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115] 떡국 먹고 한 살 먹고
곧 설날이다. 정확한 나이 계산법이야 달라졌다지만 설날에 떡국 먹고 나면 나이 한 살 더 먹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떡국을 안 먹어서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가는 세월을 그 누가 막을쏘냐. 예나 지금이나 나이 먹는 것이 반길 일은 아니어서 조선의 실학자 이덕무는 한시 ‘첨세병(添歲餠)’에서 떡국을 일러 “해마다 나이를 더하는 게 미우니, 서글퍼라 나는 이제 먹고 싶지 않은걸”이라 했다.
이봉조가 노래한 ‘떡국’ 역시 떡국을 먹으며 나이 한 살 더 먹게 된 처지를 자각해서 쓴 것이다. “어렸을 땐 때때옷에 떡국 맛이 그렇게도 맛이 있고 좋았지만 나이 들어 떡국 맛은 그렇지 않네. 한 살 먹는 서러움에 생각에선가. 씹을수록 먹을수록 눈물만 나는데 뒤적이는 떡국 물에 가슴만 아파라. 아 떡국떡국 또 한 그릇 먹어야 하나”라는 1절에서는 흘러가는 세월을 한탄하다가, “쫄깃쫄깃 그 맛에 나도 모르게 철없이 해 가는 줄 몰랐네. 씹을수록 먹을수록 입맛은 돋는데”라는 2절에 이르면 그래도 맛있는 떡국에 푹 빠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1971년에 발표한 ‘떡국’은 제1회 문화공보부 주최 ‘무궁화’상에서 제작 대상과 4개 부문 수상을 석권한 ‘이봉조 작곡집’ 음반에 실려 있다. 드라마 작가로도 유명한 유호가 작사하고 이봉조가 작곡은 물론이고 노래까지 해서 눈길을 끈다. 이봉조가 직접 노래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든 유호와 이봉조는 ‘떡국’을 통해 늙어가는 것에 대한 서러움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서글픈 감정만 드러낸 건 아니어서 노래 첫머리에 “와와와와와”라는 여성 코러스가 반복되며 흥겨움을 자아내고 있다. 거기에 살짝 불안한 음정과 허스키한 저음의 이봉조 목소리가 구수함을 더한다.
대중적 인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이봉조는 이 노래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듯하다. 1972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된 현미의 음반에 이어 1973년 ‘이봉조 작편곡집’ 음반에 다시 수록했기 때문이다. 1973년 노래는 이봉조가 현미, 정훈희와 함께 부른 것이어서 이색적이다. 이봉조가 먼저 노래 몇 소절을 부르다가 “씹을수록 먹을수록”부터는 정훈희와 현미가 함께 노래하고 “떡국떡국 또 한 그릇”의 마지막 부분은 현미의 독창으로 끝난다. “한 살 먹는 서러움에”가 “내일모레 시집가는”으로 노랫말이 수정되었고, 피아노, 드럼, 브라스로 화려하고도 풍성한 사운드의 편곡으로 바뀌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듯이, 나이를 인식한다는 것은 나이가 들었다는 걸 반증한다. 어차피 떡국을 먹어도, 안 먹어도 먹는 것이 나이라면 설날 떡국 한 그릇 맛있게 먹고 태연히 한 살 먹기로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