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지날 수 없는 대만해협·홍해·흑해… 도전받는 ‘바다의 룰’[Global Focus]
대만해협 ‘양안갈등’ 긴장 고조
美, 대만 최전선 진먼다오 주둔
홍해, 후티반군 이스라엘선 공격
흑해, 러·우크라 전쟁 격전지로
공해상 안전한 이동·무역 위협
해저가스관·케이블 손상 가능성
대만위기땐 세계GDP 5% 감소
英 싱크탱크 “잠재적 해전 대비”
‘어느 나라의 선박이든 공해(公海)를 항해할 수 있다’는 ‘항행의 자유’(Freedom of Navigation)는 17세기 이래 범세계적 규칙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 같은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609년. 국제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법학자 휴고 그로티우스(1583∼1645)가 독점적인 해양항행권과 통상권을 주장했던 포르투갈에 맞서 ‘바다는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기에 모두의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1878년 국제법상 ‘공해(해양) 자유의 원칙’이 확립됐고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된 이후 유엔해양법협약에 이 원칙이 들어가면서 완전히 법제화됐다. 이처럼 수백 년 동안 국제적 룰이었던 ‘항행의 자유’가 최근 들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대만해협에서의 갈등과 홍해에서 벌어지는 선박 공격 사태, 전쟁으로 인한 흑해 항로 봉쇄 등에 의해서다. 고요했던 전 세계 바다에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중국 인근 바다 곳곳이 전선(戰線)=지난달 13일 있었던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세 번째 연이어 집권한 이후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은 나날이 고조되고 있다. 두 세력이 부딪히는 최전선이 바로 대만해협이다. ‘하나의 중국’을 고수하는 중국은 지난달 30일 일방적으로 남북 항로 변경을 선언했다. 양안 절충 항로를 폐쇄하고 대만해협 중간선에서 불과 7.8㎞ 떨어진 남북 연결 M503 항로를 사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대만해협 중간선은 1954년 12월 미국과 대만 간 상호방위조약 체결 후 1955년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선언된 비공식 경계선이다. 이번 조치로 중국 민간항공기는 중간선에서 불과 7.8㎞ 떨어진 근접 비행을 하게 됐다.
이에 대만군을 지원하는 미군이 올해부터 대만의 대중국 최전선인 진먼다오(金門島)와 펑후다오(澎湖島)에 주둔할 예정이어서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더욱 치솟을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은 오는 3월에 열릴 예정인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이후부터 5월 20일 라이칭더(賴淸德) 총통의 취임식까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중국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에서도 일본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특히 일본이 대만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있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듯한 발언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무력시위를 하는데, 지난달 일본 자민당 부총재가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중국을 견제했을 때와 지난해 11월 일본·영국 회담에서 대만 문제와 홍콩 문제 등이 거론됐을 때 모두 센카쿠 열도에 해경 순시선을 보냈다. 중국은 필리핀과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잇달아 충돌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黃岩島)) 인근에서 필리핀 선박을 향해 물대포를 쏘기도 했다.
◇전쟁으로 신음하는 세계의 바다 =‘항행의 자유’에 대한 위협은 아시아 지역 해상만의 일은 아니다. 홍해는 예멘 후티 반군의 선박 공격 사태로 위태롭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을 비난하며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 관련 선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어 전쟁과 상관없는 다른 국적 선박도 공격 대상으로 삼으면서 주요 해상 수송로였던 홍해를 이용한 해상 무역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홍해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유럽과 인도양, 아시아를 연결하는 바다로 전 세계 해상 컨테이너 물동량의 약 30%, 상품 무역량의 약 12%가 지난다. 물류 정보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후티 반군의 공격 이후 지난해 12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유조선 숫자는 공격 이전보다 23% 줄었으며 LNG 운반선은 73%, LPG 운반선은 65%씩 감소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옥스퍼드대가 운영하는 운송 모니터링 플랫폼 포트워치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16일까지 수에즈 운하 전체 물동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나 줄었다.
우크라이나 곡물선이 지나던 흑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함과 기뢰의 격전지로 변했다. 우크라이나산 농산물뿐 아니라 러시아산 곡물·원유의 수출항로이자 카자흐스탄 원유가 유럽·아시아로 향하는 주요 뱃길이던 흑해가 포화 속에 갇히면서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은 먼 거리의 육로를 돌아 수출되고 있다.
◇요원해지는 항행의 자유 = 해상에서의 안전한 이동과 무역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원칙인 ‘항행의 자유’가 흔들리면서 경제적·사회적 피해가 적지 않다. 현재 무역량의 약 80%는 10만5000척의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화물선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해상무역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16%를 차지하는데, 블룸버그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대만 위기가 발생하면 해상 봉쇄 및 서방측 대응으로 세계 GDP가 5% 감소한다.
해양을 오가는 것은 선박들만이 아니다. 해저에는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파이프라인과 600여 개의 데이터 케이블이 매립돼 있다. 바다 곳곳이 위협에 처하면서 가스관과 케이블 훼손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잇는 해저 가스관과 통신케이블이 고의로 파손된 정황이 발견돼 러시아의 공격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세계의 바다가 다시 고요함을 되찾기는 요원해 보인다. 안전한 바다를 위해 각국이 협력했던 과거도 사라졌다. 2008년 소말리아 해적이 중국 선박 2척을 나포했을 때 미군이 나섰고, 러시아도 냉전 이후 미국과 협력해 북극해에서 핵폐기물을 제거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닉 차일즈는 “지금 우리는 잠재적 해상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로 회귀했다”며 “2차 세계대전의 길고 고요한 그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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