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 서바이벌 ] 초속 25m 게릴라 돌풍 살아남은 텐트는?
백패킹 성지가 텐트 무덤이 되었다. 백패커들은 혼비백산해 일부 장비만 겨우 챙겨 산을 도망쳐 나왔다. 지난 12월 15~16일, 바람이 심하기로 유명한 선자령에 풍속 25~28m/s의 돌풍이 들이닥쳤다. 마침 백패커가 많은 금요일, 새벽 2시를 넘은 시간에 폭격하듯 몰아쳤다. 20동 이상의 텐트 중 일부는 바람에 찢어지거나 폴대가 부러졌다. 거대한 자연의 힘에 밀려 인간의 장비로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선자령은 백패킹 입문 코스로 불린다. 그만큼 산행이 쉽고, 야영의 매력을 100%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완만한 임도와 산길을 따라 7km를 걸으면 선자령 정상에 닿는다. 정상 부근은 일명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초원 지대다. 시야가 트여 있어, 멋진 해돋이와 해넘이를 즐길 수 있는 백패킹 명소다.
선자령에서 살아남는 텐트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선자령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도 무사한 텐트를 찾는 '선자령 텐트 서바이벌 게임'을 열었다. 야영 마니아들도 움츠러드는 겨울이고, 평일이라 많은 백패커들이 참여하지는 못했다. 커플 1팀 포함 기자까지 5명이 출전해 4동의 텐트가 참여했다.
대회가 아닌 게임인 만큼 별도의 규정 없이 진행했다. 다만 바람의 언덕으로 불리는 야영 터 20m 이내에 텐트를 설치해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려 노력했다. 다양한 텐트 평가를 위해, 브랜드가 같은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텐트를 빌려 진행했다. 4동 각각 다른 브랜드다.
스노우피크 '팔FAL 프로 에어2'
텐트 소개
빠르고, 가볍다. 1.7kg 더블월으로 완전한 동계용 텐트다. 이너텐트가 플라이에 결속된 일체형이라 설치가 빠르다. 바람에 강한 방향으로 텐트를 설치해 이점을 활용할 수 있다.
제조국
일본
사이즈
길이 210×폭 130×높이 100cm
무게
1,710g(본체와 프레임만)
수용 인원
2명
스타일
자립형 더블월
소재
프레임 듀랄루민. 플라이&시트 20D실리콘 폴리에스테르 미니 립스톱(PU코팅) 내수압 1,500mm. 이너 20D폴리에스테르 미니 립스톱. 내수압 최소 1,500mm
인터넷 판매가격
73만 원
백패커 방준식
직장인이자 등산 유튜버(산의 위로)로 활동하고 있다. 남성 등산 유튜버가 구독자수 1만 명을 넘기는 쉽지 않은데 구독자 1만9,000명에 이른다. 그의 영상은 산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데 집중한다. 등산 장비를 소개하고 비평하는 유튜버들이 많지만, 그는 산을 보여 주는 데 주력한다. 감탄사가 절로 나는 드론 촬영과 깔끔한 편집이 장기. 잔잔한 기교보다는 산에 집중하는 성향이다.
힐레베르그 '알락2'
텐트 소개: 무거운 것 빼고는 최고의 텐트. 바람에 강해서 선자령에서도 살아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전실도 양쪽으로 넓은 공간이 있어서 장비를 두기 편하다. 단점은 가격이 비싸다는 것과 성인 남자 두 명이 쓰기는 조금 좁다는 것.
제조국
스웨덴
사이즈
길이 230× 폭 170× 높이 105cm
무게
2.8kg(본체와 프레임만)
수용 인원
2명.
스타일
자립형 더블월
소재
이너 30D 립스톱 나일론, 아우터 30D 고강도 립스톱 나일론66, 프레임 두랄루민
인터넷 판매가격
186만 원
백패커 김태욱·윤소영
네팔 임자체(6,189m) 정상을 다녀온 고산등반 커플이다. 김태욱씨는 산의 매력에 빠져 국내외 산을 넘나들며 오르는 성장하는 고산등반가이며, 윤소영씨(@san_100.doran)는 팔로워 2만6,000명을 가진 SNS 인플루언서다. 선남선녀 아웃도어 커플인 셈.
블랙다이아몬드 '피츠로이'
텐트 소개: 평소 힐레베르그 '니악'을 즐겨 쓰는데, 브랜드가 겹쳐 피츠로이를 빌리게 되었다. 무게는 단점이지만, 겨울산에서 안전을 생각하면 단점이 아니다. 처음 사용해서 그런지 텐트 설치가 까다롭다. 하지만 알파인 텐트란 말이 아깝지 않다. 밝은 색깔과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지금 구입하려 검색하고 있다.
제조국
미국
사이즈
길이 236× 폭 152× 높이 114cm
무게
2.8kg(본체와 프레임만)
수용 인원
3명.
