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진 “작은형 49재 날 큰형 사망, 아직 살아있는 느낌” 눈물(살림남2)[어제TV]

이하나 2024. 2. 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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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캡처)
(사진=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캡처)
(사진=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캡처)

[뉴스엔 이하나 기자]

가수 박서진이 49일 차이로 세상을 떠난 두 형을 향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렸다.

2월 7일 방송된 KBS 2TV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에는 박서진이 15년 만에 작은형의 49재를 지냈던 절을 찾았다.

설을 앞두고 고향 사천시로 온 박서진은 여동생과 함께 시장을 찾았다. 박서진은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인 요청을 받았고, 박서진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한 상인은 박서진을 유난히 반가워했다. 박서진은 “옛날에 엄마가 여기서 가게를 하셨다. 어릴 때 많이 뵀던 분들이 계셔서 반가워하셨다”라고 전했다.

과거 박서진과 이웃이었던 할아버지는 ‘박효빈’이라는 박서진의 본명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개명 이유에 대해 박서진은 “절에 갔더니 ‘효’자가 기운이 안 좋아서 가수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빈’자가 네 앞길을 막는다고 했다. 작명소에서 이름을 바꾼 게 박서진이다. 바꾸고 나서부터 잘 될 거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집에 돌아온 박서진은 잔소리하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부모님을 위해 처음으로 직접 떡국을 만들었다. 박서진을 챙기라는 부모님의 특명을 받고 오빠 집으로 왔던 여동생은 박서진이 여자친구가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영상을 보던 MC들은 연애 생각이 없냐고 질문했고, 박서진은 “지금에서야 연애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며 이상형을 김신으로 꼽았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동생은 부모님이 처음 만났을 때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는 이혼 후 7년간 아들 셋을 홀로 키우다가 선에서 어머니를 만났다고 답했다. 박서진은 “부모님이 각각 이혼의 아픔을 겪고 나서 재혼을 하셨는데 두 분 사이에서 저랑 동생이 태어났다”라고 설명했다.

어머니는 “아빠가 선을 36번을 봤는데 그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아빠 자식을 안 키워줄 거라고 했다더라”고 말했다. 이에 아버지는 “다 봤는데 자기 자식만 키우고 내 자식은 버리려고 했다. 여자가 돈이 많고 뭐해도 다 싫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네 엄마 선을 보러 갔다. 내 자식이 있는데 ‘나는 내 자식부터 먼저 키워야 한다’라고 했다. 네 오빠들을 키워주겠다고 해서 엄마에게 빠졌다”라고 전했다.

그때부터 박서진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1, 2, 4학년 삼형제를 키우게 됐다. 박서진은 “부모님이 재혼한 걸 언제 알게 됐냐면 형들이 죽었을 때다. 엄마가 엄청 펑펑 울었다. 당연히 엄마 자식이니까 슬퍼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형이 죽고 어떤 여자분이 찾아왔는데 형들의 친엄마였다. 그래서 엄마가 친자식이 아닌 형들을 셋이 키웠는데 저렇게 슬퍼한 거라는 걸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친 박서진은 바람을 쐬고 오겠다고 집을 나선 뒤 작은 형 49재를 지낸 절을 찾았다. 앞서 박서진은 “형들 두 명이 49일 간격으로 죽었다. 큰형이 간 이식 부작용으로 죽었고 작은형은 만성 신부전증으로 죽었다”라고 가정사를 공개했다.

박서진은 “부모님이랑 떡국을 먹다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나더라. ‘형들이 살아 있었으면 내가 만든 떡국을 같이 먹었을 텐데’하는 그리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생. 잘했네, 기특하네. 잘 만들었네’라면서 토닥여 주지 않았을까”라며 “작은형이 죽고 나서 당시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서 49재 이후로 처음 갔다. 15년 만에 처음 간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박서진은 작은형의 49재를 지내준 스님을 만났다. 갑자기 큰형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와 둘이 49재에 참석했던 기억을 떠올린 박서진은 “하필 작은형 49재 당일에 큰형이 하늘나라로 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가 못 오셨다”라고 설명했다. 박서진은 당시 상처를 떠올리며 스튜디오에서 눈물을 보였다.

박서진은스님에게 “사람이 죽은지 10년이 됐는데 아직 형들이 살아 있는 느낌이 있다.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구나”라고 형들을 향한 그리움을 털어놨다.

박서진이 15세 때 큰형은 27세, 작은형은 23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박서진은 뱃일을 하는 부모님 대신 형들이 자신을 키워줬다고 전했다. 박서진은 “큰형은 아빠처럼 묵묵히, 말 그대로 경상도 남자였다. 작은형은 엄마 같은 남자였다 집 청소도 요리도 작은형이 다 하고. 동생이 가수가 꿈인 걸 아니까 옷도 형이 다 다려주고. ‘전국노래자랑’ 참가 신청도 형이 해주고 예심에 같이 따라가 주고 같이 기다려 주고. 계속 그리울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뉴스엔 이하나 blis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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