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 두 번하면 다 뛰겠네ㅋㅋ' 정말 그럴까…KBO의 미래? MLB는 이렇게 변했다

신원철 기자 2024. 2. 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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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에서 스피드업을 위해 도입한 피치클락.
▲ 허구연 총재는 직접 피치클락과 ABS(자동 볼 판정) 점검에 나섰다. ⓒ KBO

[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규칙을 바꿨더니, 야구가 달라졌다. KBO가 메이저리그의 변화를 받아들인 새 규칙 도입을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알던 야구와 다른 모습이 될까 우려하는 선수들, 팬들도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완벽하게 연착륙했다. KBO리그에서도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MLB.com은 정규시즌 종료를 열흘 앞둔 지난해 9월 29일 새 규칙으로 인한 변화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경기 시간 단축 외에 선수들이 어떻게 이 규칙에 적응했는지 또 리그 환경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경기 시간이 줄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이번 메이저리그 규칙 개정은 단순히 전체 시간을 줄이겠다는 일차원적 목표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피치클락을 통해 '경기의 템포를 빠르게 하고', 시프트 제한과 더 커진 베이스로 '더 많은 움직임을 유도한다'가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목표였다. 시간 단축, 인플레이 타율 상승, 단타와 도루의 증가는 그 결과다. 같거나 비슷한 규칙을 적용한 KBO리그에서도 앞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 피치클락의 효과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비교 영상. 마이너리그 사례에서는 1분 19초 안에 5구를 던져 타석이 끝났다. 같은 시간 메이저리그의 사례에서는 같은 시간 4구째를 던질 준비를 하고 있다.

#투수들은 피치클락을 이용했다

경기 시간이 줄어든 것은 맞는데 후반에는 다시 길어졌다. 9이닝당 경기 시간은 개막 후 첫 3주 동안 2시간 38분이었는데 9월 29일 전 3주 동안은 2시간 44분으로 늘었다. MLB.com은 이를 선수들이 피치클락 활용에 눈을 뜬 결과라고 봤다. 피치클락에 쫓겨 급하게 던지기보다 마운드에서 발을 빼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로 나왔다. 그러나 2시간 44분조차 1986년 이후 가장 짧은 시간이다. (안타와 볼넷, 홈런이 모두 늘어났는데도)피치클락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투수나 타자나 난리가 날 것이라는 부정적 예상과 달리 피치클락 위반은 시간이 지나며 차차 줄어들었다. 경기당 위반이 첫 100경기에서는 0.87회, 9월 29일 전 100경기에서는 0.34회로 나타났다. 100경기씩 구간으로 끊어봤을 때 최소 0.24회, 4경기에 1번까지 줄어들어 선수들이 금방 적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체 경기의 3분의 2에서 피치클락 위반 사례가 없었다. 100구 이상 던진 투수의 49%, 100구 이상 상대한 타자의 68%가 피치클락 위반 없이 시즌을 보냈다.

15초/20초의 제약이 선수들을 크게 압박하지도 않았다. 9월 29일 시점에서 투수들이 투구를 시작한 시점(=피치클락이 꺼지는 시점)은 주자 없을 때 6.5초, 주자 있을 때 7.3초 전이었다. 공을 받고 나서 약 8.5초/12.7초 안에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렇게 투수들은 자연스럽게 더 빠른 템포로 공을 던지는데 익숙해졌다. 전체 위반 사례의 71.1%는 투수와 포수 쪽에서 저질렀고, 타자는 28.9%로 적었다.

피치클락 끝내기 사실은…

지난해 2월 26일(한국시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시범경기가 6-6 동점에서 '피치클락 끝내기'로 승패를 가리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홈팀 애틀랜타가 2사 만루 기회를 얻은 상황이었는데 피치클락 위반에 의한 자동 스트라이크가 삼진아웃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해프닝은 '피치클락 적응의 어려움'과는 거리가 있는 일이다. 메이저리그 시범경기지만 이 상황에 개입된 선수들은 모두 마이너리거였다.

이 사례를 보면서 경기가 이렇게 끝나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이 경우를 들어 '선수들도 혼란스럽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타석에 있던 타자도, 마운드에 있던 투수와 홈플레이트 뒤 포수도 모두 빅리그 경험이 전혀 없는 마이너리거다. 마이너리그에서 피치클락 시대의 야구를 충분히 경험하고 시범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피치클락 자체가 낯설어서가 아니라 포수의 위치 때문에 시간이 가기 시작됐는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보스턴 투수 로버트 크윗코스키, 애틀랜타 2루수 칼 콘리는 피치클락에 따라 20초가 지나 자동 볼이 선언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투수 크윗코스키와 타자 콘리는 포수 엘리 마레로에 시선을 빼앗겨 피치클락을 놓쳤다. 마레로가 서서 사인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 그 이유다.

타석에 있던 콘리는 포수가 서있는 것을 보고 피치클락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크윗코스키는 20초가 다 지났나 싶어 볼인 줄 알았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포수는 타이머가 9초를 지나기 전에 정위치에 있으면 된다. 자세는 상관 없다"고 설명했다.

