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불편한 언론을 위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2024. 2. 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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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불편한 언론

심석태 지음, 나녹 펴냄

“언론은 누구에게나 좀 불편한 소리를 하기 마련이다.”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언론은 어떤 정파를 어느 정도 강도로 지지하느냐가 매체의 생사를 가르는 지경으로 몰려 있다. 언론인은 ‘관찰자’ ‘감시자’가 아니라 ‘직접 선수’로 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언론을 지지하고 반대 언론을 공격한다. 정치권은 이런 상황을 적극 활용한다. 결국 한 언론만 읽어서는 객관적 사실이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언론은 한 정파에는 친근하지만 다른 정파에는 불편한, 그런 존재로 전락했다. SBS 기자 출신인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한국 언론의 고질적 정파성 문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언론을 둘러싼 각 주체들이 ‘모두에게 불편한 언론’을 실천하고 존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논의하자고 주장한다.

난임과 유산에 대처하는 심리 가이드

에이미 웬젤 지음, 이승재 외 옮김, 심심 펴냄

“아이를 낳기 위해 입원한 병원을 아이 없이 나서는 일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유산과 거듭된 임신 실패는 깊은 상실과 고통을 남긴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밀한 사람을 잃었을 때와 달리 이들에게 닥친 심리적 어려움은 별다른 조력을 받지 못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직장을 다니고, 가정이 있으면 아내로, 딸로, 며느리로서 역할도 해야 한다. 저자는 미국에서 ‘임신 관련 트라우마’를 전문으로 다루는 몇 안 되는 임상심리학자이다. 난임과 유산을 겪은 이들이 마음의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을 10단계에 걸쳐 상세히 소개한다. 유산·난임 우울증에 대한 국내의 인식은 더욱 척박하다. 국가 난임·우울증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등이 내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자료를 찾으려는 노력 끝에 이 책을 번역하게 됐다.

뭉우리돌의 들녘

김동우 지음, 수오서재 펴냄

“기억의 단절은 그걸로 진실의 소멸을 의미한다. 이것이 망각의 무서움이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뭉우리돌의 정신을 품겠다”라던 독립운동가 김구의 말에 착안했다. 사진작가인 저자는 2017년부터 “뭉우리돌처럼” 굳건히 박혀 독립운동에 생을 바친 이들을 직접 찾아다닌다. 그의 말처럼 기억은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실핏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 경제적 풍요는 그냥 오지 않았다는 저자의 사유가 사진만큼이나 강렬하다. 러시아 연해주부터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펼쳐진 독립운동의 터전 앞에서 저자가 찾아낸 ‘기억’들은 희미해져가는 역사를 잇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한국인은 누구인가를 되짚게 하는 사료다.

바다의 제왕

대나 스타프 지음, 박유진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오징어는 이마뿔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현존하는 두족류는 오징어와 문어 정도다.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저자는 열 살 때 대왕문어의 일렁이는 피부, 꿈틀거리는 팔, 친밀감 드는 눈을 본 뒤로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중고로 해수 어항을 구했다. 학교에서는 ‘문어 키우는 여자애’로 알려지게 됐다. 아무리 탐독해도 두족류에 대한 정보는 해양생물 관련 서적에서 한두 페이지면 끝이 났다. 갈증이 갈망을, 갈망은 집착을, 집착은 훌륭한 연구서가 됐다. 〈바다의 제왕〉은 아름다운 바다 생물의 존엄에 대한 기록이자, 이들의 힘찬 생명력과 신비한 역사를 담은 성찬이다. 책을 덮을 때쯤 이 말에 동의하게 될 수도 있다. “앵무조개가 사라지면 아무도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를 만든 나날, 역사와 기억 1

이용재 외 11명 지음, 푸른역사 펴냄

“잔(다르크)의 기억이 공식적으로 소생한 것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집권기였다.”

14세기 초반, 프랑스 국왕은 성직자들에게 재산세를 부과하려 했으나 로마 교황청의 거센 반대로 마찰을 빚는다. 당시 새로 취임한 프랑스 국가 재상은 ‘아나니’라는 지역에 머물던 교황을 구금한 뒤 뺨을 때리며 사퇴를 요구한다. 이 책은 투박한 해프닝 같은 사건(아나니 폭거)을, ‘프랑스를 만든 나날’ 중 하나로 꼽는다. 아나니 폭거를 전후해서 ‘조국애’ 같은 말이 등장하며 프랑스라는 ‘국가 정체성’이 부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프랑스 사학자인 저자들은 로마령 갈리아에서 절대왕정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 프랑스 역사를 굵직한 18개 사건을 중심으로 한눈에 펼쳐낸다. 서양인이 아니라 한국인이 서술했다는 점이 이 책의 가독성을 더 강화해준다. 한국인 저자들이, 서양의 고대 및 중세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맥락의 난점’을 잘 알고 설명해준다.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

김동현 지음, 부키 펴냄

“도대체 우리가 왜 한국을 지켜줘야 돼? 우리는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어.”

이른바 586 세대가 반독재‧반미 투쟁을 전개하는 가운데, 미국은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두고 있으며 여기에서 엄청난 국가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위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미국은 절대로 한국을 중국과 러시아·일본의 틈바구니에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므로. 그 윗세대는 미국이 ‘선의’만으로 한국을 일방적으로 지원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엄청나게 달라졌고, 최근 국제정세는 한국을 주도하는 세대의 미국에 대한 인식에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 파병 군인 출신이며 미국 국영방송 미국의소리(VOA) 펜타곤 출입기자 경력을 가진 저자는 인도·태평양 세계라는 구도에서 훨씬 냉정하고 무서운, 한‧미 관계에 대한 비전을 한국인 시각에서 보여준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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