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축구의 백패스, 한국의 백패스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백패스(back pass)를 남발하다 7일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대2로 완패했다. 대표팀이 내건 64년 만의 우승 목표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다. 역대 최강의 전력이라 평가받았지만, 4강 탈락이라는 결과를 떠안았다. 한국이 세계 23위, 요르단은 87위. 이날 경기력은 그 반대였다. 한 팬은 “요르단 국기를 가렸으면 프랑스와 축구하는 줄 알았을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공은 둥글다. 축구를 하다 보면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어젯밤의 패배가 더욱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전례 없는 졸전 끝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유효 슈팅은 ‘0′. 한국은 자기 진영 뒤쪽에 위치한 동료 선수에게 끊임없이 백패스를 했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이러다 공을 빼앗기면 어쩌지’란 생각에 불안해했다. 실제로 몇 번은 빼앗겼고, 이는 실점으로 이어지는 빌미가 됐다. 쉴 새 없이 돌리다가 결국 골키퍼한테까지 공이 가곤 했다. 더 이상 줄 곳이 없는 골키퍼는 ‘아무나 받아라’는 식의 ‘뻥 축구’로 내몰렸다. 그렇게 한국은 경기 내내 무기력하게 끌려 다녔다. “자신과 축구를 하는 것이냐”는 비판 속에 백패스는 한국의 자화상이 됐다.
물론 백패스도 순기능이 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필요할 때도 있다. 90분, 길게는 120분 간 이어지는 혈투에서 어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축구는 궁극적으로 전진해야 한다. 아니면 골은커녕 기회조차 나올 수 없다. 백패스의 본질은 ‘책임 전가’와 ‘두려움’이다. 공을 갖고 뚫고 나갈 자신이 없으니 다른 선수에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엉거주춤하는 사이 어딘가에서 일은 터지고 만다.
축구뿐일까. 사회 곳곳에서 백패스가 난무한다. 국회에서, 법원에서, 집회·시위에서 걸핏하면 백패스를 남용하며 결정을 지연하고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긴다. 함께 벽을 뚫고 전진해야 한다는 의지보단,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에 팽배해 있는 모습이다. 폭탄 돌리기 속에서 마지못해 폭탄을 받아든 자는 온갖 궤변으로 점철된 뻥 축구로 마무리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전진패스를 해야 되지 않겠냐고 ‘책임’ 운운하는 게 이젠 순진하고 허망해 보일 지경이다. 사회가 너무 매정해진 탓도 있다. 스트레스가 많고 잔뜩 화가 나 있다. 전진패스를 시도하려다가 실수하거나 공을 빼앗기면 안 하느니만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백패스는 습관성이 돼 고치기도 어려워 보인다. 모두가 이러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이번 아시안컵 결과를 두고 또 지루한 책임 공방이 이어질 것이다. 한국의 백패스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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