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성혐오 범죄는 테러로 불리지 않는가?
스물네 살 백인 남성 ‘알렉스’는 모태솔로다. 보디빌딩 유튜브와 비디오게임 관련 포럼을 즐겨 본다. 특권을 누린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은 없다. 자신이 특권층이란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우연히 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접하게 되었다. 수십만 조회수에 달하는 게시물들은 저마다 말한다. 모든 혜택을 누리는 건 여자들이고 진짜 피해자는 남자들이다, 당신은 잘못이 없다, 그러니 여성폭력 방지법을 폐지해야 한다….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알렉스는 안도감마저 든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점점 몰입되고 주장은 더 과격해졌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알렉스는 가상 인물이다. 영국의 여성인권 운동가인 로라 베이츠 작가가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30여 곳에 알렉스라는 아이디로 1년간 잠복했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일이 오프라인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추적하기 위해서다. 몇 년간 성평등 강연을 다니며 ‘뭔가 달라졌다’고 느끼던 차였다. 서로 만나본 적도 없는 소년들이 정확히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똑같이 틀린 통계를 인용했다. ‘성별 임금격차는 거짓말이다’ ‘남성이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같은 얘기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주장이 유명 정치인의 입에서도 나왔을 때 그는 짐작했다. 온라인은 더 이상 사소한 공간이 아니라고.
베이츠 작가는 2012년 ‘일상 속 성차별’이라는 페이지를 열어 여성들의 성차별 증언 수십만 건을 공론화한 활동가다. 이제는 세계 25개국에 지부를 둔 대형 프로젝트가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을 확산시킨 주역인 온라인은 이제 거대한 백래시의 통로가 된 듯하다.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문제의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전작 〈일상 속 성차별〉 〈목록〉 등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신간 〈인셀 테러〉는 남성 가해자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원제는 ‘여성을 증오하는 남자들(Men who hate Woman)’이다.
“남성 폭력에 대한 논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가해자를 대화에서 지워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1월15일 〈시사IN〉과 나눈 서면 인터뷰에서 베이츠 작가는 ‘불편함을 직시하자’고 했다. “우리 사회는 매년 강간당하는 여성의 숫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강간하는 남성의 숫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매우 불편해한다. 가해자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환해야만 피해자를 비난하는 대신 예방에 집중할 수 있다.” 여성폭력 범죄에 대해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보다는 그저 ‘미친놈의 행각’으로 묘사되고, 소셜미디어상의 괴롭힘이 방치되는 현상은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었다.
위장 잠입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저자는 극단적 여성혐오의 배양실을 목격했다. 강간 합법화를 주장하는 인셀 커뮤니티부터 성폭력을 가르치는 픽업 아티스트(이성을 유혹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이들), 반페미니즘의 선봉장에 선 남성 권리 운동가까지, 극소수의 괴짜들 모임일 거라는 예상은 엇나갔다. 회원 수만 명, 게시물 수백만 건을 보유한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 수천 개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 커뮤니티에서는 여자 휴머노이드(Female Humanoid)의 약칭 ‘포이드(Foid)’라는 은어를 썼는데, 여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인간적이라며 여성 대신 사용하는 말이었다. 회원가입을 위해 은어를 확인할 때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은 조용히 성장한다”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를 뜻하는 ‘인셀’은 원래 1990년대 한 캐나다 여성이 만든 웹사이트의 이름이었다. 각자의 좌절감을 공유하며 서로를 다독이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30년이 지나자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들이 상주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SNS로 확증편향에 빠질 위험은 누구에게나 있는데, 왜 여성혐오 정서가 이토록 극단화된 걸까. 베이츠 작가는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의 다양성 부족 문제를 언급했다. “백인 남성 중산층 중심의 인력 구조가 소셜미디어 알고리즘과 플랫폼 설계에 영향을 미쳤고, 의도치 않게 극단주의를 확산시켰다.” 알렉스처럼 남성의 고립감은 커뮤니티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일종의 놀이문화가 아닐까? 소수의 목소리가 그저 과잉 대표된 것이라면? 베이츠 작가는 이를 ‘위험한 현실 안주’라 지적한다. 인셀 커뮤니티의 극단주의가 오프라인에서 대규모 여성혐오 폭력을 저지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5월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대학생 엘리엇 로저는 여성들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아 응징하겠다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6명을 살해하고 14명에게 상해를 입혔다. 