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불과 1년여 만에 과거로 퇴보한 한국 축구 [아시안컵 초점]

이한주 MK스포츠 기자(dl22386502@maekyung.com) 2024. 2.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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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라이얀의 기적’이 불과 1년여 만에 ‘알 라이얀 참사’로 바뀌었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에서 지난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회 이후 12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2002, 2010, 2022) 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냈던 태극 전사들은 약 1년 뒤 ‘약속의 땅’이라 불렸던 카타르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7일(이하 한국시각) 카타르 알 라이얀의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카타르 2023 요르단과 준결승전에서 졸전 끝에 0-2로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한국은 대회 여정을 여기에서 마치게 됐다.

너무나 참담한 결과였다. 이번 아시안컵 목표로 지난 1960 대회 이후 64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1956, 1960) 우승을 목표로 내건 한국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비롯해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재성(FSV 마인츠 05),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홍현석(KAA 헨트) 등 역대 초호화 멤버들로 대표팀을 꾸렸다. 이들은 모두 유럽 리그에서 정상급 기량을 선보이고 있던 선수들이었다.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자신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준 클린스만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아시안컵을 통해 클린스만은 사령탑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사진(알 라이얀 카타르)AFPBBNews=News1
그럼에도 FIFA 랭킹 23위 한국은 이번 대회 내내 본인들보다 랭킹이 낮은 국가들을 상대로 단 한 차례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E조 조별리그 1차전이었던 바레인(3-1 승)과의 경기를 제외하면 정규시간 내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이마저도 멀티골을 작렬시킨 이강인의 개인 기량으로 나온 결과물이었다. 6경기 동안 내준 상대방에게 내준 점수는 무려 10실점에 달한다.

불행 중 다행인지 토너먼트 들어 8강전까지 ‘해줘 축구’와 행운에 힘입어 여정을 이어가던 클린스만호. 이들의 민낯은 요르단과 준결승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시종일관 끌려다닌 끝에 후반 9분과 후반 21분 각각 야잔 알 나이마트, 무사 알 타마리에게 연달아 실점하며 0-2 패배를 피하지 못했다. 한국이 요르단에게 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슈팅 수(7-17), 유효 슈팅 수(0-7) 등 경기 내용 면에서도 요르단에게 처참히 짓밟혔다. 조현우(울산 HD)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이 아니었으면 대량 실점도 충분히 나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시계를 약 1년여 전으로 돌려보자.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현 아랍 에미리트(UAE) 감독이 이끌었던 한국은 당시 펼쳐진 카타르월드컵에서 결코 약 팀이 아니었다. 우루과이, 포르투갈 등 세계 축구의 강호들을 상대로도 중원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고, 그 결과 16강 진출이라는 값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결코 약 팀이 아니었던 한국. 사진=AFPBBNews=News1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벤투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하지만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4년 간 함께했던 벤투 감독과 결별한 대한축구협회는 새 사령탑을 물색했고, 클린스만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클린스만 감독의 선수 경력은 화려함 그 자체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3회 연속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에 출전했으며 1996년에는 독일의 우승을 이끌었다. 월드컵에도 1990년 이탈리아 대회를 시작으로 1994년 미국 대회, 1998년 프랑스 대회까지 3회 연속 나섰으며 특히 1990년 대회에서는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로서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독일 감독 시절이던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3위에 올랐고, 미국 사령탑으로 2013 골드컵 우승 및 2014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으나, 거기까지였다.

이후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클린스만 감독은 2019년 독일 분데스리가 헤르타 베를린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77일 만에 SNS를 통해 사임을 알렸다.

한국 대표팀을 맡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비판이 끊이지 않자 마이클 뮐러(독일)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확고한 답변을 주지 못해 윗선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만 키웠다. 벤투 감독을 선임했을 당시 김판곤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현재 말레이시아 감독)의 체계적이고 투명했던 절차와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한국 사령탑에 부임하고 나서도 문제는 계속됐다. 무엇보다 본인이 추구하는 축구가 없었다. 기자들의 이 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오히려 “어떤 축구를 원하느냐”고 되물어보기도 했다. 사령탑의 소신이 없자 자연스레 대표팀 경기력은 떨어져 갔으며, 지난해 3월 부임한 클린스만 감독은 그해 9월 유럽 원정 두 번째 A매치였던 사우디아라비아전(1-0 승)에서야 가까스로 첫 승을 신고할 수 있었다.

무능하면 열심히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글로벌 스포츠 매체 ESPN의 패널 활동에 힘썼다. 인재를 찾기 위해 K리그를 ‘직관’하는 클린스만 감독의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쓴 맛을 본 한국 축구. 사진(알 라이얀 카타르)AFPBBNews=News1
체계화 돼 있던 감독 선임 시스템을 스스로 무너뜨린 대한축구협회와 사령탑의 무능 및 무책임까지.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부하던 한국 축구는 그렇게 점차 발톱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 사우디전부터 아시안컵 전까지 꾸준히 승리를 거뒀으나, 모두 약 팀(튀니지, 베트남, 싱가포르, 중국, 이라크)들을 상대한 결과였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1년여 전 영광을 누렸던 알 라이얀에서 말 그대로 ‘참사’를 겪게 됐다.

다만 아쉬움에 손을 놓고 주저 않아 있을 시간은 없다. 우리는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그동안 축구 변방으로 취급 받던 아시아 국가들의 가파른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들은 수비에만 치중하고, 앞서기 시작하면 일단 드러눕기 시작하는 과거에서 벗어나 능동적이고 강력한 전방 압박으로 한국을 괴롭혔다. 더 이상 퇴보된다면 아시아에서조차 위상이 밀릴 수 있다. 규모가 크든 작든 무조건 변화가 필요한 가운데 결정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한편 클린스만 감독과 일부 국내파 선수들은 오늘(8일) 오후 9시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할 예정이다.

오늘 귀국하는 클린스만 감독은 과연 어떤 변명을 꺼낼까.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이한주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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