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종언의 시대…결호없이 25년 지켜낸 힘
중심에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6000명 넘는 필자들의 글 잡지에 담아
주요 이슈마다 토론과 회의의 場 역할
2040년 9월20일, 1000호까지 펴낼 것
출판전문 격주간지 ‘기획회의’가 최근 통권 600호를 맞았다. 1999년 2월 첫 호를 낸 이래 25년 동안 단 한 번의 결호 없이 이뤄낸 결실이다. 2010년 창간한 월간지 ‘학교도서관저널’도 14년째 발행해오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신촌역 인근 옛 거구장(케이터틀)에서는 출판인 200여명이 모여 이날을 기념했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은 기획회의에 대해 “우리 사회의 자산”이라고 했고, 조동욱 도마뱀출판사 발행인은 “출판인의 스승 역할이자, 토론과 회의의 장”이라고 평했다.
`기획회의` 국내 출판 역사의 흐름
격주간지 ‘기획회의’는 한 소장이 1999년 2월 창간한 출판 전문잡지다. 지난 25년간 발행하며 국내 출판 시장의 역사 흐름을 담았다. 애초 ‘송인소식’ 무가지로 출발했다가 2004년 7월 유가지로 전환하면서 기획회의로 제호를 바꿨다.
한기호 소장은 “25년 동안 무수한 위기가 있었다”면서도 “잡지는 담론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대적 소명이 확실한 잡지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한 소장은 “그동안 6000명 이상의 필자들이 이 잡지에 글을 썼다”며 출판계 욕쟁이 할머니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출판업계에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공론의 장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 비판할 일엔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면서 “출판계 ‘모두까기’나 ‘트러블메이커’란 별명을 달고 살았지만 그만둘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책은 하나의 플랫폼…상상력의 근원
‘기획회의’는 여전히 제 역할을 해오고 있다. 출판계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도, 기획·편집자의 고민을 공유하고 함께 모색해나간다.
600호 특집호는 출판마케팅을 주제로 스무 명의 출판 관계자들로부터 글을 받아 전 지면을 채웠다. ‘어떻게가 아니라, 누구를 묻는 마케팅으로’(윤성훈 클레이하우스 대표), ‘이 책은 왜 읽어야 하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이연실 어크로스 마케팅부 부장), ‘왜 우리는 연대해야 하는가’(조동욱 도마뱀출판사 발행인) 등 출판계 종사자들이 요즘 고민하는 내용들을 세심하게 담아냈다. 현장의 출판인들과 출판 담론을 구축해 온 이 잡지의 강점이 발휘된 기획이다.
최근 일본을 방문해 현지 출판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온 그는 게임·애니메이션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고단샤 등 일본 3대 출판사 사례를 들며 ‘새로운 발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책은 이제 하나의 플랫폼이고, 이를 웹·모바일·영상·게임·애니메이션 등과 연결하는 ‘트랜스미디어’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소장은 “출판의 시스템은 급격하게 계속 변할 것”이라며 “아날로그(종이책)는 ‘디지털’을 이용해 변신하는 것이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의 일환으로, 600호 이후 ‘기획회의’는 로컬(지역) 담론을 본격화한다. 21세기 가장 큰 화두인 인구소멸과 기후 위기, 불평등을 해소할 실마리가 로컬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601호에서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인구문제와 불평등 등의 사회문제에 대한 해법으로서의 ‘로컬’을 탐구한다. 한국에서 로컬 담론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살펴보고, 콘텐츠 중심으로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는 로컬의 현재를 조명한다.
한 소장은 기획회의 500호 이후부터 편집자와 편집위원들에게 전권을 위임한 뒤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결정권을 넘겨주고 그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도 잡지가 버티는 이유”라며 “젊은 필자의 상상력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1000호까지 낼 계획입니다. 1000호 발행일은 2040년 9월 20일로 살아 있다면 팔순이 지난 다음이죠. 그때까지 살아 있지 못하면 누군가가 나를 이어 약속을 지켜줄 것이라 믿어요.”
김미경 (midor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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