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여성도 군대 가라’가 낫다 [뉴스룸에서]
서보미 | 프로덕트서비스부장
한때는 군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군대에 가고 싶었고, 그 길에 들어섰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그 길을 돌아 나왔습니다.
여성이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성평등한 삶을 살기 위해선 남성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그때는 생각했습니다. 똑같은 조건에서 남성과 겨루기도 하고, 어울리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착각이었습니다. 군대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폭력적이었고, 여성에게 차별적으로 더 그랬습니다. “넌 여성이 아니라 사관생도”라고 말로만 강조했습니다. 여성이라서 특별대우 받거나 배제됐습니다. 남성 동기들은 그들대로 차별받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래도 여성이라서 군인이 되지 않겠단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29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여성과 병역의무를 기이하게 조합한 총선 공약 때문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경찰, 해양경찰, 소방, 교정 직렬에서 신규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성과 여성에 관계없이 병역을 수행할 것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30년부터는 여성도 일반 병사(1년6개월)로 군 복무를 해야 4개 직렬 공무원에 응시할 자격을 주겠단 것이었습니다. 현재 징병 대상이 아닌 여성은 군인이 되려면 간부(장교·부사관)에 지원해야 합니다.
이 제도의 목적은 병역자원 확보라고 했습니다. 저출생에 따라 남성 병역자원이 급격하게 줄고 있으니 여성 병역자원이 더 필요해졌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대표는 ‘남녀 갈라치기’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어떤 부분이 갈라치기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전제부터 의도가 명확합니다. 이 대표는 병역의무를 “지금까지 대한민국 시민의 절반가량, 즉 한쪽 성별만 부담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남성의 박탈감을 부추기고, 여성을 이등시민으로 깎아내릴 의도가 아니라면 필요 없는 표현입니다.
그의 속마음이 뭐든 간에 ‘여성희망복무제’는 여성에게 불리하게 설계됐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제시됐듯 지난해 하반기 경기 북부지역 순경 공채에서 남성의 경쟁률은 24.3 대 1, 여성의 경쟁률은 57.7 대 1입니다. 공약이 현실이 되면 여성은 경찰이 되기 위해 무조건 군대에 가야 합니다. 이미 필요조건을 충족한 남성과 출발선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경찰의 꿈을 접어야 하는 여성이 생길 수 있습니다. 위헌 가능성도 있습니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군필자란 응시자격 제한을 둔 경찰 채용 시험이 평등권 침해라며 개선 권고를 내렸고, 경찰도 이를 수용했습니다. 앞서 공무원 시험에서 군필자에게 추가 점수를 주는 군가산점제가 여성·장애인 등의 평등권·공무담임권(국민이 공무를 담당할 권리)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져 2001년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여성 병역자원을 늘리는 현실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지금도 군 간부가 되려는 여성들도 차고 넘칩니다. 초급장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 인기가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한 여성 경쟁률은 66.8 대 1, 공군사관학교는 47.7 대 1에 이릅니다. 남성 경쟁률과 비교가 안 되게 높습니다. 하지만 사관학교는 신입생 중 12~15%만 여성에게 할당하고 있습니다. 부사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군이 여성을 제한적으로 뽑은 결과, 현재 군 간부 중 여성 비율은 8.8%에 불과합니다.
이 대표가 국가안보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군인이 되려는 여성에게 기회의 문을 활짝 열자고 주장해야 합니다. 여성 군인이 원하는 병과에서 차별 없이, 안전하게 복무할 수 있는 시스템과 환경을 만들자고 제안해야 합니다. 군인이 되길 원하는 여성은 군대에 가지도, 남지도 못하게 하면서 다른 공무원을 희망하는 여성을 강제 입대시키는 방식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2021년에도 이 대표는 여성희망복무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여성이 일반 병사에 지원하든 말든, 그 제도를 구실로 남성의 군 복무를 보상하는 제도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솔직하게 20대 남성을 공략한 그때가 낫습니다. 그러니 어설프게 여성과 희망을 엮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은 정치적 노림수가 뻔하고, 여성을 도구화하는 복무제를 희망한 적이 없습니다. 차라리 ‘여성도 다 군대에 가라’는 말을 듣는 게 속이 편하겠습니다.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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