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신청 비용 300만원…돈 없으면 ‘빚 면책’ 못 받는 나라
금융복지상담센터·법률구조공단 적극 이용하세요
200만원에서 300만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한겨레 취재팀이 서울 서초동 법률사무소 4곳을 다니며 상담한 뒤 제안받은 개인파산 신청 법률대리 비용입니다. 한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은 이를 “리스크를 줄이는 금액”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리스크’란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파산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여지를 말합니다. “‘개인 맞춤형’으로 복잡한 절차를 완벽히 통과하려면 전문가의 도움을 거쳐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사무장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법률 서비스에는 비용이 필요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금액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이 다중채무로 인해 경제적 위기에 처한 파산 신청자라는 점입니다. 이들에게 200만~300만원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돈입니다. 취재팀과 동행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이형규(가명·38)씨는 당장 “돈 없는 사람은 파산도 못 하겠다”며 난색을 표했습니다.
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또다시 가족이나 지인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건설사 임원으로 지내다가 회사가 부도 나면서 큰 빚을 졌던 파산 신청자 임수동(가명·56)씨는 “아들이 새 출발을 해보라며 변호사 비용을 내줬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10월 파산 면책 결정을 받은 최지영(가명·62)씨도 친구의 카드로 파산 관련 변호사 수임료 250만원을 냈습니다. 최씨는 면책 결정 뒤에도 다달이 친구에게 돈을 갚고 있습니다.
법률사무소 통해 채권 조사 의뢰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는 파산 신청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파산을 하려면 신청서와 신청 이유를 담은 진술서, 채권자일람표, 수입 및 지출 등 여러 서류가 필요합니다. 이 서류에 담긴 정보는 금융기관 등에서 확인한 증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채무자는 정작 자신이 빚지고 있는 채권이 어디로 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실채권이 된 묵은 빚을 두고 금융기관이 추심회사 등 다른 곳에 팔아버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법률사무소를 통해 채권을 조사하는 업체 등에 의뢰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60대 이상 파산 급증
특히 파산 신청자 10명 가운데 8명 정도는 장년층과 노년층입니다. 서울회생법원의 2022년 개인파산사건 통계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파산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79%는 50~59살의 장년층(30.83%)과 60살 이상 노년층(48.08%)이었습니다. 60살 이상 파산 신청자의 비중은 2019년 37.21%에서 매년 급증해 2022년에는 절반에 가까울 정도가 됐습니다.
이는 높은 노인 빈곤율에서 기인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을 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66살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부동의 1위입니다.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습니다. 소득 빈곤율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입니다.
게다가 노인층으로 가기 직전인 50대 장년층의 파산 신청 비율이 높은 건 이들이 정년까지 일을 하지 못하면서도 위로는 노부모, 아래로는 자녀 등 이중돌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경제인협회 중장년내일센터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년 중장년 구직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중장년 구직자의 주된 직장 퇴직 연령은 평균 50.5살에 불과합니다. 퇴직 사유로 정년퇴직 비율은 9.7%에 그쳤고,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 등 비자발적 퇴직 비율이 56.5%로 훨씬 높았지요.
이에 50대 이상 장년층과 노년층은 자영업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3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비임금근로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60살 이상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는 260만7천명, 50~59살은 181만6천명으로 전년 같은 달에 견줘 각각 7만1천명, 6만2천명 늘었습니다. 반면 40대 이하에서는 모두 감소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에 이어 고금리 상황까지 겹쳐 경제적 어려움이 장년층과 노년층에게 집중되면서 파산 신청자가 늘어난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년에 가까울수록 채무조정제도를 잘 모르거나 법적 절차에 익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겨레가 찾은 법률사무소의 사무장도 대뜸 “파산 신청하실 분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60대 이상이면 혼자서는 신청하기 힘드실 거예요”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판사도 “더 빨리 파산 신청하시지 그랬습니까”
정부와 법원은 채무조정제도를 간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2년 11월 서울회생법원을 시작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나 고령자, 중증장애인 등 취약계층 채무자가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파산을 신청하면, 파산관재인 선임 등 절차 없이 파산 선고와 면책 결정을 하는 제도가 전국 법원에 도입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개인회생 신청자가 정보 제공에 동의하면, 법원이 신청자의 납세 증명서 등을 확인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각 지방자치단체 산하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잘 이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금융복지상담센터는 채무조정을 상담·지원하고 파산과 개인회생에 필요한 서류를 검토해줍니다.
최근 아내와 함께 파산 신청을 한 서규환(가명·58)씨는 지난해 성남금융복지상담센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업을 하던 서씨는 친형에 대한 연대보증채무가 감당할 수 없이 커지면서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전형적인 ‘가족 파산’ 사례이지요. “어머니가 형을 도와주라고 간곡하게 얘기하면서 식사도 안 해버리는데 어떤 자식이 외면할 수 있겠어요.”
서씨는 성남센터로부터 아내와 함께 파산 면책 결정을 무료로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서씨의 딸도 성남센터를 통해 개인회생을 신청했습니다. “잠도 안 자고 같이 고민하면서 파산 과정을 도와준 게 너무 고맙죠. 판사까지도 재판할 때 ‘왜 더 빨리 파산 신청을 안 했느냐’고 하더라고요. 이제 저는 다시 살아갈 희망이 보여요.”
하지만 아쉽게도 성남센터는 지난해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중복 사업이라는 이유로 예산 지원이 중단됐습니다. 성남센터는 개소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5만6674명이 이용하고 3만1천명이 상담을 받았습니다. 성남센터가 문을 닫으면서 7일 현재 전국에는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를 비롯한 13곳의 금융복지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빚진 사람은 죄인이 아닙니다
법무부 산하 법률구조공단에서도 개인파산이나 개인회생 관련 무료 법률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단,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125% 이하 채무자’라는 자격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만약 ‘중위소득 75% 이하 채무자’라면 법원의 소송구조제도를 이용해 인지대·송달료, 변호사비 등의 납부 유예나 면제가 가능하다는 사실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채무자들이 이런 제도를 맘껏 이용하려면 사회적 편견이 사라져야 합니다. 빚을 진 사람들을 죄인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한 사회에서는 채무자들이 이런 제도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빚을 진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라 이웃입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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