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왜 재야? 죄야!" 조용필 발음 퇴짜 놓은 이 사람이 쓴 '히트곡 뒷얘기'
수필집 '그 겨울의 찻집'...음악사 결정적 순간 생생
1982년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 서른둘이던 조용필은무려 한 시간 동안 종이 한 장을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그와 비슷한 또래인 작사가 양인자가 써서 건넨 노랫말이었다. 서로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 두 사람 사이에 이어진 오랜 침묵. 커피는 차갑게 식어갔다. 양인자는 잔뜩 긴장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 매니저가 들어오자 조용필은 부리나케 일어섰다. "예감이 좋아요. 금방 (곡이) 만들어질 것 같네요." 종이를 흔들어 보이며 조용필은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히트곡을 낸 조용필·양인자 '음악 콤비'의 첫 만남 풍경이다. 둘을 소개해 준 건 조용필의 명곡 '창 밖의 여자'(1980) 노랫말을 쓴 배명숙 작사가. 합석과 짧은 대화로 어색하게 끝난 첫 자리에서 웃음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계산대 앞에서 바지 주머니를 뒤지던 조용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는 찻값을 낼 돈이 없었다.당시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던 '청춘스타'가 찻값 치를 돈도 없다니. 바쁜 일정에 치여 쫓기듯 약속 장소에 찾아오느라 지갑도 챙기지 못한 눈치였다. "찻값을 제가 냈죠. '찻값도 없는 조용필씨 괜찮은데요?'라고 한 뒤예요, 하하하."
3일 전화로 만난 양인자(79)의 말이다. 조용필이 "금방 나올 거 같다"던 이 노래는 결국 3년 뒤에야 세상에 나왔다. '허공' 등과 함께 조용필 8집(1985)에 실린 '내 가슴에 내리는 비'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외로움도 주지 않았는데 오늘 내 가슴에 쏟아지는 비 누구의 눈물이 비 되어 쏟아지나..."
"찻값 없는 조용필씨 괜찮은데요?"
혜은이의 '열정'부터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Q'를 비롯해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 그리고 김국환의 '타타타'까지. 수많은 히트곡의 노랫말을 40여 년 동안 써온 양인자가 곡에 얽힌 뒷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그 겨울의 찻집'을 최근 냈다. 책엔 대중음악사의 명곡들이 탄생한 결정적 순간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양인자와 조용필과의 합작에 늘 낭만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1985년 경기 벽재에 있던 지구레코드사 녹음실. 양인자는 조용필이 '그 겨울의 찻집'을 부를 때 화가 나 녹음실을 나가 버렸다. 사연은 이랬다. "아름다운 재~" "아니 재가 아니고 죄!" 조용필의 '재' 발음이 거슬린 양인자는 녹음실 밖에서 계속 발음 수정을 요구했다. 성질이 나서였을까. 조용필은 대놓고 "재"라고 불렀다. 가수와 작사가는 신경전을 벌였다. "그 대단한 양반(조용필)한테 발음 지적했다고 주위에서 뭐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땐 나도 대단했거든요(웃음). 그렇게 집으로 와 버렸죠. 돌이켜보면 조용필씨가 맞는 것 같아요. 사랑은 아름다운 죄가 아니라 세월의 먼지처럼 날아가는 재일 뿐이잖아요." 나중에 조용필은 '죄'에 가깝게 발음하려고 노력하면서 녹음을 마쳤다.
조용필은 양인자에게 '음악 실험 동지'였다. 1960년대 한국 정부가 일제 강제 노역에 대한 피해 보상 명목으로 일본 정부에서 돈을 받자 대학생들이 대대적으로 시위를 했고 그때 쓴 글을 토대로 양인자는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1989)을 작사했다. 이 곡의 재생 시간은 19분 56초. 청춘의 방황과 슬픔이 가득 밴 이 곡을 조용필은 11집 B면에 통째로 실었다. "조용필씨가 담배를 피우며 노랫말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라고요. 조용필씨도 나도 그땐 새로운 걸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거든요."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한다'고 '빨간 딱지'
검열이 기세등등하던 시절, 곡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넘어야 할 걸림돌도 많았다. 양인자가 가사를 쓰고 문주란이 부른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1989)는 처음엔 '정말 좋겠네'로 제목과 노랫말이 바뀌어 나왔다. "여성의 입장만 주장하는 편파적인 시각"이란 이유로 방송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정보부장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증발'(1994)에서 그가 노랫말을 쓴 삽입곡은 실리지 못할 뻔했다.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노제 장면에 쓰일 곡이었는데 이 장면이 마지막 편집에서 통째로 잘렸기 때문이다. 그룹 코리아나의 보컬 이애숙이 부른 노래는 결국 영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흘렀다.
