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지는 광장을 구원했나?

한겨레 2024. 2. 8.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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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는 유명한 광장이 많다.

로마 성베드로 광장, 베니스 산마르코광장, 파리 콩코드광장처럼 그 도시하면 바로 연상되는 장소는 하나 같이 광장이다.

그러나 녹지 공간의 대표적 단점인 야간 공동화, 장애인 통행 불편성, 특정기후(우천)와 계절(장마철·겨울) 진입 불가 같은 특성이 광장이라는 비가변적 도시공간에 적합한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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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조감도. 서울시 제공

[크리틱] 임우진ㅣ프랑스 국립 건축가

유럽에는 유명한 광장이 많다. 로마 성베드로 광장, 베니스 산마르코광장, 파리 콩코드광장처럼 그 도시하면 바로 연상되는 장소는 하나 같이 광장이다. 유럽을 방문한 한국인이 유독 강한 인상을 받는 곳도 광장이다. 노천카페와 사람들이 가득한 인간적 분위기를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우리의 광장은 유럽과 다르게 텅 비어있거나 시위나 집회에만 활용될까?

먼저 도시환경 차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길에서 뒤로 물려 건물을 짓는 우리에 비해, 유럽은 건물을 길 쪽으로 바짝 붙이고 옆 건물과도 붙여(합벽) 짓는다. 유럽 광장이 구심력과 활력이 가득한 도시적 원인은 주변 건물이 광장을 밀집되게 둘러싸고, 건물들의 상부층 발코니와 지상층 상업공간을 통해 건물이 광장과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반면, 건물 앞 주차공간과 조경공간으로 도로에서 뒤로 물러나고, 옆 건물과도 간격을 두고 건물을 짓는 우리 도시에는 광장으로의 구심력과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시끄러운 차도가 둘러쌓거나 인접해 있어 광장의 산만한 성격은 강화된다.

이런 도시 맥락적 차이에도, 광장에 사람이 모이고 머무르는 ‘정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빗발치자 도시 전문가와 당국은 해결책을 내놔야 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2002년 월드컵이었다. 시위나 집회가 아닌, 행복한 순간을 함께 공유했던 공동체적 경험은 대중의 기억에 각인되었고 한국인은 그렇게 광장이라는 가치에 눈뜬다. 대중의 갈증을 눈치챈 당국은 결국 서울시청 앞에 도심광장을 만들기로 한다. 공모전을 통해 ‘빛의 광장’이란 안이 당선되었는데 2천개의 모니터를 바닥에 설치하는 혁신적인 제안에 각계의 걱정과 비판이 쏟아지자, 당시 ‘불도저’란 별명을 가졌던 시장은 일언지하에 당선작을 취소하고 간단하게 잔디를 까는 것으로 세계 유일의 녹지광장을 개장한다. 우천 시 출입 불가에 잔디보호를 핑계로 집회를 불허할 수 있는 점은 알리지 않은 채로.

이른바 ‘국가중심공간’을 표방한 광화문광장은 육조거리, 세종로를 거쳐 광장이 됐다. 넓은 공간에 비해 그늘(쉼터)과 시민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당국은 각종 테마정원과 광장숲을 조성하고 광장 한중간에는 잔디를 깔았다. 사람 없는 회색 광장을 구원하려 등장한 녹지화는 어느새 당국의 만능‘치트키’가 된다. 휑한 돌바닥보다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잔디밭과 조경수는 서서히 도시광장을 잠식한다.

그나마 몇개의 광장이라도 있는 강북에 비해 강남은 놀라울 정도로 공공공간 광장의 불모지다. 신도시 강남의 도시적 단점을 해결할 기대주로 ‘영동대로 광장’이 계획 중이다. 삼성역과 봉은사역 사이 영동대로 600미터 길이의 지하에 지하도와 교통환승센터를 설치하고, 지상을 대규모 ‘녹지광장’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대의 녹지화된 광장이 생겨날 예정이다.

서울은 공원과 녹지가 부족하기로 악명 높은 도시다. 그나마 있는 공공공간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아 녹지공간을 늘린다는 큰 방향에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녹지 공간의 대표적 단점인 야간 공동화, 장애인 통행 불편성, 특정기후(우천)와 계절(장마철·겨울) 진입 불가 같은 특성이 광장이라는 비가변적 도시공간에 적합한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원은 시민의 휴식공간이고 광장은 만남과 교류의 공간이다. 주말장은 비가 와도 열린다. 공원은 부족하지만, 광장은 이 도시에 전무하다시피 하다. 부족함이 전무함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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