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세사기 ‘건축왕’ 징역 15년… 법원 “생존 침탈한 악질범죄”
현행 법으론 징역 15년이 최고형
공범 9명도 징역 4~13년 1심 선고
재판부 “사기죄 최대형량 높여야”
● 청년 4명 목숨 앗아간 전세사기… 법원 “악질적 범죄”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7일 오전 사기, 공인중개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남 씨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하고, 범죄 수익 115억5000여만 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 등 공범 9명에게는 각각 징역 4∼1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피해자 대부분이 20, 30대 청년이나 신혼부부, 고령층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을 노린 남 씨 일당의 범행에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5월에는 남 씨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 4명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오 판사는 “생존 기본 요건인 주거환경을 침탈한 중대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국가나 사회가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재범 우려가 크다”며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전 재산이자 거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는 등 범행 동기나 수법이 매우 불량하다”고 밝혔다.
이어 오 판사는 “주택, 임대차 거래에 관한 사회 공동체의 신뢰를 처참하게 무너뜨렸는데도 터무니없는 변명을 하면서 범행을 부인하고, 100여 명의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하게 하면서 고통을 줬다”고 지적했다.
남 씨의 변호인은 앞서 “담당 법관으로부터 공정한 판단을 구하기 어렵다”며 법관 기피 신청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로 공판이 진행됐는데 재판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 법원 “사기죄 최대 형량 높여야” 이례적 발언
오 판사는 2시간가량 진행된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들의 탄원서 내용을 읽다 감정에 북받친 듯 숨을 고르며 “막내 자녀 나이대 피해자들에게 지은 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가져야 한다”고 남 씨를 질책하기도 했다.
특히 사기죄 형량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한도는 최대 징역 15년이고, 이를 넘어서 처벌할 수 없다”며 “다수 피해자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질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형법상 사기죄의 형량은 최대 10년인데, 남 씨처럼 2건 이상의 사기 범행을 저지르면 경합범 가중 규정에 따라 형량의 최대 2분의 1까지 더할 수 있어 최대 15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선고 직후 공범들의 형량이 너무 낮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인천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빼앗긴 전세보증금은 피해자들의 삶의 전부이자 미래였는데 남 씨와 공범들은 여전히 사과는커녕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며 “강력한 처벌과 범죄수익 몰수 조치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밝혔다.
인천지검은 이날 “전세사기 범행과 관련한 사기, 범죄단체 조직 등 사건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대응해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남 씨는 2009년부터 미추홀구 일대에 땅을 사들여 공동주택을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대출금으로 다시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주택을 2708채까지 보유했다. 2021년 자금 사정이 악화하자 소유 주택이 연쇄적으로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했고, 공인중개사 등과 조직적으로 공모해 전세사기를 벌였다. 남 씨의 전체 사기 혐의액은 주택 563채의 보증금 453억 원에 달한다. 이날 선고는 먼저 기소된 주택 191채의 전세보증금 148억 원을 가로챈 사기 혐의에 대해서만 이뤄졌다. 나머지 305억 원의 혐의에 대해선 별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인천=공승배 기자 ks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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