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늘려달라"던 대학들, 이제와서 딴소리 왜?
이공계 붕괴, 수도권 쏠림 가속화 우려 제기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정부가 전국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2000명 늘어난 5058명으로 확정하자 의대생을 길러내는 전국 의대와 병원들은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교수 충원과 실습·연구 시설 확충이 당장은 어렵다면서 교육의 질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든다. 일부 대학 본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의대증원을 크게 반기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일 2025학년도 의대 총 입학정원을 그간의 3058명보다 2000명 늘린 5058명으로 정했고 교육부는 4월 말까지 대학별 증원 규모를 확정한 채 각 대학에 통보할 방침이다.
5058명은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대학' 이공계열(4882명)보다 큰 규모다. 이공계 입학을 고려했던 최상위권 수험생이나 이미 재학 중인 대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이 지적되고 있다.
의대생을 유치하거나 지역의료 확충을 목표로 둔 지방자치단체나 비수도권 대학 본부는 환영하는 반면 의대생을 가르쳐야 할 의대나 전공의들을 둔 병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의대를 둔 대다수 대학이 정부에 증원을 건의하기는 했다. 복지부가 의대·의전원이 있는 전국 40개 대학 상대로 수요조사를 해보니, 2025년 2151~2847명 증원을 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에 대해 의대·의전원 학장·원장으로 구성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KAMC)는 "정부와 대학본부 요구에 맞춰 최대 수용 가능한 학생 수를 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협회는 학교별 여건이 다르고 교수 충원이나 강의·실습·연구시설 확충 등 교육환경을 위해 당장 추가 투자가 필요한데, 1년 만에 큰 폭의 증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데 의견을 모은 상태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도 7일 "의학 교육의 질을 저하하지 않기 위한 연구를 근거로 350~500명 증원을 시작으로 유연한 조정을 주장해 왔다"며 "(이번 발표가) 대단히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의학한림원은 "불과 수개월 내 증원에 필요한 교육자와 교육시설이 마련될 수 없을 것"이라며 "독립적이고 실질적 권한을 갖는 논의체를 구축해 논의를 원점에서 시작할 때"라고 촉구했다.
국내 194개 의학 학술단체를 총괄하는 대한의학회도 "의학교육의 질 저하는 분명하다. 졸업 후 수련 등 증원에 따른 부작용 역시 논의되지 않았고 전공의 교육에도 악영향"이라고 지적했다.
학회는 또 "급격한 증원은 이공계 인력의 의료계로의 유입으로 국가 과학기술의 근간을 무너지게 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잘못된 정책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강조했다.
의대 교수나 의대생들은 지금도 학생이 많은 학년이면 강의실에 자리가 부족하고 해부용 시신이 부족해 실습이 차질을 빚곤 한다고 주장한다. 교수 충원도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간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관련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의협 측 협상단장인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2018년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을 떠맡은 전북의대와 원광의대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혼란을 기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의체는 교육부와 의대생 단체인 측을 불러 의학교육의 질 담보방안을 논의했으나 복지부는 "다각적인 방안을 준비하고 있고, 밝히겠다"는 입장까지 전한 상태다.
이에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대 학장은 "정부가 수요조사를 근거로 드나 이는 대학 요구였다"며 "충원도 어렵고 당장 확충도 힘들다. 가르칠 수는 있어도 부실해지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여러 지적에 복지부는 아직 "앞으로 교육의 질을 관리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학교로부터 희망 수요를 받았고, 전문가들과 수용이 가능한지 검증을 마쳤다"며 "현재 기준으로 교육의 질 저하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 차관은 "한국의학교육평가원 평가인증제도를 통해 교육의 질을 관리해 나가며 필요하면 정부가 의대 교육에 재정 투자도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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