 후계자가 등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이 그것이다. 그러나 비트코인과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자의 부채이며, 바로 그 때문에 분산원장의 방법론은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최종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룬다.

게티이미지뱅크

비트코인에 현혹됐던 이유

마지막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와 그의 추종자들이 착각한 이유, 그리고 그들의 호언장담에 우리가 한때나마 현혹되었던 이유를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서두에 소개한 맹자의 말처럼, 화폐제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 부족 탓으로 비트코인의 섣부른 비판과 주장이 설득력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우리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금융안전망은 화폐제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체계적으로 저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폐제도의 불안정성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민간 부채가 화폐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지급결제제도와 최종대부 기능, 예금보험 등으로 구축된 현대의 금융안전망은, 민간화폐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의구심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일상 거래에서 민간화폐와 공공화폐를 굳이 구분하지 않도록 유도해왔다. 따라서 이중통화제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역설적으로 이는 금융안전망이 성공적으로 작동해왔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일섭 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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