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현장탐사①] 피해자들은 죽겠다는데…옥살이 중 "돈봉투 준비" 지시한 회장님
평생 모은 돈으로 주거용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가 공사가 멈추며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약을 해지하려고 해도 해지해 주지 않아 빚은 계속 쌓이고, 대출금 이자를 못 내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거리로 나앉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75살 할머니의 호소 "죽겠습니다"
우선 이 건설사의 수분양자들이 어떤 피해를 보고 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한때 국내 도급 순위 60위권까지 올라가며 급성장한 경기도 지역의 한 건설업체 이야기입니다.
이 회사는 전국에 땅을 사고, 현장마다 시행사를 새로 차려 30여 개 회사를 통해 오피스텔 개발사업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금 경색이 오자 2018년 무렵부터 하도급 업체에 대금을 미지급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했고, 2019년쯤엔 각지의 공사가 멈추는 데 이르렀습니다. 특히 2019년 말~2020년 초 준공 예정이었던 대구, 부산, 울산, 경남 양산 등지의 현장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예정된 준공일을 넘긴 건 확인된 곳만 3700세대가 넘습니다.
수천만 원의 계약금과 억대의 중도금 대출까지 묶인 채 멈춰있는 공사장을 바라보기만 하던 수분양자들에게, 시행사가 대신 내주기로 약속한 중도금 대출 이자에 대한 독촉장까지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대주, 그러니까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대부분 협동조합이나 새마을금고 등 이율이 높은 제2금융권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 이자를 내야 하냐?"며 납부를 거부하거나 매달 수십만 원의 이자마저도 내기가 부담스러웠던 수분양자들에게는 신용 급락과 카드 정지 등 혹독한 결과가 닥쳐왔습니다.
일부 수분양자는 분양 계약을 해지하고 돈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건설사는 이에 응하면서, '당장 돈을 돌려주지 못하지만, 준공이 나면 즉시 돈을 돌려주겠다. 그때까지 이자도 내주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각종 세금 체납과 체불 하도급 대금, 소송 등이 이어지며 자금 융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계약 해지금을 4년째 돌려받지 못하고 살던 집까지 빼앗기게 생겼다는 한 수분양자를 만났습니다.
대구에 사는 75살 이 모 씨는 지난 2017년 노후를 보낼 새집을 하나 분양받았습니다. 넓은 아파트는 아니지만 꽤 넓고 방도 많아 '아파텔'이라 부르며 가격도 저렴한 주거용 오피스텔이었습니다. 지하철역이 지척이라 교통도 편하고, 병원도 주변에 많았습니다. 계약금 2천만 원을 넣었고, 중도금 1억 4천만 원은 '이자를 대신 내주겠다'는 말에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정된 준공일을 넘어가고 기약이 없자 계약 해지를 요구했습니다. 시행사는 준공 후 계약금과 중도금대출 모두 돌려주겠다고 계약서까지 쓰며 약속했지만, 2019년 건물이 준공되고 나서도,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수입 없이 연금으로 생활하는 이 씨는 7개월 전부터 이자가 연체돼 신용 불량자가 됐고, 최근엔 현재 사는 20평 남짓한 집을 경매로 처분하겠다는 예고장까지 날아들었습니다.
그 돈들은 어디 갔나?
해당 시행사와 건설사는 사실상 한 회사입니다. 등기상 주소지도 경기 시흥의 한 건물 같은 층에 나란히 등록되어 있습니다. 건설사도, 시행사도, 그 주소지의 소유주도 한 사람, 오 모 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벌이 나오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그중에서도 횡령과 배임, 사기 등입니다. 회삿돈을 빼돌리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겁니다. 검찰이 죄가 있다고 본 횡령액은 352억 원에 달합니다.
대구지방경찰청과 대구지검이 수사한 내용에 따르면, 회삿돈을 횡령하기 위해서 그는 30여 개에 달하는 계열 시행사들을 활용했습니다. 시행사 임직원으로 가족과 친지, 지인, 직원들을 중복 등재하거나 허위 등재해서 거액의 급여를 허위로 지급한 겁니다.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진술한 오 회장의 아내는 37억 원을 급여로 받았습니다. 실제로 일을 했던 88년생 딸과 93년생 아들은 각각 28억 원씩 도합 57억 원이 넘는 돈을 급여로 받았습니다. 단골 유흥주점으로 알려진 곳의 사장 역시 시행사 대표로 이름을 올려 7억 원의 급여를 받기도 했습니다.
보통 분양대행사 직원들이 분양 계약을 성공시킨 인센티브로 받는 분양 수수료도 활용했습니다. 회사 일과 무관하게 대기업에 다니던 사위도 5억 원 넘게 분양 수수료를 받았습니다. 처자식이 받은 분양 수수료도 10억 원이 넘었습니다. 이렇게 가족과 지인, 임원들이 받아 챙긴 분양 수수료가 111억 원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정상적인 급여와 수수료처럼 세탁된 회삿돈은 다시 오 회장의 계좌로 흘러 들어간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월급으로 일종의 '깡'을 한 겁니다. 이 가운데 120억 원가량은 외국 주식에 투자했다가 100억 원 가까이 날리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오 회장 측은 법정에서 그렇게 받은 돈 역시 대부분 다른 법인으로 투입해 공사나 수분양자 이자 지급에 활용했다고 주장합니다. 또, 사업 초기 자기 돈으로 미리 매입한 토지 비용 등을 돌려받은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금난은 근본적으로 1조 888억 원에 달하는 상가 미분양 탓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공사 진행을 위해 개인 재산, 그러니까 사재를 400억 넘게 투입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개인적인 재산도 모두 다 매각했어요."
"제 개인재산이나 마찬가진데, 저희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법인의 자산을 매각했습니다.)"
회장님의 옥중 편지 "경찰 관리해라"
이런 내용을 취재하던 중, 오 회장이 자필로 쓴 수십 장의 편지를 입수했습니다. 그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던 지난 2022년 상반기, 직원과 가족, 친지에게 보낸 옥중 편지입니다. 이 편지 안에는 수상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2022년 4월, 수많은 증인과 기록 탓에 재판이 길어지는 와중에 오 회장은 보석 석방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대구 검찰은 추가로 확인된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서도 추가로 기소해 구속기간을 연장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오 회장은 편지에서 "어떻게든 보석으로 나가야 하는데 검찰이 울산 건이나 물금 건을 수사해 추가로 기소하려 한다"며, "인맥을 동원해서 부장검사, 차장검사, 지검장 등 연결해 추가 기소를 막아라"라고 지시합니다. 직원뿐만 아니라 기업인인 동생과 공직자인 사촌에게도 이를 부탁했습니다. "사건을 기소한 검사는 젊어서 인맥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아예 윗선인 부장검사 라인의 전관 변호사가 있는지 찾아보라고도 지시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화강윤 기자 hwak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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