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수많은 트랙터가 프랑스 고속도로를 가로막은 이유는?

안혜민 기자 2024. 2. 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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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뉴스] 데이터로 보는 유럽 트랙터 시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일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 연휴입니다. 이번 설 연휴는 주말 이틀을 끼고 있어서 비교적 짧은 편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돌아온 연휴인지라 가슴이 선덕선덕하네요. 고향으로 내려가는 구독자, 집에서 휴식을 취할 구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번 주 마부뉴스는 해외 소식을 가지고 준비해 봤습니다. 아마 몇몇 독자 여러분 중에서는 뉴스를 통해 이 소식 들은 적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프랑스에서 농민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는 뉴스인데요, 뭐 프랑스야 워낙 시위와 데모가 일상인 나라이니 만큼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를 찬찬히 살펴보면, 생각보다는 복잡한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사실! 농민들의 시위 이면엔 어떤 진실이 감춰져 있는지 마부뉴스가 데이터로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부뉴스가 독자 여러분에게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겁니다.

수많은 트랙터가 프랑스 고속도로를 가로막은 이유는?

프랑스 트랙터 시위 타임라인

● 2024년 1월 18일 프랑스 농민, 고속도로 봉쇄 시작
● 2024년 1월 26일 아탈 총리 대책안 발표
● 2024년 1월 29일 프랑스 농민 조합, 파리 봉쇄 계획 발표
● 2024년 1월 31일 헝지스 시장 봉쇄 시도
● 2024년 2월 1일 농민 재정 지원 대책안 발표

간단히 시간대 별로 정리해 본 이번 프랑스 트랙터 시위의 상황입니다. 프랑스의 농민들이 고속도로를 봉쇄하기 시작한 건 지난달 18일부터였어요. 농민들은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작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농기계용 디젤 연료에 대해 유류세 인상안을 추진하고 있거든요. 정부 입장에선 탄소 배출량이 높은 디젤 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친환경 규제를 선택한 거였고요.

트랙터 시위에 나선 농민들의 요구사항은 모두 3가지였습니다. 당연히 먼저 유류세 인상을 폐지하라는 요구사항이 담겨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현재 농업을 하는 데 불필요하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관료주의적 규제도 없애주고, 전염병으로 폐사한 소에 대한 지원금도 늦지 않게 빨리 보장해 달라는 게 농민들의 요구였습니다.


위의 지도는 1월 23일의 프랑스 고속도로 상황입니다. 1월 18일 맨 처음 봉쇄가 시작되었던 곳은 A64 고속도로였어요. A64 고속도로는 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 레지옹의 고속도로입니다. 참고로 프랑스 본토는 13개의 레지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도 단위의 영역으로 이해하면 편합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프랑스 농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A64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남서부에서 시작된 도로 봉쇄가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었죠. 파리 북쪽의 A16, A29 고속도로에서도, 또 브르타뉴 레지옹(N12, N164)에서도 농민들의 시위가 진행됐습니다.

프랑스 정부에선 농민들의 카운터파트너로 가브리엘 아탈 총리를 내세웠습니다. 참고로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래 역대 최연소 총리인데, 1989년생으로 올해 34살이죠. 1월 26일 아탈 총리는 A64 고속도로를 봉쇄한 농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자리에서 유류세 인상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A64 고속도로를 봉쇄한 농민들은 아탈 총리의 제안을 듣고 봉쇄를 풀었지만, 다른 농민들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어요. 유류세 인상 계획 철회만으론 프랑스 농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 어려웠던 겁니다. 1월 29일, 프랑스의 농민 조합 2곳은 더 강력한 농민 지원 대책이 나오질 않는다면 파리를 무기한으로 봉쇄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31일엔 파리 농산물 유통의 핵심인 헝지스 시장 봉쇄에 들어갔죠.

농민들의 분노가 잦아들지 않자 결국 2월 1일, 프랑스 정부는 농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농민들을 위한 재정 지원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EU 기준보다 과도하게 적용하고 있는 환경 규제를 보류하고, 해외에서 들여오는 값싼 곡물 수입 문제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죠. 뿐만 아니라 농가의 소득을 보장해 주고, 축산 농가의 재정지원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 거기에 환경 규제까지?