스타일
싱글월 자립형
소재
원단 토드텍스, 폴대 듀랄루민
인터넷 판매가격
120만 원대
백패커 민미정
1년 5개월간 21kg 배낭을 메고, 세계 트레킹 여행을 했다. 전체 일정의 7할을 텐트 치고 야영한 골수 백패커. SNS 상에서 '프로 노숙러(노숙 전문가)'라 불리며, 본지에 '낭만 야영' 코너를 연재하고 있다. 현재 피엘라벤 롯데백화점 동탄점 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제로그램 '엘찰텐'
텐트 소개: 8년쯤 된 초기 엘찰텐이다. 당시 토종 백패킹 브랜드의 출현에 기대가 상당히 컸다. 한국인의 아이디어와 기술력, 한국 산꾼의 경험이 바탕이 된 국산 텐트였다. 엘찰텐은 숱한 산에서 안락한 잠자리를 내어줬다. 다른 브랜드의 텐트도 있었지만, 설치가 쉽고 손에 익은 엘찰텐을 주로 썼다.
제조국
한국
사이즈
길이 210× 폭 130× 높이 100cm
무게
1.6kg(본체와 프레임만)
수용 인원
2명.
스타일
더블월 자립형
소재
이너 15D 통기성 발수 가공, 플라이 15D 립스톱 나일론, PU코팅 내수압 3,000 이상
인터넷 판매가격
2023년형 기준 67만 원
백패커 신준범
2006년 한북정맥을 취재산행해 기사로 소개하고 GPS지도집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의 등고선 한북정맥 등산지도집. '신산경표 특집'과 '백패킹스쿨', '북한산 드라마' 등을 썼으며 백두대간을 취재산행하여 2년간 기사로 소개한바 있다. 월간山 100대 명산 등산지도집인 <99즐산> 수록 산을 선정했다.
진행 과정
텐트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들은 1월 8일 대관령휴게소에서 만났다. 2주 전에 정해진 날짜는 일기예보를 고려하기보다는 평일 중 참여자들의 가능한 시간을 맞췄다. 정밀한 테스트가 아니었기에 '바람이 없는 날씨라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었으나, 막강한 추위와 바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선자령이 '월간산 텐트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하겠다'고 마음먹은 듯 영하 13℃의 기온과 풍속 8m/s가 예보되었다. 대관령 기준의 예보였기에 선자령 능선은 더 혹독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민미정 사진가가 촬영하며 느긋하게 산길을 걸어, 오후 4시 바람의 언덕에 닿았다. 다른 야영객은 아무도 없었고, 맞바람이 부는 설사면에 각자 텐트를 쳤다. 저녁 식사를 위해 쉘터를 설치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 저녁 6시를 넘어서자 어둠과 함께 맹수 같은 돌풍이 몰아쳤다.
바람에 취약한 쉘터 특성상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펄럭였다. 저녁 7시 30분에 쉘터를 철수하고 각자 텐트로 돌아갔으나, 서바이벌 게임 첫 번째 탈락 텐트가 나왔다. 나머지 텐트들로 야영이 진행되었고, 저녁 8시 30분경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이 갈수록 거세져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마치 장정 여럿이 밖에서 텐트를 붙잡고 미친 듯이 흔드는 것마냥 바람이 텐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날씨와 바람 예보 앱인 '윈디'에 따르면 이날 밤 12시 기준 풍속 8m/s이고 최대 돌풍은 25m/s였다. 다행히 새벽 4시를 넘어서며 바람이 잦아들었다.
텐트 서바이벌 게임 결과
1위 - 블랙다이아몬드 '피츠로이'
강풍에서 가장 안정감 있었다. 전쟁터의 막강한 탱크처럼, 총알로는 흠집도 낼 수 없다며 든든하게 버텼다. 특수 원단인 토드텍스 특성상 결로를 머금게 되어 있어, 아침에 침낭에 떨어진 물기가 없었다. 텐트가 바람에 휘거나 펄럭이는 현상도 가장 적어 비교적 조용하고 안정적인 내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다만 여러 번 사용해 익숙한 사람도 강풍 속에서 이 텐트를 설치하기는 쉽지 않다.
공동 2위 - 힐레베르그 '알락2'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강인함은 갖추었으나, 완벽함은 부족했다. 원단이 찢어지거나 폴대가 부러지지는 않았으나 바람이 텐트를 덮칠 때 펄럭이는 소리가 너무 심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자는 사람도 깰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결로 역시 거의 없어, 사용성은 명불허전이었다.
공동 2위 - 스노우피크 '팔 프로 에어2'
단순한 X프레임 형태라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바람에 누울 수는 있어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과 강성을 지녀, 아침까지 거뜬히 버텼다. 텐트 해체 후에도 폴대는 휘어짐 없이 멀쩡했다. 결로 없이 쾌적한 환경이었으나,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는 기술력의 부재라기보다는 텐트 자체가 가진 한계성이었다.
4위 - 제로그램 '엘찰텐'
텐트 설치 후 바람에 거의 바닥에 닿을 듯 휘더니, 결국 얼마 안 가 폴대가 "뚝"하고 부러졌다. 믿었던 DAC 폴대였으나 돌풍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텐트 폴은 전혀 이상이 없는 상태였다. 변론하자면 제작 연식이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과, 다른 텐트와 비교했을 때 가장 저렴한 제품이라는 것. 국산의 선전을 기대했지만, 가격에 따른 제품 성능 차이가 있음을 실감했다.
월간산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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