노랫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 마련. 권태수·김세화가 1979년 부른 '작은 연인들'은 20여 년이 흘러 2절이 새로 생겼다. '향수'를 부른 이동원이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는 노랫말이 이산가족 얘기 같다고 해 양인자는 원래 가사에 '살'을 붙였다.
이선희가 부른 '알고 싶어요'는 부부인 양인자와 작곡가 김희갑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사랑의 오작교'였다.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양인자가 노랫말을 쓴 이 곡의 악보를 김희갑은 책상 서랍에 묵혀 뒀다. "이선희에게 한 번만 불러보게 하자"는 양인자의 제안에 곡이 뒤늦게 '임자'를 만났다. 김희갑은 이 곡을 세상에 내놓지 않으려 했다. "(양인자가) 나한테 하는 얘기 같아 쑥스럽고 부끄러워서"였다. 이 사연이 알려지면서 둘은 열애설에 휘말렸고 1987년 결혼했다. "그땐 '웬 김칫국?' 싶었죠. 내 손에 '떡'은 들려 있었지만."
김수현과 선·후배... '인생은 미완성' 소환 해프닝
양인자는 부산여중 3학년 때 숙제로 쓴 소설 '돌아온 미소'로 국어 선생님 추천을 받아 고1 때인 1961년 책을 냈다. 일찌감치 글로 주목받은 그는 대학 졸업 후 '여학생' 잡지사에서 글을 썼다. 회사 선배는 '드라마 작가의 대모' 김수현. 양인자에게 김수현은 "안목도 그렇고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았지만 한편으론 좀 무서운 선배"였다. 김수현의 글은 회사에서 신랄하기로 유명했다. 그에게 "'시한폭탄'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그랬던 김수현은 양인자가 노랫말을 지은 '타타타'를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에 갖다 써 신드롬을 일으켰다. "김수현씨가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듣고 운전하던 동생한테 '이 노래 좀 찾아달라'고 했나 봐요. 누가 부른 노래인지, 누가 쓴 곡인지도 모른 채요. 동생이 음반 가게에 가서 '인생이 어쩌고 하는 노래'라고 하니 주인이 이진관씨가 부른 '인생은 미완성' 음반을 줬대요. 김수현씨가 '이 노래 아니다'라고 '노래 속에 허허 웃는 거'라고 해 동생이 다시 가게로 찾아갔고요. 그렇게 김국환씨 CD를 받아 대본과 같이 MBC에 넘겼다더라고요." '타타타'(산스크리트어로 '있는 그대로의 것'이란 뜻)는 양인자가 참선에 푹 빠져 공부하고 있을 때 쓴 노래다.
아이돌에 가사 보여줬더니
양인자는 서민의 희로애락이 담긴 노랫말로 대중음악의 저변을 넓힌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보관문화훈장(3급)을 받았다. 양인자가 자신이 썼다는 걸 숨기고 한 아이돌 가수에 노랫말을 보여줬더니 "요즘 이렇게 쓰면 아무도 안 불러요"란 반응이 돌아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그는 계속 노랫말을 쓴다. 김혜영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사랑도 쓸모없네' 가사도 그가 썼다. "그대 정녕 나를 모르시오"란 노랫말로 시작하는 가사를 양인자는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남편을 떠올리며 지었다. 경기 소재 실버타운에서 사는 양인자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인생은 내 편'이란 문구를 걸어놨다. 양인자가 지은 노래 제목이기도 한 '열정'은 그가 품고 사는 삶의 신조다.
"사랑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을 갖고 살고 싶어요. 맥 빠지고 기운 없을 때 이 노래를 듣고 힘을 얻죠. '지금도 '열정'으로 살 수 있을 거야'란 생각을 하면서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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