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허상과 현상 속에 숨겨진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김세훈의 스포츠IN]
축구에서 승부를 결정하는 요인들은 많다. 그중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요인은 크게 7가지다.
①기술 ②체력 ③개인 정신력(멘털) ④팀워크 ⑤전술 ⑥전략 ⑦협업이다. 심판, 날씨, 시차, 그라운드 등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라서 논의에서는 빼보자.
①, ②, ③은 선수 개인 역량이다. ④는 선수들간 원팀으로서 단결력이다. ⑤,⑥은 감독 등 지도자 능력이다. ⑦은 선수, 지도자, 트레이너, 메디컬 등 대표팀을 구성하는 그룹 간 협업을 의미한다. 7가지 중 뛰어난 게 많을수록, 궁극적으로 7가지가 모두 갖춰질수록 승리할, 우승할 가능성이 크다.
아시안컵을 위한 한국의 준비상황, 대회를 치른 과정을 복기해보고, 단순하게 A, B, C로 평가해보자. 이 부분은 내부인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고 외부인으로서는 그 한계는 더 크다. 다만 기자로서 그동안 대표팀과 클린스만 감독을 지켜본 경험, 아시안컵 전후 들리는 이야기와 제기된 의혹 등을 근거로 자의적으로 평가했음은 양해해달라.
우선, 기술(①)은 ‘A’다. 한국 선수들의 개인기가 다소 부족하지만 그래도 ‘A’이라고 보는 게 맞다. 체력(②)도 A에 가깝다. 사우디아라비아전 혈투 이후 이틀 쉬고도 나흘 쉰 호주를 연장 접전 끝에 역전승으로 제압했다. 개인 정신력(③)은 A보다는 B에 가깝다고 본다. 정신력은 헝그리 정신과 다르다. 정신력, 즉 멘털은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서도 자기 모든 역량을 최대한으로 쏟아내기 위해 집중하면서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별하며 팀을 위한 작전을 철저하게 실행하려는 자세를 말한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사자가 토끼를 잡는 것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4강전 요르단전에서는 선수들이 100% 최선을 다했다고, 선수들이 하나로 뭉쳤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팀 워크(④)은, 기자는 솔직히, C라고 본다. 팬들이 듣기에 불편할 수도 있다. 현지에서 나오는 기사, 대회 도중 주요 선수들의 발언, 특히 요르단전에 임한 선수들의 태도와 탈락 후 멘트를 들으면 분위기를 대충 감지할 수 있다. 큰 대회 기간, 대한축구협회는 국가대표팀에 대한 미디어 접근을 무척 강하게 통제한다. 선수들도 미디어 앞에서는 대부분 좋은 말만 하려고 한다. 그래도 삐쳐나오는 말들은 팀워크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실제 선수단 내부에서도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
⑤, ⑥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 영역이다. 모두 ‘C’다. 전술은 매 경기를 임하는 작전과 임기응변력이다. 전략은 대회에 앞서 준비하는 과정, 대회를 치르는 과정 등을 일관성 있게 관통하는 전을 핵심적인 방침이다. 감독의 전술과 전략이 부재했다는 게 드러났다. 코치들도 감독 뒤에 숨을 수 없고 숨어서도 안 된다. 최종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지만, 과정과 결과가 나쁘다면 그건 모든 코치진 책임이다.
협업(⑦)은 B 또는 C다. 이건 선수단 내부 조직 간 업무협조 부분이라서 내부 사람만 알 수 있다. 선수단 밖에 있는 사람이 가늠할 수 있는 건 선수들 몸 상태다. 전반적으로 선수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요르단전은 최악이었다. 사우디, 호주전에서 신승을 거둔 뒤 어떻게 컨디션을 조절했기에 선수단 전체 컨디션이 엉망이었을까.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몸관리를 못한 탓일까, 소속팀 복귀가 다가오니 몸을 사린 것일까, 트레이닝이 잘못됐을까, 회복법에서 문제가 있었을까, 카타르월드컵 2701호 사건처럼 이번에도 메디컬 측면에서 갈등이 있었을까.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대표팀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다.
7개 요소 점수는 A, A, B, C, C, C, B(또는 C)다.
한국이 왜 아시안컵에서 4강에 머물렀을까. 경기력이 왜 팬들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을까.
답은 하나다. 모두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희생양’을 찾았다. 집요하고 악랄하게 마녀사냥을 하다가 결국 희생양을 죽였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대중은 과도한 비난과 분노 등 쓰레기같은 감정을 모두 쏟아버린 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잊었다. 그러면서 여러 측면에 얽히고설킨 ‘구린’ 부분들은 모조리 왜곡됐고 감춰졌다. 사건 중심 인물들은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진실을 가렸다. 때로는 선문답을, 때로는 면피 발언을 일삼는 경우도 많았다. 책임에서 몰래 도망가는 겁쟁이도 있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대한축구협회, 대표팀 선수와 코치진 및 스태프 모두 못했다. 그게 어처구니 없는 준비 부족, 기대 이하 졸전, 어이없는 무승부와 패배로 드러났다. 자기반성, 외부 비판은 누가 잘했다, 못했다를 구분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모두 다 못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구름 같은 허상’과 ‘숱한 현상’ 뒤에 가려진 실체와 본질을 볼 수 있고 그래야만 뼈아픈 반성도, 냉정한 혁신도 기대할 수 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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