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대당한 생육신이 남긴 '추강집' 찍은 목판, 최초로 존재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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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으니 득실에 대해 무엇을 근심하랴. 서울 거리에 바람이 종일 불어 온통 여우와 토끼 자취뿐이라."
목판을 직접 확인한 기호철 문화유산연구소 길 소장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목판 실물을 확인하게 된 것도 놀라운데 보존 상태도 온전하다"며 "이 목판을 통해 다른 목판의 존재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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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퇴에는 정해진 운명이 있으니 득실에 대해 무엇을 근심하랴. 서울 거리에 바람이 종일 불어 온통 여우와 토끼 자취뿐이라."
조정에 가득한 간신배를 여우와 토끼에 비유해 비판하면서도 세상사에 애써 초연하려는 마음이 엿보이는 이 글은 추강 남효온(1454~1492)의 문집 '추강집(秋江集)'의 한 구절이다. 그는 조선 전기 생육신(단종 폐위에 반대하며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아간 여섯 명의 신하)으로, 이 문장을 1483년 3월 19일 강원도로 귀환하는 생육신 김시습을 배웅하며 썼다.
이 구절을 책으로 간행하는 데 사용된 목판의 존재가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문화유산회복재단은 7일 "재미동포가 소장한 목판을 조사한 결과 1921년 경북 청도군 신안에서 발간한 삼간본(신안본) 목판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간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목판 일부가 발견됨으로써 나머지 목판의 소재를 추적하는 작업과 후속 문헌 연구가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추강집은 1511년에 후손들이 필사본으로 만들어 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초 김시습이 발행하려 했으나 당시 정치적 상황과 생육신이라는 처지 때문에 간행되지 못했다. 선조 때인 1577년에 목판 초간본이 간행됐고, 숙종 시기 생육신이 재평가되는 분위기에 힘입어 중간(重刊)됐다. 초간본을 찍은 목판은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탔고, 중간본 목판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으로 인해 생육신에 대해선 사료가 풍성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중 추강집은 생육신의 교우관계나 시대 상황 등을 비교적 풍부하게 담은 몇 안 되는 문헌 중 하나다.
이번에 발견된 목판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번역·연구에 활용하는 1921년 삼간본에 사용된 것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이 번역과 해제의 저본으로 삼은 것 역시 서울대 규장각소장본인 삼간본이다. 삼간본은 비교적 많이 발행됐으나, 목판이 어디에 보관됐고 이후로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선 어떠한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발견된 목판은 총 2점으로, 문집의 '권1' 29면과 30면이 앞뒤로 새겨진 것 1점과 '권7' 32면과 33면이 새겨진 것 1점이다.
목판을 직접 확인한 기호철 문화유산연구소 길 소장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목판 실물을 확인하게 된 것도 놀라운데 보존 상태도 온전하다"며 "이 목판을 통해 다른 목판의 존재를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생육신과 사육신은 조선 시대에 사실상 '버려진 역사'로 취급돼 남은 자료가 많지 않은 만큼 귀중한 발견"이라고 설명했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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