프랑스는 비옥한 영토와 평탄한 지형을 바탕으로 전통적으로 유럽의 농업 강국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2021년 프랑스의 농업 부문 생산액은 82억 4,000만 유로로 유럽 국가들 중에 1위를 기록하고 있죠. 국토 절반이 농지에다가 기후 조건도 온화해 식량 자급률은 130%를 넘어서고 있어요.

하지만 농민들의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일단 농업 인구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유럽연합 통계국(Eurostat) 데이터를 살펴보면 1990년부터 2021년까지 프랑스 내 농업 인구는 4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그 규모가 줄어들고 있어요. (참고로 이 농업 인구에는 농작물뿐 아니라 동물성 제품 생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0년 125만 2,000명이었던 농민들은 1995년 100만 명 밑으로 떨어졌고, 2021년에는 절반 규모인 68만 8,0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농민들이 점차 줄어드는 이유는 물론 농사지어서 돈을 벌기가 점점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힘든 건 소규모 독립 농부들이죠. 수입이 충분치 않아서 생계유지가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생계가 힘들어 자살을 선택하는 농민들도 많습니다. 프랑스 보건 당국의 자료를 살펴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자살한 농부가 모두 985명. 전체 인구 자살률보다 농민들의 자살률이 22%나 높습니다.

농사로 돈을 벌기 점점 벌기 힘들어지는 이유, 프랑스 농민들은 그 첫 번째 이유로 환경 규제 정책을 이야기합니다. EU와 프랑스의 환경 기준이 강화되면서 농민들은 새로운 생산 방식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디젤 엔진 트랙터는 유류세가 더 들고, 친환경 공법을 활용하려면 돈이 더 들 수밖에 없죠.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다 보니 농민들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비싼 재생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니까 투입 비용이 계속 상승하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불공정 경쟁입니다. EU는 오래전부터 남아메리카의 경제 공동체 시장인 메르코수르와의 FTA를 진행 중이거든요. 여기서 들여올 남미의 농산물은 관세가 많이 붙지 않아서 싼 가격으로 수입될 예정입니다. 우크라이나 산 곡물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상대적으로 값싼 외국 곡물이 우르르 들어오면 프랑스 농민들 입장에선 가격경쟁력을 살릴 수가 없는 거죠. 게다가 들여올 해외 곡물에는 유럽에서 환경 규제로 금지된 농약이나 호르몬제를 활용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프랑스 농민들 입장에선 "왜 우리만 환경 규제를 받고, 우리만 비싸게 팔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큰 겁니다. 

친환경 정책의 역풍, 그린래시의 등장

유럽은 AI나 개인정보 등 다양한 영역에서 규제를 선제적으로 발표해 오고 있습니다. 환경 분야도 두말하면 잔소리죠. OECD가 전 세계의 환경 정책 정보를 모아두는 PINE(Policy Instruments for the environment)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모은 자료를 살펴보면 총 134개국의 4,105개의 환경 정책을 수집해 두고 있더라고요. OECD PINE이 모은 환경 정책 4,105개 중 국가 단위의 정책이 2,870개인데, 그중 1,753개가 유럽 국가의 환경 정책일 정도로 유럽은 기후 전환을 위한 정책을 주도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EU 차원의 '그린딜' 정책입니다. 그린딜은 2019년 12월에 발표된 유럽의 환경 정책인데, 2050년까지 EU 경제를 온실가스 배출 ZERO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목표가 담겨있어요. 전반적인 경제의 전환을 위해 EU에선 재생에너지를 신속하게 도입했고, 에너지 효율 등 관련된 환경 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작년 1월엔 산업분야에서도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한 '그린딜 산업계획'이 제안되기도 했습니다.


너무 빠른 속도에 대해 불만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그 불만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프랑스보다 먼저 독일에서도 1월 초에 10만 대의 트랙터가 모인 시위가 열리기도 했거든요. 프랑스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농가에 지원해 주던 디젤 연료 보조금 폐지에 불만을 가진 농민들이 들고일어난 거였고요. 농업뿐 아니라 자동차 등 산업 분야에서도 환경 전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급진적인 친환경 전환에 대한 반발, 이른바 그린래시(GreenLash)의 흐름이 등장한 겁니다. 녹색(Green) 전환에 대한 반발(BackLash)이 커지자 정치권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혜민 기자 hyemina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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