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말고 니트로 만든… 200g 초강력 축구화의 탄생
아시안컵 8강전에서 프리킥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의 축구화는 일반인에게도 판다. 나는 이 축구화를 만져본 적이 있다. 축구화 앞 코 부분을 쓰다듬으면 미세한 요철을 느낄 수 있다. 공과 발의 마찰 계수를 높여주는 세부 요소라고 한다. 손흥민의 골 장면을 보며 그때 만져본 요철의 촉감이 떠올랐다. 손흥민의 재능과 의지가 응축된 그 아름다운 킥에서, 축구화 앞의 요철이 공의 회전력을 얼마나 높였을까 궁금했다.
현대 축구화는 흥미로운 대화 소재다. 축구화는 발전한 스포츠 과학의 한 형태다. 과학화한 스포츠 신발을 만들려면 신발 소재와 제조 공정을 혁신해야 한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점점 넓어지는 축구 시장을 위해 마케팅을 벌인다. 그 결과 축구화는 스포츠카처럼 화려한 최신 상품이 되었다.
축구화는 영어로 ‘풋볼/사커 부츠’라 부른다. 초창기 축구화는 목까지 올라오는 부츠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축구화는 가죽 군화와 큰 차이 없는 형태에 바닥에 금속 징(스터드)만 박은 구조라 저런 걸 신고 어떻게 90분을 뛰었나 싶을 정도다. 현대 축구화는 한 세기를 거치며 신발+징이라는 구조만 남겨두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진화의 골자는 경량화와 다양화다.
오늘날 신형 축구화 소재는 가죽이 아닌 섬유다. 세계의 스포츠 브랜드는 2000년대부터 가죽이나 인조가죽을 벗어나 섬유를 편직한 니트 소재에 집중했다. 섬유라 해도 고강도 원사를 쓰거나 공이 닿는 부분을 딱딱하게 굳히는 식으로 이전 축구화의 특징을 유지한다. 가벼우면서 강한 오늘날 축구화가 완성된 비결이다. 90년대 축구화가 한 족에 400g 안팎이었는데 오늘날 선수용 축구화는 한 족에 200g 안팎에 불과하다.
브랜드별 축구화를 모아 보면 각 브랜드의 개성과 마케팅용 수사를 뛰어넘는 축구화의 발전 방향이 보인다. 브랜드에 따라 스터드 모양과 배열 구조가 다르다. 발을 감싸는 갑피 섬유 소재의 이름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가죽이나 인조가죽에서 벗어나 니트 소재를 쓰고, 스터드 소재로는 플라스틱계 복합 소재를 쓴다는 큰 방향성은 같다. 아울러 경량 축구화뿐 아니라 선수들의 여러 기호에 맞추는 가죽 축구화를 만들어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점도 같다.
개별 축구화가 가벼워지고 다양해진 만큼 축구화 시장은 거대해진다. 모든 혁신에는 비용이 들고 혁신에 비용을 쓴다는 건 거기에 사업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세계의 시장조사 기관들은 축구화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5% 이상이라 예측한다. 축구가 세계 스포츠가 되고 풋살이나 여성 축구 등 시장 참가자도 늘어나니 당연하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역시 90년대 이후 적극적인 스타 마케팅을 하고 있다. 아디다스에는 메시와 베컴, 나이키에는 호날두와 음바페가 있다. 한국은 아디다스가 손흥민 에디션 축구화를 출시했다. 8강전 득점의 또 다른 주인공 황희찬은 나이키를 신는다. 마케팅을 위함인지 오늘날 축구화가 점차 화려해지고 있다는 점도 확연한 특징이다. 방송 중계하는 축구 경기에서 1990년대 선수들이 신던 검은색 축구화는 이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늘날 프리미엄 축구화는 경공업의 미래에도 화두를 던진다. 경공업 제품은 생산성이 낮다고 여긴다. 일례로 부산 경기 침체 요인 중 하나는 신발 공업 클러스터의 노후화와 축소화도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방법이 있다. 첨단 소재와 디자인으로 기능성 축구화를 만들면 프리미엄화도 가능하다. 오늘날 선수급 최상 축구화는 가죽 한 장 안 쓰고도 가격이 30만원을 넘는다.
축구가 인기를 얻은 요인 중 하나는 단순한 규칙과 최상급 두뇌의 조화다. 위대한 감독들은 간단한 축구 규칙을 토대로 혁명적이고 정교한 전술을 끊임없이 창안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선수들은 인간 개조에 가까운 진화를 거듭해 그 전술을 수행하며 아름다운 장면들을 완성했다. 미디어나 스포츠 업계도 그에 따른 다양한 메타데이터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가며 축구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축구화도 그 경향을 보여주는 물건 중 하나다. 말 그대로 발끝만큼일 수도 있지만 축구의 모든 역사는 발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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