▲ 피치클락 시스템 도입은 메이저리그 경기 시간 단축에 공을 세웠다

가장 민감한 대목은 역시 피치클락과 부상의 관계다. 피치클락 시대 투수들의 부상이 전부 시간의 압박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고, 반대로 시간 제한과 무관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만큼 찬반 주장 모두 치열하게 대립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MLB.com은 2022년 대비 선수들의 부상자명단 등재 일수는 투수 타자 모두 줄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디애슬레틱, 팬그래프닷컴에서도 이 문제를 섣불리 단정하지 못한다.

투수들의 체력에는 악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선발투수의 평균 투구 수는 2022년 85.2구, 2023년 85.6구였다. 중간값도 2022년 89구, 2023년 90구로 큰 차이가 없다. 평균 아웃 생산은 2022년 15.7개에서 2023년 15.5개로 소폭 감소했으나 중간값은 16개로 같았다. 5이닝 이상 투구하는 선발투수의 비율은 2022년 70.0%, 2023년 70.6%로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 요약

피치클락은 경기 시간 감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부정적인 예상과 달리 선수들은 빠르게 적응했고 나아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피치클락이 더 많은 부상으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혹은 그렇지 않다는 근거도) 뚜렷하지 않았다.

▲ 김하성은 지난해 무려 38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자유를 찾은 주자들, 그런데 의외의 결과도?

경기 시간 다음으로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던 쪽은 역시 도루다. 경기당 도루 시도는 2022년 1.4회에서 2023년 1.8회로 늘었다. 성공률 80.4%는 단일 시즌 최고 기록이다. 또 견제 제한 규칙으로 인해 경기당 견제는 종전 6.0개에서 지난해 4.9개로 줄어들었다.

견제에 제약이 있지만 그렇다고 주자가 마음대로 리드 폭을 넓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견제아웃(픽오프)이 예년보다 늘어났다. 베이스볼레퍼런스에 따르면 견제아웃(견제 후 도루 실패 포함)은 지난해 341회로 나타났다. 2022년과 2021년은 각각 275회,(단축 시즌인 2020년은 제외하고) 2019년은 322회였다. MLB.com은 이 현상을 "견제 제한으로 몇몇 주자들이 지나치게 과감해졌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은 MLB.com이 뽑은 견제 제한 규칙의 이득을 가장 많이 본 주자로 꼽혔다. 도루가 2022년 12개에서 지난해 38개로 3배 이상 늘었다. 견제는 65번 받았다. 이외에도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니코 호너(시카고 컵스), 윗 메리필드(토론토 블루제이스), 트레이 터너(필라델피아 필리스) 등이 전년 대비 도루가 많이 늘어난 규칙 개정의 도움을 받은 주자로 언급됐다. 그래도 김하성만큼 1년 만에 도루가 3배나 늘어난 선수는 없었다. 플레이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봐도 될 정도다.

흥미로운 사실은 두 번째 견제 후, 즉 투수가 마지막 한 번의 견제 기회만 남겨둔 상황에서의 도루 성공률은 78.0%로 견제를 하나도 하지 않았을 때의 80.6%보다 낮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견제 제한은 투수들에게 확실히 각인된 것 같다. 세 번째 견제 시도에서 아웃을 잡지 못해 보크를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KBO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 메릴 켈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가장 많은 3번의 견제 초과 보크를 기록했다. 알렉스 콥(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과 아담 오타비노(뉴욕 메츠)가 각각 2번으로 그 뒤를 이었다. 조 머스그로브(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 셰인 비버(클리블랜드 가디언스) 등 14명이 각각 1번의 견제 초과 보크를 저질렀다. 총 21번이다. 두 차례 발을 푼 뒤 마지막 시도에 나서는 경우 자체가 많지 않았다. MLB.com은 이런 상황이 경기당 0.1회 미만이었다고 설명했다.

- 요약

견제 제한, 베이스 크기 확대의 영향으로 지난해 메이저리그 도루 성공률은 80.4%로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경기당 견제는 감소했지만, 견제아웃은 늘었다. 두 번째 견제 후의 도루 성공률은 오히려 감소했다.

▲ 왼손타자 코리 시거는 2022년 0.245에 그쳤던 타율을 지난해 0.327까지 끌어올렸다.

#시프트 제한에 웃은 왼손타자들

시프트 제한은 예상대로 왼손타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리그 전체의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은 2022년 0.290에서 2023년 0.297로 올랐다. 왼손타자의 경우 0.283에서 0.295로 상승했다. 당겨친 땅볼, 라인드라이브 타구의 인플레이 타구 또한 올라가는 효과로 나타났다. 대신 시프트 제한 규칙은 거의 모든 팀이 완벽하게 준수했다. 지난해 시프트 제한 규칙 위반 사례는 단 3번에 불과했다. MLB.com은 "직접 봤다면 복권을 사보시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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