그 후로도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었다(책에 언급된 사례만 12건이다). 범인들은 하나같이 로저를 ‘엘리트’ ‘신에 가까운 인물’로 칭송했고 SNS엔 인셀에 대한 언급과 밈으로 가득했다.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가 테러리즘의 발상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베이츠 작가가 제기하는 근본적 의문은 ‘왜 온라인상의 여성혐오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떤 무슬림 공격자가 길 가던 백인을 차로 덮치면 언론 보도와 정치 논평가들은 즉각 우리에게 경보를 울리고, ‘테러’라는 단어가 재빨리 신문 1면을 장식하며, 살인범의 이데올로기와 온라인 행적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낱낱이 까발려진다. 남성이 노골적인 여성혐오 때문에 살인을 저지를 때는 이렇지 않다. 그러는 동안 인셀 커뮤니티는 조용히 성장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충원하며, 승리에 도취한다.” 베이츠 작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테러리즘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성 대상 폭력이 산발적이고 꾸준히 발생하는데도 ‘혐오’는 여전히 의제화되지 못한다. 최근 한국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다. 부산 서면에서 30대 남성이 귀가하던 여성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쫓아간 뒤 무차별 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9월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8월17일 서울 관악구의 한 등산로에서 생면부지의 여성을 성폭행하려고 폭행해 살해한 최윤종은 최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11월4일 경남 진주에서는 편의점에서 일하던 20대 여성이 ‘머리가 짧다’ ‘페미니스트니까 맞아야 한다’는 이유로 20대 남성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런 가운데 현 정부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한국의 사례를 전해들은 베이츠 작가는 영국에서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답했다. “여성혐오를 증오범죄로 기록하자는 운동이 진행되어왔지만 거부와 조롱을 받았다. 두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행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중요하지 않으며,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한다는 것이다.”
극우가 채택한 새로운 ‘모집 전술’
성차별을 부정하고 반페미니즘 여론을 퍼트리는 정치인의 존재는 ‘인셀 테러(여성혐오 극단주의)’의 또 다른 축이다. “한국과 영국 두 나라 모두 2010년대 들어 페미니즘 운동이 크게 확산했고 미투 운동이 이어지면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정치인과 유명 인사들이 보수적 남성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것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인셀과 극우 정치세력 사이엔 엄청난 교차점이 생겼다.” 여성혐오가 극우가 채택한 새로운 ‘모집 전술’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더 이상 이런 집단들을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 집단으로 조명하면 오히려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하게 되는 건 아닐까. 베이츠 작가 본인도 고민했던 지점이다. “이러한 집단과 개인을 신과 같은 인물로 격상시키는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교육자, 정치인, 경찰 등이 극단적 여성혐오 단체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이들에게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다. 단체와 네트워크의 존재를 정확하게 보도해야 한다.” 〈인셀 테러〉에서는 온라인 커뮤니티 내 혐오 표현들을 그대로 싣되, 커뮤니티의 이름은 일일이 거론하지 않았다. 트래픽이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책이 나온 후 끝모를 위협에 놓였다. 수많은 욕설과 분노 섞인 메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경찰이 자택에 경보기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살해와 강간 위협을 겪었다. 변화도 있었다. 인셀 커뮤니티에서 6년간 활동하다가 작별을 고한 한 남성은 그에게 말했다. “이제는 길거리에 있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취약한 상태에 있는 불행한 남자들이, 최대한 많은 파괴를 자행하겠다고 벼르는 남자들과 긴밀하게 뒤섞이는 공간이었다. 베이츠 작가는 젊은 남성을 고립시키는 성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정신건강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바뀔 것 같지 않던 현실 가운데서도 드물게 희망을 본 순간도 있다. 그가 강연차 방문했던 한 학교에서다. 학교는 성적 괴롭힘에 맞서는 조치로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분위기는 적대적이었으나 남학생들의 노골적인 반발이 줄어들었다. 페미니즘 모임이 두 배로 커졌고 허심탄회한 토론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중요한 건 혐오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태도라고 베이츠 작가는 말한다. 끝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당부했다. “포기하지 말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발에 직면하여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반발은 우리가 진전을 이룰 때만 오는 것이니 계속 나아가시길.”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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