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도 파산자 위한 ‘판셈’…아프면 병원 가듯, 빚 많으면 법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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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빚은 갚아야지.' '어딘가에 재산을 빼돌렸을 것이다.'
"금융 시장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채무 부담을 지면 삶의 질이 상당히 안 좋아진다. 이때 채무 부담을 덜어줘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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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조정·탕감 ‘금융복지’로 규정해야
‘그래도 빚은 갚아야지.’ ‘어딘가에 재산을 빼돌렸을 것이다.’
채무자는 벼랑 끝에 서 있음에도 이런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 등 도산 사건을 총괄하는 안병욱 서울회생법원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빚을 조정하고 탕감하는 일을 ‘금융 복지’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아가는” 행위에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파산한 사람에게는 ‘경제적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금융 시장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채무 부담을 지면 삶의 질이 상당히 안 좋아진다. 이때 채무 부담을 덜어줘서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 병원을 찾아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다.”
―빚이 많은 사람에게 빚을 줄여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빚이 많은 사람은 경제 활동을 하면 그 돈으로 빚 갚는 데만 쓰게 된다. 수중에 돈이 안 들어오기 때문에 경제 활동을 결국 포기한다. 빚을 줄여주거나 파산 면책을 받으면 다시 경제 활동의 주체로 복귀한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제도가 존재했다. 함무라비 법전에도 채무자와 그 가족이 3년의 노역 기간을 채우면 남은 채무를 면제하는 제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판셈’이라는 파산 제도가 있다. 채무자의 모든 재산을 내놓고 채권자들이 셈을 해서 가져간다.”
―파산 신청자가 개인 재산을 빼돌린다는 시선이 있다. 법원의 눈을 속이기 쉬운 건가?
“파산 신청을 하면 파산 관재인이 재산 처분과 사용처, 예금과 인출을 모두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 소명을 요구한다. 숨기기 어렵다고 보면 된다.”
―비용과 절차를 고민하는 채무자가 많다.
“서울회생법원이 운영하는 뉴스타트 상담센터 등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개인회생과 파산을 신청할 수 있다. 앞으로는 채무자가 각 금융기관에 방문해서 서류를 발급받는 일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원이 한국신용정보원과 협력할 예정이다.”
―빚이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
“마음고생하다가 늦게 파산을 신청해서 고생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병도 늦게 병원에 오면 더 고치기 어려울 수 있지 않나. 제2금융권에 가거나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하기보다는 빚이 많아지면 바로 (채무조정 절차에) 들어오면 좋겠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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