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딜 왜 깨졌나... “지분 매각 제한은 구실일 뿐, 애초부터 하림 맘에 안들었을 것”

노자운 기자 2024. 2.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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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서울 여의도 HMM 본사 모습. /연합뉴스

국적선사 HMM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매각 주체인 KDB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하림그룹·JKL파트너스 간 협상이 결렬되면서다.

이번 딜이 깨진 ‘표면적’ 이유는 JKL이다. 양측이 다른 조건들에는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지분 5년 의무 보유’ 대상에서 재무적투자자(FI)인 JKL을 제외해 달라는 하림 측 요청을 해진공이 받아들이지 않아 협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단독] 산은, HMM 인수 후보들에 5년 내 지분 매각 불가 걸었더니... 하림 “JKL은 빼달라”)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진짜 걸림돌이 따로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6조4000억원의 인수대금 중 JKL이 조달하기로 했던 돈은 최대 7500억원에 불과했다. 여차하면 하림이 다른 파트너를 구해오면 되는데, 굳이 협상 결렬까지 간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 영구채 전환 유예 등 양보한 하림... ‘5년 락업’이 마지막 걸림돌?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은·해진공과 하림 컨소시엄이 HMM 매각을 위해 진행해 온 주주 간 계약 협상이 6일 밤 12시쯤 최종 결렬됐다. 컨소시엄은 인수 가격으로 6조4000억원을 적어 내 지난해 12월 경쟁자 동원그룹(6조2000억원 희망)을 제치고 우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양측은 5주 동안 매각 조건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해 왔다. 먼저 영구채 전환 여부가 문제가 됐다. 산은과 해진공은 HMM 영구채 1조6800억원어치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이는 인수자 하림 입장에서 독이 될 수 있는 조항이었다. HMM에 대한 지분율이 57.9%에서 38.9%로 대폭 낮아져, 3년간 받을 수 있는 배당 수익이 2850억원가량 줄어들게 돼서다. 때문에 하림은 영구채 전환을 유예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막판까지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이 조건을 포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외에도 하림은 ‘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권 등의 조항이 담길 주주 간 계약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달라’는 요청, ‘HMM의 현금 배당 제한’ 조건 등을 모두 거둬들이면서 인수 완료에 사활을 건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이 막판까지 합의를 보지 못한 부분은 ‘JKL의 지분 매각 제한’ 조건이었다고 한다. 하림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JKL의 특성을 감안해 “JKL은 5년 안에 지분을 매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림이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하자 해진공이 역으로 JKL을 배제할 것을 제안했고, 이를 하림이 거절하며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전해진다.

◇ JKL 몫은 6.4조 중 일부일 뿐... “해진공, 애초에 매각하기 싫었을 것”

IB 업계에서는 대체로 JKL의 락업(지분 매각 제한) 등 해진공이 내세운 조건이 지나치다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사모펀드 운용사(PE) 관계자는 “매도자 측에서 PE의 지분 매각 제한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점에 수익을 내고 엑시트하는 게 PE 업의 본질인데,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을 출자받아 펀드를 운용하는 PE 입장에서 손실을 감수하고 5년간 지분을 강제 보유한다는 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또 PEF에는 만기가 정해져 있어 일정 기간이 지나면 LP의 펀드 청산 요구에 응해 엑시트를 하는 게 불가피하다.

실제로 현행 자본시장법은 PE의 수익 창출을 보장하기 위해 지분 인수 후 의무 보유 기간을 두지 않고 있다. 그나마 있던 ‘6개월 이상 지분 보유 의무’도 2021년 법 개정과 함께 사라진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하림 컨소시엄 입장에선 비딩을 통해 합당한 값을 지불하고 회사를 인수해 지배주주가 돼서 경영을 하려는 건데, 매도자가 왜 이렇게 많은 단서를 달고 경영권 행사에 제약을 거는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JKL의 락업 제한은 그저 ‘표면적 이유’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협상 결렬을 위한 구실일 뿐, 해진공의 속내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PE 관계자는 “하림이 과연 JKL과의 의리만 갖고 해진공 측 요구를 거절했겠냐”고 반문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의 HMM 인수 의지가 워낙 강했던 만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MBK파트너스의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나 베인캐피탈·KKR 크레딧펀드 등과 손잡고 JKL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이들 블라인드 펀드는 JKL이 결성하려고 했던 프로젝트 펀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엑시트 압박이 크지 않다.

업계 일각에서는 해진공이 애초에 HMM의 매각을 원치 않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FI가 굉장히 큰 비중을 맡고 있다면 락업 여부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이번에 JKL이 조달하기로 한 돈은 그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며 “산은이야 매각 필요성이 크지만, 해진공이나 해양수산부 입장에선 HMM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커 애초에 팔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과거 한국수출입은행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매각설이 제기됐을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 바 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수은이 KAI 지분을 계속 갖고 있길 바라고 매각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HMM 매각이 원점으로 돌아간 데 있어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다.

한 PE 대표는 “하림이 동원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으니 우협으로 선정했겠지만,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애초에 무리하게 우협을 선정하지 말고 유찰시켰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PE 관계자는 “정부에서 이 딜에 FI는 얼씬거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 것과 다름없다”며 “대규모 영구채 전환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 과연 어떤 투자자가 뛰어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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